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혼이 변화하려면 필요한 것

by 하짜




명절을 병원과 집에서 보냈다.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아직 감기가 다 낫지 않으셨다고 한다. 솔직히 평상시에 가족들 생각을 잘하지 않았다. 연락이 없으면 별 일이 없는가 보구나 하고 지나쳤으니까. 그러다 명절만 되면 괜히 가족들이 생각난다. 거기에 할머니가 아프시다고 하니 더 신경 쓰였다. 또 왠지 겨울에 아프면 똑같은 아픔도 더 아파 보이고 마음이 간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어처구니없이 이 영화가 떠올랐다.

이야기는 새사람이 된 장발장을 축으로 주변사람들의 모습과 변화를 중심으로


영화 레 미제라블(1998)의 시작은 장발장이 19년 형기를 마치고 나왔지만 전과 기록으로 인해 돈이 있어도 식당, 여관에 받아주지 않아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려다 미리엘 주교의 도움으로 예배당에서 머물게 된다. 그러나 수감소에서 있었던 일들이 꿈에 나오자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불신으로 늦은 저녁에 은 식기들을 훔친다. 훔치는 도중에 주교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주교를 가격해서 기절시키고는 도망친다. 그러나 아침에 다시 잡혀 예배당으로 끌려오지만 미리엘 주교는 은 촛대를 주며 이건 왜 가져가지 않았냐며 위기를 모면해 준다.

“잊지 마세요. 절대 잊지 마요. 새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했어요.”

“약속합니다. 왜 감싸주신 겁니까?”

“장발장, 내 형제여 이제 악인이 아닙니다. 이 은식기롤 주고 당신 영혼을 산 거예요. 공포와 증오로부터 되찾아 온 겁니다. 이제 당신을 주님께 돌려드리겠어요.”

미리엘 주교를 지긋이 보는 장발장의 눈빛을 보여주다가 9년의 시간이 흐른 장면을 보여준다. 그는 새사람이 되어있었다. 시장이 되어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똑같은 용서, 자비, 사랑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제각각

미리엘 주교로부터 용서, 자비, 사랑을 받은 장발장은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찬 사람에서 다른 사람을 볼 줄 알고 자비와 사랑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세상이 못 되고 성욕만 밝히는 더러운 사람들만 있다는 팡틴을 녹여주었다. 팡틴은 어린 코제트 생각뿐이다. 사랑을 받진 못했어도 사랑을 줄 수 있는 코제트가 있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돈을 벌어 코제트에게 돈을 보낸 것이다.

팡틴은 장발장에게 코제트를 부탁하고는 죽음을 맞이한다. 장발장은 팡틴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코제트를 데리고 와서 사랑으로 키운다. 사랑을 받고 자란 코제트는 그동안 보여주었던 인물들과 다르다. 비록 처음부터 팡틴 곁에서 사랑과 보살핌으로 자라진 않았지만 중간에 장발장이 데려와 팡틴의 빈자리를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세상이란 원망과 분노의 대상이 아니라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일 뿐이다.

한편 장발장을 잡는 데 혈안이었던 자베린. 그는 원칙주의자이면서 한 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라고 믿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장발장은 자비로운 척을 할 뿐 결국은 범죄자라고 판단한다. 즉 그의 변화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장발장은 몇 번이고 자베린을 죽일 수 있음에도 그를 풀어준다. 자베린이 어째서 죽이지 않냐고 물어본다. 원망하지 않느냐고. 장발장은 말한다. 원망하지 않는다고. 다만 왜 날 내버려 두지 않느냐고 할 뿐.

장발장의 용서와 자비를 받고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자베린은 자기의 신념인 원칙을 어겼다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무거운 얼굴로 걸어 나가던 장발장은 서서히 얼굴의 미소를 되찾았다. 수 십 년 동안 불안과 걱정으로 살았던 그가 드디어 잃어버린 미소를 되찾은 것이다. 그의 미소 뒤에는 ‘자유’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영화는 마무리된다.

레 미제라블의 뜻은 비참한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

영화 속 인물들은 미리엘 주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쌍하거나 비참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과 사람들에게 비난과 고통만을 받아왔을 뿐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다. 늘 의심하고 경계하고 항상 싸워댔다. 늘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미리엘 주교를 시작으로 장발장, 팡틴, 코제트, 자베린은 사랑과 용서를 받고 또 주었다. (결과 형태는 다르지만) 가난과 질병은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랑과 용서를 받은 장발장을 필두로 인물들은 더 이상 비참하거나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사랑이 그들의 차갑고 공허한 마음을 환하게,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그 사랑은 세상을 다시 살 수 있게 해 주었고, 살 이유를 갖게 해 주었다. (그건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사랑을 주고받을 줄 아는 있는 사람은 불쌍하지 않다.

글을 쓰고 나니 괜히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보고 싶어진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안부 전화를 드려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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