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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빠졌던 순간들

by 하짜



1.


초등학교 일도 점점 끝이 보이는 시기다. 지금 기준으로 2주가 지나면 끝이다. 내가 배식을 담당하는 학년은 6학년이라 더 실감이 난다. 선생님들이 반 아이들을 한 명씩 복도에 불러 개인 사진을 찍고 교실 문 위에 휴대폰을 설치해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낸다. 아이들은 항상 해맑은 웃음소리와 지치지도 질리지도 않는 수다로 빈 공간들을 채운다. 아이들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더욱 선명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눈앞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어렸을 때의 시대적 상황과 다른 모습과 시대가 변해도 불변하지 않는 모습들이 공존할 때 그 미묘함과 이질감이 신기하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지만 이럴 때는 시대의 변화와 세월의 야속함을 느낀다.


내가 6학년이었던 시절은 슬픔과 두려움이 가득했던 걸로 기억한다. 매년 반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 친해지는 것도 힘들고 어려웠는데 중학교에 올라가면 또 모르는 아이들을 만나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그것도 초등학교 때보다 더 많이. 게다가 친해진 녀석들 중에는 나와 다른 중학교에 지원해서 가는 친구들도 있었기에 슬펐다. 때 묻지 않고, 아니 때가 덜 묻은 상태에서 만난 친구들이 지금은 다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2.


금요일 쉬는 날에는 할머니가 계시는 본가에 갔다 왔다. 집에 들르기 전에 할머니께 전화로 삼겹살을 먹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고 계셨다. 할머니는 내 건강이 걱정되어 비계가 없이 살코기로만 된 삼겹살로 준비하셨다.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비계가 없어서 살짝 아쉬웠다.


그래도 맛있게 삼겹살을 먹었다. 배가 터질 듯 말 듯했다. 다 먹자마자 큰 방에 들어가 뜨끈한 전기장판 위에 누워 있다가 살짝 잠이 들었다가 깼다. 할머니가 언제 들어오셨는지도 모를 정도로. 잠에서 깨어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이런 질문을 하셨다.


“너희 집 따시냐?”


“예, 여기보다 따시죠. 웃풍도 없고 보일러도 항상 틀어져 있고.”


“여기는 둘이서 자면 비좁아서 추운데…”


나는 할머니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 저걸 이야기하시려고 집이 따시냐고 물어보신 거구나. 내가 걱정이 돼서 물어보신 게 아니고…


“… 할머니 지금 저 쫓아내는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고 너희 집 따시니까 거기서 자라고…”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는 할머니와 나는 거의 동시에 포복절도하며 웃었다. 대화내용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였다. 비좁아서 추우니 따뜻한 너네 집 가서 자라니… 할머니는 겨울이 되면 유독 더 차가워지시는 분이었다. 더운 여름이면 뜨거운 분이 되셨고. 아마도 집이 계절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 것이리라.


할머니 집에서 지낼 때 겨울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공장에 출근하려고 머리를 감으려는데 옥상에 물탱크가 얼어서 따신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할머니는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로 끓여 물을 덥혀준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시간이 너무 걸려 모자를 푹 누르고 신경질을 내며 출근을 했다.


“에이씨! 여기가 80년대가 90년대가!!”


다른 하나는 동갑내기 사촌 여자애가 나와 할머니와 잠깐 같이 지내던 시절이다. 사촌은 창녕에서 왔는데 우리 집 물을 쓰더니 이렇게 말했다.


“창녕은 물이 깨끗한데 여기는 물이 좀 더러운 것 같다.”


나는 듣는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걸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 이유가 뭘까? 그러면 창녕에서 대학생활을 하지 물도 안 좋은 부산은 왜 와가지고…


그날 저녁 동갑내기 사촌은 할머니에게 아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할머니! 이제 날씨가 제법 추운 것 같은데 보일러 좀 틀면 안 될까요?”


“응? 벌써? 보일러비가 만만치 않은데? 일단 전기장판을 틀어서 쓰거라.”


이틀이 지나자 동갑내기 사촌은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보일러비 드릴 테니까 지금 당장 틀어주세요.”


“그래, 그럼 틀어라.”


이 대화를 들은 순간 사촌에 대한 분노는 눈 녹듯 사그라들었고 좀 더 나아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게 왜 부산을… 아니 왜 할머니집에 와가지고.. 라며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때 그 시절도 막상 지나고 보면 웃을 수 있는 일들도 꽤 많다. 앞으로 얼마 안 남은 2024년도 훗날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날들로 채워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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