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잠이 오지 않았다. 커피도 마시지 않았고 종일 밀린 일거리를 처리하느라 피곤했다. 그런데 묘한 불안감에 잠들 수 없었다. 방안이며 거실을 서성였다. 서너 차례 정수기의 버튼을 눌러 찬물을 들이켜다 잠시 산책을 할까 망설였다. 내게 불안은 익숙하다. 언제부턴가 사고 회로가 기승전-불안으로 고착화된 것 같다. 결론에 이르는 사고과정에 뚜렷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연이어 발생하다 보니 폭탄을 안고 사는 것처럼 가끔, 아니 수시로 불안했다. 어젯밤에도 불안증세가 나타났다. 이럴 때 유일하게 도움이 되는 건 독서다. 문장들을 더듬으며 집중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대개는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
이주 전 즈음, 블로그에서 <나의 두 번째 교과서, 나민애의 다시 만난 국어>를 홍보하는 글을 봤다. 강의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분이 쓴 국어 교과서라니 궁금해서 덜컥 구매했는데 손이 가지 않아 조만간 읽겠거니 침대 맡에 두었다. 스멀스멀 밀려오는 불안에 팔을 뻗어 책을 집어 들었다. 친절한 교수님이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뜬 눈으로 새벽까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지막 강의. 제목을 붙이는 것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평소 제목 붙이는 게 제일 어려운 터라 내심 기대감이 생겼다. 제목 잘 붙이는 노하우를 배울 수 있겠구나. 하지만 역시나 제목 붙이는 건 어렵다는 결론과 나의 생에는 어떤 제목을 달 수 있을까,라는 생각지 못한 의문에 머리가 하얘졌다.
작가님은 하루를 잘 살고 마치면서 ‘나의 하루’에도 제목을 붙여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 날 ‘우리 인생’에 보다 뿌듯한 제목이 달리길 응원한다며 글을 마무리한다. 글을 쓰고 제목을 다느라 고심해 본 적은 있지만, 그 고심이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핵심을 간파하는 통찰력이 부족한 탓이라 여겼다. 하지만 ‘나의 인생’에 제목을 다는 일은 부족한 통찰력을 탓하며 은근슬쩍 대강 할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누구의 인생이든 다 그렇듯.
삶을 돌아봤다. 내가 만약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 대한 종합의견을 짧게 작성한다면 아마도 이런 정도로 기술하지 않을까. ‘성실하게 맡은 바 책임을 다 하나 자의식이 강하고 열등감이 심해 부정적인 경향이 있음. 이를 개선한다면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임.’ 그러면 그런 나의 요즘 삶을 제목으로 달아보면 어떤 제목이 적절할까. 이렇게 달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안갯속에서 헤엄치기.’ 열심히 뭔가를 계속 하긴 하지만 뭘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랄까. 불현듯 가끔 찾아오는 불안의 이유가 손에 잡히는 듯했다.
원하지 않는 일을 선택한 적은 없다. 그러니까, 어느 누구도 내게 안갯속에서 헤엄치라고 말한 적 없다는 이야기다. 아프고 무섭지만 적어도 나의 내면을 이루는 풍경은 온전히 ‘나 스스로’ 그린 것이다.
요즘 난 사고 회로를 바꾸려고 애를 쓴다. 눈을 감는 날까지 미궁 속에서 헤매고 싶지는 않아서다. 이제 쓴다. 2025년에는 깨어 있자. 좋은 사람이 되자.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자. 눈을 감는 날엔, ‘여한 없이 좋은 삶’이라는 인생 제목을 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