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아! 더운데 잘 지내는 겨? 별일 없으면 쉬는 날 집에 와!”
수화기 너머 들리는 할머니의 힘없는 목소리… 마음을 가다듬고 할머니에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금요일 저녁에 넘어갈게요.”
저녁 시간에 맞춰 본가에 들렀다. 할머니는 분주하게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다. 된장찌개에 잡채, 열무김치, 신 김치, 멸치 고추장 볶음 등등. 할머니는 된장찌개를 두 개 준비하여 하나는 내 앞에 하나는 본인 앞에 놔두셨다.
“할매! 왜 된장찌개를 두 개나 했어요?”
“어… 할머니 위가 부었대. 그래서 싱겁게 먹어야 된다 해서…”
평상 씨 짜게 드시던 할머니가 연세가 드셔서 몸이 약해지니 몸이 아프다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게다가 육류를 싫어하셔서 균형 잡힌 식사를 잘 안 하신다. 몸이 안 아픈 게 이상하다.
할머니의 된장찌개는 우렁과 버섯 그리고 호박이 잔뜩 들어가서인지 좀 달았다. 예전엔 할머니의 된장찌개와 김치가 정말 맛있었는데. 지금은 솔직히 그렇지 않다. 간도 못 보시고 무릎이 아파 많이 걷지도 못하신다. 집에만 계신 지 20일이 넘었다고 하셨다. 이제 할머니 집에 오면 이런 슬픈 현실을 마주하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나는 공상가에 회피를 잘하는 인간이라 할머니 집에 오기가 두려워졌다. 내가 상상하는 일들이 벌어질까 봐.
슬프고도 잔인한 현실을 마주하며 먹은 저녁 식사가 끝이 나고 할머니와 큰 방에 들어가 드러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할머니가 어제 짜증 나는 일이 있었다며 속에 있는 얘기를 하셨다.
“니 작은 삼촌 있잖냐? 아니 글쎄 나한테 몇 백만 원을 빌려달라고 그러지 않냐! 나 참 짜증이 나서. 안 그래도 아파서 이러고 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에휴 짜증 나!”
순간 듣는 나도 짜증이 났다. 자세히 물어보니 작은 삼촌과 숙모가 같은 학원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줄어서인지 월급을 챙겨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아니, 코로나 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으면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여태 껏 모아 둔 돈도 없고 놀러 다니기만 하고…”
나의 답답함과 할머니의 짜증이 대화에 잔뜩 묻어났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관여하고 상관할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 이상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게다가 나도 대출을 갚아 나가고 있는 상황이 생각이 났다. ‘그래 내가 누굴 누가 나무라냐’라면서 가슴속에 묻어둔다.
할머니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있다가 또 말문을 여셨다.
“큰 삼촌네 살려고 해도 숙모 때문에 같이 살 수 있겠나…”
“엥? 갑자기 왜 삼촌네에서 지내시고 싶어 하세요? 혼자가 편하다고 하셨잖아요.”
“얼마 전에 머리가 핑 어지러워서 넘어질 뻔했거든…그래서 옆에 누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렇게 가기에는 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순간 많은 생각이 내 머리를 짓눌러댔다. 그렇게 오만 생각에 눌려 질식하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밥을 먹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지금은 당장 무리지만 내년쯤에는 할머니 집에서 지낼 수 있게 준비를 미리 해두어야 할까 하며.
엄마 집밥은 안 먹은 지 10년이 넘어서 잘 모르겠지만 할머니 집밥은 슬픔과 걱정이 담긴 집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