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우리 아버님

by 지희

불운은 연이어 모습을 드러낸다 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죽여 달라며 하소연을 해 나야말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고 남편이 사채를 써 마침 전화를 건 시아주버니에게 남편과 이혼을 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이틀 뒤 아버님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엄지발가락 위에 생긴 염증이 노쇠한 몸을 집어삼킨 걸까. 말 못 할 통증과 호흡곤란이 원인이었다. 불과 며칠 전 추우니까 광화문에 나가지 말라고 전화하시며 이래저래 나라걱정을 하시던 아버님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그런 아버님이 중환자실에 계시다니 믿기지 않았고 눈물이 흘렀다.


22년 전쯤 아버님을 처음 뵈었다. 유난히 효자인 남편은 단지 교제를 하는 사이인 나를 자신의 연로하신 부모님께 빨리 소개를 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시골에서 착실한 노동으로 자식 넷을 키우신 분들에게 여자 친구를 소개하고 결혼을 한 후 손주를 안겨드리는 일. 단지 그 일이 당시 남편에게는 큰 효도라 여겨졌던 거다. 처음 간 남편의 집에서 뵌 아버님은 남편과 달리 키가 훤칠하고 인물이 좋으셨다. 입원하시기 전에도 시골에 가면 어머님은 동네 할머니들이 그렇게 먹을 걸 갖고 온다고 웃으며 말씀하시곤 했다. 광복 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배움이 짧았던 아버님이셨지만 역사와 한문에 일가견이 있던 아버님은 입담도 좋아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많이도 들려주셨고 손재주도 빼어나 시골집 여기저기에 아버님의 지혜가 담긴 생활소품이 눈에 띄었다. 낮은 음성으로 이름을 불러주실 때마다 불 지핀 난롯가에 서 있듯 몸이 훈훈해졌던 건 아버님의 목소리가 따뜻해서기도 했지만 며느리에 대한 애정이 담뿍 들어 넘쳐흘렀기 때문일 거다.


손수 말린 곶감이며 떡, 사과, 식혜 등 무엇이든 먹으라고 내어주시던 아버님은 눈이 많이 내리면 ‘운전조심해라’, 뉴스에서 안 좋은 학교 소식이 들리면 ‘네가 고생이 많다’고 늘 먼저 전화를 주셨다. 무뚝뚝하고 사회성 없는 맏며느리였음에도 개의치 않으시고 사랑해 주셨다는 걸, 아버님이 중환자실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절감한 나는 병원에 누워계신 아버님의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다행히 일반병실로 옮긴 아버님의 모습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쇠잔했다. 원래 말랐던 몸은 마른나무꼬챙이처럼 황폐했다. 총기 넘치던 아버님의 눈은 동공이 풀려 흐려진 채 당신을 찾은 나와 남편, 그리고 당신의 큰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누군지 기억을 더듬는 듯 보였다.


"아버님 저 알아보시겠어요?"

"그럼. 그럼."

.........

"아버님 치료 잘 받으시고 얼른 일어나셔야죠."

"아버지가 미안하다. 너희가 어려울 때 도와줘야 하는데, 남겨줄 것도 없고."

.........

"아빠 얼른 일어나. 엄마가 혼자서 기다리잖아. 아빠만 아는 팥죽집에서 동짓날마다 아빠가 사 준 팥죽 드셨는데, 엄마가 오늘은 팥죽도 못 드시고 혼자 계시잖아."

"여기가 어디냐?"

.........


기력이 쇠한 아버님은 말씀 끝에 까무룩 잠이 드셨고, 다시 눈을 뜨시면 여기가 어디냐고 하셨다. 그 와중에 손을 내밀어 나의 손을 꼭 잡아주며 내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대체 뭐가 그리 미안하실까. 오히려 내가 죄송한 마음이 물밀듯 밀려왔다.


동지 전날 어머님은 동지면 아버님만 아는 맛있는 팥죽집에서 당신 드시라고 아버님께서 늘 팥죽을 사 오셨다고 했다. 허리와 심장 통증으로 지금은 열 걸음도 떼지 못하시는 어머님은 혼자서 매일 집안의 먼지를 쓸고 닦으며 아버님이 돌아오시길 기다리고 계신다. 55년도 넘게 같이 새 해를 맞고 팥죽을 나눠드시며 동고동락한 두 분의 깊은 정을 나는 가늠 못하지만, 무 자르듯 자를 수 없는 질기고 질긴 부부지정을 조금은 알기에 아버님이 제발, 기력을 회복하시고 어머님께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아버님은 지금 발등에 생긴 작은 염증이 펴져 무릎 밑으로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하셨고 심장의 막힌 혈관을 뚫는 시술을 앞두고 있다. 전쟁과 독재. 파란만장한 역사의 굴레에 맞물려 험난한 인생 여정을 일궈 오신 강한 분이기에 이번에도 잘 이겨내시리라 믿는다. 끝인 줄 알았던 내리막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게 인생이라지만 삶과 죽음은 그 누구도 예단할 수 없는 것 또한 인간의 삶이다. 며느리를 과분하게 아껴주신 아버님께 감사인사도 아직 전하지 못했고 뭣보다 자식들이 고전하는 모습을 마음에 담고 떠나시는 무거운 발걸음은 우리 아버님께 어울리지 않는다. 주변에 구십 넘어 생에 마침표를 찍는 분들이 많다. 남편 말대로 단지 몇 년이라도 더 아버님이 곁에 계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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