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짜 Oct 27. 2024

10화



 10     

 

 할머니에게 미리 전화를 드리고 본가에 왔다. 할머니를 보려면 꼭 미리 전화를 해야 한다. 안 그러면 항상 복지관이나 친구 집에 계시기 때문에 얼굴을 뵐 수가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된장찌개에 각종 김치와 반찬들이 식탁 위에 있었다. 할머니는 뜨끈한 밥을 주기 위해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셨다.     

 

 “뭐 이리 많이 했어요? 다 먹지도 못하는데.”     

  “다 안 먹어도 되니까. 조금씩 먹어보고 좋아하는 것만 먹어.”     

  “다른 건 몰라도 할매가 만든 된장찌개랑 김치는 맛있겠지.”     


  나는 숟가락을 들어 된장찌개를 한 입 떠먹었다. 으음...맛이 예전 같지가 않네. 게다가 된장찌개가 쓰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젓가락을 들어 김치를 맛 보았다. 김치도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내가 너무 기대를 했던 걸까?     


  “어떠냐? 맛이 있냐?”     

  “······음 아니요. 맛이 예전같지가 않네. 재료가 좀 부족했어요?”     

  “요새 물가가 오르고 돈도 없어서 재료를 다 사지는 못했긴 했다만.”     

 

 할머니는 ‘돈도 없어서’ 라는 말에만 힘을 주어 말했다. 에고 한 동안 할머니 용돈 안 드렸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할머니께 계좌이체를 해드렸다. 집에 갈 때 말씀드려야지. 다시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고 밥을 먹었다.     

 

 할머니는 밥을 먹는 나를 보면서 계속 어떤 반찬이 입에 맞는지, 다음에 올 때는 먹고 싶은 음식을 얘기하면 해 준다는 둥 먹는 얘기만 했다. 백수 시절에는 나에게 돈을 벌어오지 않으니 반찬 투정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 기간이 길어지자 밥은 먹어서 쓸데도 없는데 뭐하러 먹냐고 뭐라하셨다. 더 더 길어지자 똥만 싸지를 거 밥은 왜 처먹냐고 입을 거칠게 사용하셨다. 나는 백수 탈출을 하고 월급으로 용돈을 드리고 나서야 겨우 인간 취급을 받을 수 있었다.     

 

 백수 시절에는 더위와 추위 때문에 서러운 적이 꽤 있었다. 할머니는 워낙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베인 사람이라 에어컨도 장만하지 않고 선풍기로만 여름을 보냈는데 큰 외삼촌이 보다 못해 큰 방에 에어컨을 설치해 주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리모컨으로 에어컨을 키려하자 할머니가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날씨가 뭐 얼마나 덥다고 에어컨을 트냐? 어?”     

  “그럼 언제 틀어요?”     

  “니 삼촌들 올 때나 틀어야지.”     

 

 더울 때 에어컨을 트는 게 아니고 삼촌들이 올 때 튼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할머니는 말 그대로 삼촌들이 와야 트는 거라고 했다. 더운 데 바깥에서 일하고 왔는데 시원한 바람이라도 쐬야 한다면서. 더운 날 전원이 꺼진 에어컨을 보고 있자니 천장에 조기를 매달아놓고 쳐다보면서 밥을 먹었다는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번은 운이 좋게 집에 아무도 없는 날이었다. 아무도 없으니 몰래 에어컨을 틀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맞는 찬 바람은 시원하다 못해 달달했다. 기분이 좋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웃으면서 바람을 쐰지 얼마나 되었을까. 문 밖 계단에서 소리가 났다. 점점 크게 들렸다. 할머니였다. 나는 얼른 에어컨 전기 코드를 뽑고 선풍기를 틀었다.     


  “할머니 왔다.”     

  “네. 할머니 오셨어요.”     

  “근데 방 안에 공기가 찬 거 같다?”     

  “그거 선풍기 틀어서 그렇잖아요.”     

 

 이 대화를 나누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왔다고 얼른 에어컨을 끄는 상황이나 들킬까봐 선풍기를 틀어서 그렇다며 변명을 하는 게 나는 요즘 시대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 겨울에 잘 때는 난방비 때문에 보일러를 거의 틀지 않고 전기장판으로만 버텼고, 씻을 때는 물탱크가 얼어서 씽크대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로 끓여서 씻었다. 잘 사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었다. 여름과 겨울이면 우리는 8~90년대를 살았다.     

 

 생각에 잠겨 웃고 있던 나를 할머니가 보고서는 왜 그러냐고 물어봤다. 나는 백수 시절에 여기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너는 그래도 공짜로 지냈지만, 니 사촌 예림이가 대학교 때문에 여기서 잠깐 지낼 때는 에어컨 비, 보일러비를 냈어.”     

  “······.”

이전 10화 9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