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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Mar 01. 2024

마돌 1

엄마, 미안해요.

 느닷없이 엄마가 집에 쳐들어와 김치를 담근다. 빨간 플라스틱 김치 통 두 통을 채운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고 난 꿈에서 깼다.

엄마는 꿈에서까지 나에게 뭘 주기만 하는구나. 달라는 것 하나 없이.

쉰을 바라보는 나이. 우리 엄마는 아직도 내 삶의 버팀목이다.

쉽게 말해, 난 엄마 없으면 못 산다. 우리 엄마 없이는.


 엄마.

 어떤 글이든 어떤 영화든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차오른다. 결국 흐르는 눈물을 닦다 울어버리게 만드는 이름. 내게 엄마는 버팀목인 동시에 눈물을 자아내는 슬픔이기도 하다.


 우리 엄마는 겨우 다섯 살 무렵 아버지를 여의었다. 6. 26 참전 당시 가슴에 총상을 입었다던 외할아버지는 그 후유증으로 서른도 못되어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가 억지로 재혼을 하는 바람에 우리 엄마는 엄마도 없이 큰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청상과부가 된 딸을 엄마에게서 떼 놓은 외할머니 가족을, 어쩔 수 없었더라도 엄마를 떼어놓고 간 외할머니를 머리로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곱게 보지는 못하겠다. 그러기엔 우리 엄마가 살아온 생이 너무 불쌍하다.


 “먹는 것도 참.”

 비위가 약한 엄마가 음식을 깨작거리는 모습에 타박을 주던 큰 엄마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런 배경에 놓인 여자아이가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상경해 미싱을 돌리는 모습은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런데 하필, 경제적인 능력이 전무한 아빠를 만나 시부모에 아빠의 형제들까지 건사해야 했던 엄마. 부모도 없이 자란 여자가 밑천도 없이 만날 수 있는 남자가 뭐 얼마나 대단할까. 그래도 아빠는 심했다. 아빠가 빠지면 엄마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한 평생 벽에 못 한 번 박지 않은 사람‘ 정도로 갈음하려 한다. 이제 와서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낸들 엄마 삶이 달라지는 부분도 없을뿐더러 산 날보다 살날이 적어진 아빠를 피붙이로서 마냥 미워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평생 남의 집 품을 팔며 가난한 살림을 근근이 이어나가던 엄마가 밭에서 혹은 논에서 지친 모습으로 뉘엿뉘엿 이울던 해의 노을빛을 받으며 집으로 걸어오던 모습이 떠오른다. 혼자 걸으며 풀피리를 불었던가, 풀줄기를 씹었던가. 호리호리한 몸에 추레한 옷을 걸친 엄마의 다문 입에선 항상 슬픈 음이 흘러 나왔다. 어린 나이에도 엄마의 낮은 허밍은 해지는 서녘 하늘의 노을과 참 닮았다 느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앉을 새 없이 아홉 식구가 먹을 밥상을 차리고 치운 후 아홉 식구가 벗어 놓은 옷을 손빨래 하던 엄마의 루틴은 사계절 변함이 없었다. 겨울밤에도 찬물로 손빨래를 하고 늦은 밤 방을 걸레로 훔치고 나서야 잠을 청하던 엄마. 자식 셋 중 하나가 열이라도 나면 밤샘 하며 찬 물수건으로 열을 가라앉혔고 잔병치례가 많았던 나는 늦은 밤 약국을 찾아 삼 킬로미터쯤 떨어진 외진 길을 엄마 혼자 자주, 걷게 했다. 열이 끓는 와중에도 엄마가 약을 사러 나가면 걱정스러웠다. 집에서 약국까지 가려면 하천 다리를 건너 야산 사이게 가로놓인 언덕을 넘어야 했으니까.


 70이 넘은 엄마랑 주말이면 같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한다. 여동생도 동행하며 농담 삼아 키우는 개 몽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 대박 나겠다고 너스레를 떨며 웃던 산책 길.

엄마가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몽실이가 ‘마돌’이라고 부르겠네.”

동생과 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 ‘마돌’이 아니고 ‘마더~ㄹ’. 따라해 봐.”


 민망해 하는 엄마 표정을 보며 삐뚤빼뚤 정성스레 알파벳을 써놓은 엄마의 공책이 떠올랐다.


 엄마 웃어서 미안해요.


 마돌,이라는 말에 마음이 복잡해지며 엄마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결심했다. 그렇게라도 표현 못했던 마음,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존경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타인의 주목을 받진 못했으나, 삼남매가 가는 길을 환하게 비춰주려 무던히 애쓴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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