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소나기를 피하지 못하면 같이 맞자며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차별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리라는 선한 마음을 표현했다. 뭐 이리 착한 사람이 다 있나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지금 내 위에 쏟아지는 비도 감당 못하는 형편이라 그저 저자에 대한 존경의 마음만 품으며 책을 덮었다.
지난주에 아픈 허리를 질질 끌며 출근을 했다. 사명감이나 책임감에서가 아니다. 오랜 시간 직장생활을 하며 몸엔 밴 관성으로 그저 내게 주어진 일을 습관처럼 ‘성실하게’ 했을 뿐이다. 참고 참았더니 다리가 풀리기 시작했고 책 한 권 들 힘이 없어 바닥에 떨어진 인쇄물을 주워달라고 부탁했다. 대상포진이 오고 기력이 없어 혼절할 것 같아도 출근한 나의 이상한 관성을 아는 동료들은 말했다. 정말 둔하고 어리석다고.
이번 주엔 결국 출근을 못했다.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일어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지만, 사실 일은 나를 버티게 한 내 삶의 동력이었다. 내 존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랄까. 가족들을 대하며 체념과 분노, 자책과 연민을 되풀이하며 보내길 수년. 그 지리멸렬한 시간을 겪으며 삶 앞에서 무력해지는 나를 붙잡아 준 건 역설적이게도 내가 그만두길 희망하던 일의 존재였다. 하루하루 늙는 게 느껴질 만큼 몸은 소진되었지만 나는 직장에서 숨이라는 걸 쉴 수 있었고 내 존재가치를 확인했다. 감사하다 생각했다.
침대 위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늘 바삐 흘러가던 시계가 속도를 늦추니 불현 듯 소나기를 같이 맞겠다는 김승섭의 말이 떠올랐다. 이리 저리 뒹굴다 그 누구와도 기꺼이 비를 맞아본 적이 없는 소심하고 겁 많은 인간이 나라는 생각에 미치자 밉던 아이에게 미안했다. 남편이 측은했다. 책에서, 주변에서 본 삶의 속성은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걸, 아니 오히려 소나기, 폭풍, 태풍이 훨씬 잦더라는 걸 눈으로 보면서도 지금 우리 가족이 맞는 세찬 비를 피하고만 싶었지, 같이 맞을 생각은 못했다. 우리는 각자 각자의 자리에서 외롭게 비를 맞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를 원망하고 서로를 탓했으며 때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우리 집엔 더 이상 희망이 놓일 자리가 없다 여겼다.
왜 나는 우산을 구할 수 없는 내 신세만 한탄하며 같이 비 맞을 생각을 못했을까. 우산이 없는데 우산을 달라는 딸에게 우산은 없지만 네 위에서 내리는 비를 같이 맞아주마 말해줄 수 있었다면 갈 곳 모르는 아이의 방황이 조금 덜 힘들지 않았을까.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각자 비를 맞으며 절망하기보다 함께 비를 맞으며 온기를 나눠야 했다. 부부이자 부모라는 정체성을 지켜야 했다. 인간은 불행하려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했다.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표지에 적힌 글귀다. 사는 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무데나 마침표를 찍어댔다. 쉼표를 알아보는 눈이 있다면 ‘아픔을 길로’ 만들 지혜도 있었겠지 싶다. 괜찮다. 이제라도 같이 비 맞을 준비가 되었으니. 잊기 전에 밖에서 방황하고 있는 딸에게 마음을 전해야겠다.
J야. 사람이 살면서 세찬 비를 언제나 피할 수는 없어. 하지만 긴 터널도 끝이 있듯 비도 언젠간 그치게 마련이야. 네가 지금 맞고 있는 차갑고 아픈 비. 엄마가 같이 맞아줄게. 비를 그치게 할 능력도 네게 우산을 마련해줄 능력도 없지만, 같이 비를 맞으면 서로 덜 춥지 않을까? 결국, 괜찮을 거야. 그 생각만 하며 이 비가 지나가길 바라자. 비 맞은 아픈 경험도 훗날 다 네게 쓰일 데가 있을 거야. 어떤 상실과 아픔도 괜히 오는 게 아니래. 비가 개면 하늘이 더 파랗듯, 네 삶도 더 자유롭고 아름다워 질 거야. 지금 네 머리 위에 쏟아지는 비가 네 인생을 더 값지게 하리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