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교무실에 들르는 남학생이 있다. 희귀병에 걸린 아이고 코로나 시기에 사경을 헤맨 이력이 있다고 해 학기 초엔 적잖이 긴장했다. 시각장애로 보는 게 불편하고 양다리의 길이가 달라 계단 오르내리는 데 도움이 필요한 아이지만 정말 해맑은 친구다. 솔직하고 잘 웃고 착하고 때론 내게 ‘치실’ 있냐, ‘감기약’ 있냐 라는 엉뚱한 질문도 서슴지 않아 사람 어이없게 만드는 기술도 있는 아이. 하지만 늘 피식피식 웃는 모습이 공기를 따뜻하게 만들어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아이. 그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도 대학 갈 때 자기소개서 썼냐고.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시절은 이제 너무 멀고 아련하다.
그 누구든 젊은 사람은 빛나 보이는 나이가 되어 그런가. 대학 입시를 떠올리자 ‘20대’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고, 그 말이 참 아름답다 느껴졌다. 마침 수업 중 곧 이십 대가 될 학생이 만약 크리스마스 선물로 뭐든 받을 수 있다면 뭘 받고 싶냐고 물었다. ‘평안한 마음’을 얻고 싶다고 했지만, 마음 한편에선 혹시 돌아갈 수 있다면 30대도, 40대도 아닌 20대로 돌아가 원 없이 빛을 발하며 살아보고 싶기도 했다. 싱싱한 젊음이 내뿜는 에너지를 만끽하면서. 혹시 가능하다면 당시 나와 요양원에서 칙칙한 시간을 공유하던,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오빠’에게도 신의 가호로 환한 20대를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선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도 싶었다.
원인 미상의 면역질환으로 이십 대에 요양원에 들어간 적이 있다. 경기 외곽의 요양원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말 그대로 요양을 하는 곳이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기거했다. 대학 갈 때 자기소개서를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도 그 요양원에 있던 사람들의 이미지는 흐릿하게나마 가끔 떠오른다, 연신 기침을 하던 폐암 말기 할아버지. 평범하게 직장 다니다 에이즈에 감염 된 30대 젊은 회사원.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어두운 얼굴로 요양원을 배회하던 오십 대 아주머니... 그리고 같은 이십 대라는 이유로 친하게 지내던 그 ‘오빠’. 아쉽게도 그 오빠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지만 지금도 얼마 남지 않은 치아를 드러내며 웃던 그 선한 얼굴은 기억에 또렷하다.
스포츠머리, 하얀 얼굴, 큰 눈망울, 선이 고운 콧날, 붉은 입술, 키는 180센티미터가 넘지만 밥과 반찬 같은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해 젓가락처럼 말랐던 그 오빠는 경상도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요양차 경기도에 왔었다. 당시 내가 머물던 요양원이 아마도 뭔 ‘기적’의 치유 효과를 낸다는 입소문으로 나름 유명한 곳이었을 거다. 그런 곳엔 그 ‘기적의 치유 효과’가 사실이든 아니든 원인 미상, 치료 불가 등의 꼬리표를 단 절박한 사람들이 모이게 마련이다. 당시 교사였던 그 오빠의 어머니도 아마 수소문 끝에 그 오빠를 그리 데려왔을 거다.
젊음은 젊음이 편한 법.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아픈 처지에도 그 오빠와 말을 텄고 가끔 서로의 아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오빠의 사연을 알게 됐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오빠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어느 순간 밥을 먹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자리에 눕고 말았다고 한다. 온갖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해도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오빠는 결국 요양원에서 생활하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내 기억에 오빠는 자신을 괴롭힌 동기들에 대한 원망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자신으로 인해 어머니가 힘드신 걸 마음 아파했고 자신도 모를 자신의 미래, 어쩌면 종국엔 이른 죽음을 맞게 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종종 내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선해 구겨질 대로 구겨진 내 마음도 덩달아 환해지던 기억이 있다.
가만있어도 빛을 발하는 나이 이십 대. 그 이십 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모르고 지나갔고 이제 와 나의 이십 대를 떠올리면 그저 우중충한 회색 빛깔이 희미하게 번지는 가운데, 그 오빠와의 시간이 떠오르곤 한다. 사이사이 기쁜 일, 슬픈 일도 많았을 테고, 당시 만나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빛나는 그 시절을 만끽하지 못해 설까. 나의 이십 대는 지금까지 아쉽기만 하다. 더불어 요양원에서 만난 오빠의 이십 대도.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게 당연한 나이. 그 오빠는 지금쯤 회복되어 평범한 삶을 살고 있을까.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 아무 잘못 없이 아팠음에도 암울한 공간에서 환하게 웃어주던 따뜻하고 선한 사람이었기에. 착하면 복을 받고 나쁘면 벌을 받는다는 게 꼭 현실에 적용되진 않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선한 사람은 종국에 더 행복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그 시절, 그 요양원으로 돌아가 이십 대의 내게, 그 오빠에게 마음 깊이 꾹꾹 눌러 새겨줄 수 있다면 우리가 아팠던 시간이 조금은 더 가벼웠을까. 빛나는지도 모르고 빛을 내던 이십 대의 안쓰러운 우리를 어쩐지 꽉 안아주고 싶은 날이다. 그로부터 지난한 세월을 건너 지금 여기에서 애쓰는 나 자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