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상실감, 열등감 이 두 가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by 하짜


youtube-icon-6953530_1280.jpg


유튜브 알고리즘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의 일치인진 몰라도 내가 생각하고 있던 주제를 내용에 담은 유튜브 영상 두 개가 올라와 있었다.


1


우선 열등감에 대한 영상이었다. 내용은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하고 인기있는 만화 <드래곤볼Z>에서 열등감을 가진 캐릭터(베지터)를 가지고 열등감의 원인과 해소를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사실 영상을 보기 전까지도 내가 열등감이 있는지조차 인식을 못했다. 왜냐하면 어렸을 적부터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보며 ‘부럽다’, ‘나와는 다르네’ 라며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그러고 끝이 났으니까. 열등감의 정의는 자기를 남보다 못하거나 무가치한 인간으로 낮추어 평가하는 감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서 결혼과 육아 이야기를 듣는데,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이 들었다. ‘내가 진짜 잘하고 있는건가?’, ‘왜 나는 더 앞으로, 더 위로 못 올라가는 걸까?’, ‘나에게 의지할 수 있는 부모님이 두 분다 살아계시고, 내 옆에 있었더라면!’ 등의 아쉬움과 한탄이 머리와 가슴 속을 어지럽혔다.

이것을 가지고도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하며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지만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그렇게 쉽게 되지 않았다. 근본적인 무언가가 해결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이 영상을 보게된 것이었다.

영상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가치와 인정에서 오는 사고방식이 열등감을 만드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방식 혹은 방법이 여러 가지라면, 그래서 쉽게 인정을 받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자존감이 되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단 하나라면 인정을 쉽게 얻을 수 없어 그것이 곧 열등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보고 판단할 때도 영향을 미친다.

나를 예로 들자면 어렸을 때는 그저 공부와 시험성적이었으며, 커서는 돈을 버는 것이 인정받는 유일한 경로였다. 이 두 가지의 가치로 사람을 판단하며 인생을 살아왔다. ‘저 애는 공부를 못하구나, 잘하구나.’, ‘저 사람은 돈을 잘 벌구나, 못 벌구나.’ 한 개인의 다양성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이 단면 두 가지만을 보고 판단한 것이었다.

28살 이후로 꿈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삶을 살면서부터는 그런 프레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렇다면 해소방법은 무엇일까? 내 취약점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닌 어제의 나 자신과 비교를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듣고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외면과 회피였다는 걸 또다시 깨달았다. 그전부터 내가 그런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게 열등감으로 이어질지는 생각도 못했다. 나의 약하고 못난 모습을 외면하지 말고 인정을 하는 것이 제일 먼저 해야할 나의 과제였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어제의 나를 반성하고 오늘을 더 열심히 사는 것! 좀 더 자유로워지고 더 넓은 세상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열등감 캐릭터인 베지터는 이것을 인정하고 주인공인 손오공에게 명대사를 날린다.

“카카로트! 네가 바로 넘버 원이다.”


2


또 다른 하나는 세바시라는 채널에서 ‘인간은 상실로부터 어떻게 일어서는가’라는 제목의 영상이다. 상실이라는 단어가 내 가슴을 건드렸고 내 손가락을 움직이게 했다. 아직도 상실이라는 단어가 내 인생 언저리에 남아있고 앞으로도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참고로 상실이라는 단어는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을 뜻한다.

영상에서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와 세바시 피디가 1대1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저자는 잘 나가는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형의 죽음으로 인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취직한다. 그의 얘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술, 특히 미술을 좋아하고 사랑했다. 거기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압도적인 규모와 범위에 여러 나라의 예술작품들이 나열되어 있으니 그곳에 들어가면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저자는 숨통을 트고 상실에서 오는 공허, 허무라는 가슴의 빈 공간을 아름다움 혹은 자기가 사랑하는 것들로 차곡차곡 채워나갔을 것이다.

저자는 인터뷰 마지막쯤에 이런 얘기를 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커다란 고민들이 사실은 사소한 것처럼 느껴지죠. 그곳에 있으면 마치 그런 걱정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없어지는 느낌이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거대한 세상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요. 다양한 시대를 지나온 역사와 예술가들이 평생 탐구해 온 광대함과 신비로움에 비하면 말이죠. 그러다 보면 나 자신의 생각에만 갇히기보다 이 세상과 더 많이 연결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자체로 일종의 치유가 되는 거죠. 그런 경험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세상이 더 깊고 의미있는 곳처럼 느껴지게 해줍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 경험을 반추해보며 들으니 더욱 공감이 되었다.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내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보고 직접 도전했던게 가장 컸던 것 같다. 뭐 물론 그게 단숨에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여기에 또 하나 필요한 것은 바로 ‘시간’이다. 상처가 아무는데 시간이 지나야 낫듯이 상실로 인한 아픔도 그러하다. 쉽게 얘기하자면 자기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 대상이 일종의 ‘약’이며 흐르는 시간이 ‘회복기간’이 되는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상실로부터 일어났지만 모든 것이 괜찮아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너무 힘이들고 슬플 때가 종종 찾아온다. 이 아픔은 완전히 나을 수 없는 아픔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왜 아직도 힘드냐고 괴로워하기 보다 아픈 마음을 달래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혹은 아름다운 것들로 몸과 마음을 환기시켜보는 건 어떨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많으면 많을 수록 좋고, 없으면 없을수록 비참해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