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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Feb 28. 2024

이별은 조명이다


 8년 전 친구의 남편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친구는 이상증세를 느낀 남편이 혼자 보험 가입하고 어느 정도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자마자 제 발로 병원에 찾아갔다고 했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친구 남편은 백혈병 환자 치료법 중 하나인 자가조혈모세포 이식 후 면역반응으로 중환자실에 들어간 후 어린 남매가 기다리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친구는 세포 하나하나에서 고름이 터진 채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해도 얼굴이 일그러져만 가는 남편을 보며 온갖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살려달라고. 반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아내에게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남편 모습에 절박해진 친구가 찾아간 용한 무당의 처방도 무용했던지, 면역반응은 채 한 달도 못되어 친구 남편을 집어삼켰고 친구는 반쯤 넋 나간 상태로 조문객을 맞았다. 친구 옆에서 넷, 다섯 살밖에 안된 두 아이들의 해사한 얼굴을 보며 친구 남편이 눈을 감는 순간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져 더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친구가 전한 말은 이렇게 들렸다.

 

 “남편을 먼저 보낸 나는 혼자 아이들을 기르며 남편과 함께 보낸 시간을 반추하기 시작했어. 함께 머물던 공간, 함께 쓰던 물건, 무엇보다 남편을 닮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과거의 어느 순간 속 남편의 모습이 유난히 선명하게, 오랜 시간 떠올라. 그런 때엔 남편이 곁에 있는 느낌마저 들어 남편의 부재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어. 어울리지도 않는 아재개그, 군말 없이 늘 무거운 시장바구니를 들고 앞서가는 남편의 뒷모습, 바쁜 나를 위해 김을 불어가며 안경알을 세심하게 닦아주던 남편의 얼굴. 당연하게 생각하며 무심히 지나쳤던 그 사람의 소소한 말과 몸짓 하나하나에 연이어 스포트라이트가 켜지더라. 조명을 받은 남편을 가만히 응시하며 나는 그제야 스쳐간 그 모든 것들이 나를 향한 사랑의 언어였음을 알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곤 했어. 그런데 시간이 나를 사정없이 찌르던 그 뾰족한 아픔들도 무디게 만들더라. 남편의 존재는 이제 내 가슴 속에서 등대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은은한 파스텔 빛으로 내가 가는 길을 비춰주며 힘이 되거든.”

 

 모든 이별은 아프다. 하지만 이별은 미처 몰랐던 존재의 의미를 선명하게 비추어주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주변의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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