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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짜 Oct 27. 2024

14화



 

 14     

 

 요즘은 어쩐 일인지 병원이 조용하다. ‘끼리끼리 콤비’는 아침 저녁으로 잠깐씩 얼굴만 비추었고 설교쟁이 할아버지는 가족들의 면회가 줄어들자 로비에 내려오는 횟수도 줄었다. 골초 할아버지는 최근에 보호자가 와서는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화를 냈다. 할아버지를 감당할 수 있는 병원이 여기 밖에 없으니 쫓겨나면 이제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러자 골초 할아버지는 입에 자물쇠를 단 것처럼 입도 꿈쩍안하고 병실에서 가만히 누워만 있는다고 했다.     

 

 이렇게 조용히 혼자 있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글을 쓰는게 낯설었다. 그렇지만 오글거리는 글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일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소재를 찾으면 글이 잘 안나오고 글이 좀 잘 써진다하면 누구나 다 하는 얘기에 재미가 없었다. 옆에 사람이 있냐 없냐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결국은 내가 중요한 것이었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갈 때쯤 취침시간이었다. 노트북을 덮고 숙직실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쉽게 잠이 들지 않아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다가 눈이 스르르 잠길 쯤이였다.     

 

 쿠-웅.     

 

 뭔가 터진 듯한 소리가 들려 눈에 힘을주고 방문을 열어 나갔다. 남자 간호사가 정문에서 서성이다가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온 것을 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저...저...경비 반장님! 정문 좀 열어 주셔야겠습니다.”     

 “아, 네. 환자 보호자분들이 지금 오고 계신가요?”     

 “아뇨. 환자 한 분이 창문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순간 내가 잘 못들었는지 싶어 한 번 더 물어봤더니 환자가 창문 방충망을 뚫고 뛰어 내렸다고 하는게 아닌가. 나는 잠겨있는 정문을 열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문 앞에 있는 앰뷸런스 차 윗부분이 둥그렇게 파여 있었고 타이어 근처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고꾸라져 누워 있었다. 할아버지 주위에는 깨진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믿기지가 않았던 나는 눈을 한 번 더 비비고 확인했다. 꿈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창문으로 뛰어내려서 사망했다.      

 

 구급차가 먼저 오고 경찰차가 뒤이어 왔다. 소방대원들은 사망원인을 확인하고 돌아갔고 경찰들이 나와 남자 간호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다 물어본 경찰은 조금 있으면 형사가 와서 또 조사하고 물어볼거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믿겨지지 않았던 나는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형사가 와서 또 이것저것 물었고 그 뒤에는 KCSI라는 곳에서 온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이러지리 살피며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니 이상했다. 자꾸만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할아버지의 침대 근처에 유서를 발견했다. 그 내용은 할아버지가 앓고 있는 병이 너무나 아프고 괴롭다, 이 정도면 오래 살았다는 말과 함께 인사를 하며 내용은 끝이 났다. 병이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할아버지는 고통스러워하면서 까지 오래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모든 조사가 끝나자 경찰들은 돌아갔고 할아버지의 가족들이 왔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남긴 유서를 보며 크게 한 숨을 쉬거나 눈물을 훔쳤다. 어쩌면 가족들도 이렇게 괴로워했던 환자가 그만 고통스러워하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간 있었던 모든 일들을 의심 하나없이 그대로 받아들인 보호자들은 경찰서에 갔다.     

 

 응급차 앞에 떨어진 할아버지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너무나 편안한 얼굴에 약간 올라간 입꼬리가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날부터 밤만 되면 할아버지의 얼굴이 환상처럼 내 눈앞에 나타났다. 할아버지의 눈빛이 꼭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부럽지? 부럽잖아. 그러니 뛰어내려! 너도 얼른 뛰어내려라.”     

 

 스물 아홉 살 적에 자살에 실패한 날이 떠올랐다. 그 때 뭐 때문에 실패 했더라? 아 그래, 전화통화! 할머니에게서 온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옥상 난간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다.     

 

 “너 지금 어디야? 어! 할머니가 얼마나 너를 찾았는 줄 알아. 전화는 또 왜 안 받고 말이야.얼른 집으로 와. 김치찌개에 너 좋아하는 돼지고기 넣었다. 듬뿍 넣었으니까 와서 얼른 먹어. 이 녀석아 할머니는 너 마저 없어지면 할머니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할머니의 훌쩍이는 소리가 나를 집으로 데려왔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가 어찌나 맛있던지 그 날 밥은 두 공기 이상 먹었던 것 같다.     

 

 할머니와 하는 전화통화는 안부를 묻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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