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가 나한테 한 말

by 하짜



중학교에서 제일 무서울 것 없고, 제일 신나고 재밌게 놀 수 있는 학년! 누구나 아는 3학년이었지만 나는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진로문제였기 때문이다.

3학년으로 올라가기 전부터 아이들 사이에서는 이런 얘기가 입방아에 올랐다.

“아무리 못해도 3학년 1학기부터 성적을 잘 받아놔야 인문계에 갈 수 있어.”

“3학년 비중이 제일 크기 때문에 여기서 망치면 이래.”

그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지역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인문계에 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1. 대학, 미래, 비전 때문에

2. 실업계에 가면 똥통 이미지가 박혀 쪽팔리는 학교생활을 하게 될 것이며, 또 그 학교에 가면 일진, 양아치에게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시작도 하기 전에 지레 겁을 먹고 있었으며 불안과 긴장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 나이에 새치가 옆머리 쪽에 한 가닥이 나있었다.


당시에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기에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눈에 띄게 보였다. 절반 이상이 다들 학원에 다녔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택한 방법은 ‘도서관’이었다.

그 당시 도서관은 혼자 가기 무서운 곳이었다. 너무 조용해서 조심스러웠기도 했지만 거기 직원들 중에는 무서운 분도 계셨기에 자칫 잘못하면 사람들 앞에서 혼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걸 감당하게 만든 게 진로문제였다. 나는 거리낌 없이 도서관에 자리 잡고 교과서와 문제집을 보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지 평상시와 다를 게 없었다.

‘하아... 이러면 말짱 도루묵인데. 방법이 없을까나.’

그렇게 고민을 하며 짱구를 돌리고 있던 찰나 절친이 다가와 같이 도서관에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어? 니 학원은?”

“어... 학원 그만뒀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단 같이 도서관에 갈 사람이 생겼다는 것에 대한 기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 녀석이 나보다 공부를 더 잘했기에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었기에 때마침 좋은 기회다 싶었다.

친구와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서 저녁을 먹고 도서관에서 만났다. 서로 무엇을 공부할 건지 물어보고는 바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다.


우리가 있던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이 칸막이 없이 기다란 테이블이 여러 개 있는 곳이었다. 친구와 나는 며칠을 그렇게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새 여중생들이 오기 시작했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설레었는지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듯한 장면이 내 친구에게 벌어졌다.


머리를 식히러 잠깐 바람을 쐬고 왔는데 친구 자리에 쪽지 하나가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것을 열어보니 호감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내심 부럽기 짝이 없었다.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우리 맞은편에 그 아이들이 앉았다. 서로 부끄러워 눈도 잘 못 마주치는 상황이 짜릿하면서 재미있었다. 친구에게 호감을 가진 여자애는 제법 이뻤기 때문에 더더욱 부러웠다.

‘나에게도 혹시나...?’

하루는 절친 말고 다른 친구와 도서관에 갔는데 또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왜! 왜! 왜! 왜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까? 그렇게 부러움과 짜증으로 인해 공부가 집중이 안되던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또 다른 여중생들이 우리 앞에 앉았다.


나는 공부를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국어책을 들고 있었다. 앞에 앉은 여자애들이 우리를 힐끔 보면서 속삭였다. 내 친구들의 생김새에 대해 호감이 간다는 내용이었다.

‘자, 이제 내 얘기를 해 봐.’

거짓말처럼 한 여자 아이가 나를 힐끔 보더니 다른 여자아이게 속삭였다. 나는 그 얘기를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듣고야 말았다.

“저, 저거 꼴에 국어 공부하는 것 좀 봐. 생긴 거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도서관은 너무나 적막하고 조용한 곳이었기에 마치 큰소리로 외치는 듯한 효과와 비슷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충격에 멘탈이 파치직 금이 가고, 결국에는 깨지고야 말았다. 다시 진정하고 본드로 깨진 멘탈들을 이어 붙이고는 그 여학생의 명찰을 유심히 보았다.

‘기, 김태희?!’

그 당시 김태희는 우리에게 최고의 여신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으며 항상 거론되는 여자 연예인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이름과 상반되는 이미지의 얼굴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더 충격이었다.

‘네가 날 평가할 자격은 있냐!’

나는 그날 이후로 국어는 쳐다보지도 않고 안 되는 영어와 수학을 붙잡았다.


영어는 해석과 해설이 달려 있는 자습서를 보고 달달 외웠고, 수학은 내가 아는 기초 기본문제만 매달려 푸는 연습을 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나는 그 해 공부한 만큼 성적을 받았고 인문계에 갈 수 있는 커트라인을 조금 넘겨 살짝 여유가 있을 정도로 내신을 받았다.


친구들은 도서관에서 사랑을 얻었고 나는 도서관에서 쓰라린 고통과 함께 성적을 얻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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