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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무과에 얘기해서 3일 연차를 썼다. 아픈 걸 참아보려 했지만 아침에도 일을 나가니 몸이 버티질 못했다. 병원에 가니 잠을 잘 못자서 면역력도 떨어지고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 그런 거라고 했다. 주사를 한 대 맞고 집에 가니 간만에 잠을 푹 잤다. 몸이 많이 괜찮아졌다. 역시 돈이 좋긴 좋구나 하며 거울을 봤다. 돈이 좀 더 있었더라면 못난 얼굴도 좀 괜찮아 질텐데···다시 거울을 보니 아닐 수도 있겠다 싶어 피식 하고 웃음이 났다. 역시 돈은 많아야 해.
학교에서 배식을 다 마치고 희진이를 기다렸는데 오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어찌된 일인지 몰라서 희진이와 같은 반 친구에게 희진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희진이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신데 돌봐줄 사람이 없대요. 그래서 희진이가 옆에 있느라 학교에 못 나왔어요.”
나는 엄마가 정말 아플 때는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엄마는 너무 아파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내게 보이기 싫다고 했다. 그래도 옆에 있고 싶다고 했으나 엄마는 끝까지 반대했다. 할머니가 병실에서 엄마와 꼭 붙어 있다가 가끔씩 집에 올때면 늘 우셨다. 할머니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잠이 들기전까지 계속 울기만 했으니까.
배식 알바를 마치고서 바로 희진이집에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남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진이 남동생이었다. 나에게 ‘누구세요’ 하고 묻길래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희진이에게 나는 그저 배식 도우미일뿐인데. 내가 뭐라고 희진이 집에 전화를 한 걸까.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 거지같은 상황 속에서도 내겐 옆에 도와줄 사람이 있었다. 희진이에게 어른이라곤 할아버지밖에 없다. 게다가 어린 동생들도 보살펴야 한다. 그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주고 싶었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내가 뭐라고.
“혹시 급식 쌤이세요?”
“어······? 으, 으응 그래 급식 쌤.”
결국 대답을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더니 희진이가 결국 전화를 받은거겠지. 희진이의 목소리에는 궁금증이 묻어 있었다. 하긴 대뜸 내가 전화를 했으니 이상한 건 당연하겠지. 나는 얼른 말을 돌려 왜 학교에 오지 않았냐고 모르는 척 물어봤다.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세요. 제가 옆에서 밥도 떠드리고 동생들도 돌봐야해서 학교에 못 갔어요.”
“그렇구나······. 삼촌한테 희진이 집 주소좀 알려줄 수 있겠니? 삼촌이 맛있는 저녁 먹게 해줄게. 아! 물론 희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안 가르쳐줘도 괜찮고. 니가 부담스럽다면 나도 싫으니까.”
“······아니요. 저한테 유일하게 남은 반찬을 준 쌤인걸요? 그 동안 다른 급식 쌤들은 집에서 밥도 안 해주냐면서 막 뭐라고 했거든요. 하나도 안 부담스러워요. 우리 집 주소는요······.”
나 같은 놈에게 마음을 열어준 희진이가 고마웠다. 희진이는 나의 어린 시절과 너무 달랐다. 난 항상 흑색 얼굴을 하고 사람들을 경계했다. 우리 가족의 가난과 질병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게 싫었다. 엄마가 떠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바라보는 동정의 눈빛과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늘 느끼며 살았다. 나의 힘듦이 그들에게는 그저 이야기거리에 불과했다. 나는 가난과 질병, 죽음이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