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을 몇 달 두고 작은 외삼촌의 결혼식이 있었다.
내가 좀 더 어렸을 적이었다. 외삼촌은 집에 여자친구를 데리고 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인사시켰다. 대화가 길게 오가고는 외삼촌의 여자친구는 그늘진 얼굴을 하고 우리 집을 나왔다.
외삼촌의 결혼 허락은 성사되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여자친구의 집이 우리 집보다 경제적 상황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촌은 그 뒤로 집에 오면 항상 방문을 걸어 잠갔다.
할머니는 친구와 아는 지인을 통해 부자짓 막내딸과 외삼촌을 이어 주려고 하셨다. 외삼촌은 완강히 거부했고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설득했다.
외삼촌의 공부를 위해 여자 쪽에서 유학까지 보내줄 수 있다고 하면서 유혹도 해보고 경제적 상황에 빗대어 윽박도 질러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당시에 외삼촌은 결혼 생각은 접고 살기로 다짐했었다 한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외삼촌은 할머니의 결혼 허락을 결국 받았다. 그 중간의 시간은 어른들의 사정과 자세한 얘기를 듣지 못해 잘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삼촌이 할머니와의 싸움에서 이긴 것만은 확실했다.
왜냐면 할머니가 원하지 않는 경제적 상황에 있는 여자와 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 해에는 외삼촌의 결혼식과 나의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소식이 가족들에게는 나름 겹경사였다. 엄마는 돈이 없어 학원에 못 보내준 것에 대한 미안함을 전혀 티 내지 않으셨지만 인문계 진학이 결정되고 나서 외삼촌과의 대화를 우연찮게 들으면서 알 수 있었다.
“학원도 안 갔는데 그래도 인문계에 들어갔네.”
“···요즘은 인문계 들어가기 쉬울걸?”
“그래도... 그래도 대견하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소리가 나지 않게 발을 동동 뛰었다. 커가면서 엄마의 칭찬은 거의 듣지 못했던 상황이라 가뭄 속에 온 단비처럼 내게는 너무나 달콤하고 시원했다.
졸업식날은 아쉬움과 슬픔, 성취감과 해방감. 그리고 잘 견뎌냈다는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함으로 여러 개의 감정이 동시에 느껴져서 내적으로 복잡했다.
그러나 친구들이 있었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졸업식을 하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다. (엄마와도 같이 사진을 찍었던 것 같은데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아서 버렸던 것 같다)
그날은 좋아하지만 평소에 먹기 어려웠던 ‘피자’를 엄마는 흔쾌히 사주셨다. 모든 것이 평탄하고 좋았으며 인정받고 즐거웠던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이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졸업식날이었다.
https://youtu.be/cBiqltuGT88?si=_qP9iihTtel4nk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