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똑같은 반복의 일상이 가끔은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앞으로 남은 인생도 지금과 같이 살아가게 된다면 어떡하지라는 마음 말이다. 내 인생의 지금은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사용되는 시간들이라 생각하기에 여기서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내 삶의 의미라던가 이유가 흐릿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날들을 보내고 있던 날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콘텐츠에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있었다. 썸네일이 마음에 들어 클릭했다.
서사보다는 장면의 아름다움과 히라야마의 표정에 집중한 이야기
영화의 주인공인 히라야마는 화장실 청소부다. 그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자기만의 루틴대로 하루를 시작한다. 영화는 이게 다다. 아마도 서사에 집중한 영화라기보다는 순간순간의 장면과 거기서 오는 아름답거나 정갈한 화면에 포커스를 둔 것 같다. 여기에 간간히 일어나는 작지만 다양한 사건들과 인물들이 등장함으로써 영화가 루즈해지는 걸 막는다. 이러한 것들은 장치적이기보다는 우리의 일상을 그대로 옮겼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의 내 일상과 별반 다름이 없음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주인공이 나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깔끔한 거 빼고는)
히라야마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 혹은 자세
반복되는 일상 속 히라야마의 표정은 항상 무표정이다. 어쩌다 그의 표정이 밝거나 웃을 때가 있다면 하늘, 코모레비(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 나무 등을 보거나 사진을 찍고, 자신이 좋아하는 올드팝을 카세트로 듣는 것이다. 지루하고 무미건조해질 수도 있는 하루하루를 히라야마가 좋아하는 것들이 막아준다.
히라야마와 조카가 나누는 대화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
이 말은 나에게 지금은 지금이 중요하다. 지금을 소중히 대하자. 다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고 라는 뜻으로 들렸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그날그날이 항상 ‘퍼펙트데이즈’인 것이다. 반복의 중요성은 다들 알아도 반복에서 오는 기쁨과 즐거움은 쉽게 알 수 없다. 반복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쌓인다’, ‘축적’의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시간이 지나고 예전을 되돌아보았을 때 기쁨, 성취,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 Feeling Good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평소와 같이 차를 타고 출근하는 히라야마의 표정에 포커스를 둔다.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니나시몬의 필링 굿이다. 다른 올드팝도 나오지만 이 노래만이 영화에서는 길게 나온다. 가사의 뜻은 이렇다.
높이 나는 새들아 내 기분을 알겠지
하늘에 걸린 해야
넌 내 기분을 알겠지
불어오는 산들바람아
내 기분을 알겠지
새로운 새벽이야
새로운 낮이야
내겐 새로 열린 인생이야
그리고 난 기분이 좋아
(중략)
즐겁게 날아다니는 나비들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잖아
하루가 끝나면 취하는 휴식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이 낡은 세상이 새롭게 보여
그리고 나에겐 선명하게 보여
별들아 너희가 빛을 낼 때면
내 기분을 알겠지
소나무의 향아
내 기분을 알겠지
자유는 내 것이야
난 내 기분을 알지
새로운 새벽이야
새로운 낮이야
내겐 새로 열린 인생이야
이 노래 가사가 어쩌면 히라야마의 삶을 잘 보여주는 가사가 아닐까 싶다. 특히 히라야마의 마지막 표정은 새로운 새벽, 새로 열린 인생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너무 좋아서 두 개의 양가감정이 교차하는 얼굴처럼 보인다. 영화는 이야기의 여지를 열어 두고 마치 관객이 알아서 해석하라는 듯한 느낌을 많이 준다. 그러한 영화를 난 참 좋아한다. 그러니 이 영화도 좋다.
내 보잘것없고 반복되는 지루한 하루일과도 사실은 항상 새로운 아침, 새로운 낮, 새로운 밤, 새로운 새벽으로 만들어졌다. 늘 새로운 날, 미래가 두렵고 불안해서 현재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히라야마처럼 외칠 것이다.
“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