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 독실한 기독교 신자와 영어 회화 스터디를 했었다. 대화 중 믿음이 잘 생기지 않는다는 나의 말에 이런 대답을 들었다.
“아직 덜 힘들어서 그래요.”
덜 힘들었기 때문은 아니다. 젊은 시절엔 희망이 있었고, 삶이란 내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믿음이 커서 절망스러워도 크게 낙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삶에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요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깨닫게 되며 체념이라는 걸 배우게 됐다. 아픔과 함께.
작년에 사주 공부를 했다. 남편과 딸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서였다.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오 년 여의 시간. 지옥이 따로 없었다. 뭔가를 쓰고 읽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었다. 어느 순간, 읽는 일도 쓰는 일도 모두 버거워졌다. 직장생활을 온전히 해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했다.
사주 공부를 하며 처음엔 남편과 딸의 사주를 자주 들여다봤다. 하지만 결국 뜻밖에도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남편과 딸로 인해 힘든 점도 분명 있었지만, 내가 만들어온 악영향 또한 적지 않다는 깨달음이 마음속에서 스멀거렸다. 내 사주엔 ‘끊어내는 기운’이 없다. 사주로 본 나는 한마디로 ‘마음이 여리고 측은지심은 강하나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좋게 보면 공감을 잘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는 기운이지만, 실속이 없고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악순환을 강화시키는 성분이기도 하다.
사주에서는 사람들을 그냥 두면 소위 팔자대로 개인의 속성이 발현된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인간의 의지가 ‘타고난 어떤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여지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부에 따르면 2026년은 내 마음속에 쌓인 것들이 병이 될 수 있는 해다. 타고난 에너지 수위가 낮아 자존감이 낮고, 겉보기와 달리 머뭇거리고 눈치 보느라 바쁜 타입이다. 이제 생존을 위해 거의 반백 년 동안 입어왔던 옷을 벗어버리려 한다. 한꺼번에 벗어던질 수는 없겠지만, 내 삶의 걸림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얼마 전 어떤 블로그에서 대한민국 오십 대의 위기에 관한 글을 봤다. 슬슬 몸이 아프기 시작하는 나이, 자식 교육비와 노부모 병원비가 큰 부담이 되는 데다 직장은 위태롭고 이직도 쉽지 않은 시기. 남자도 여자도 사는 게 쉽지 않은 나이다. 개인적으로 여자 나이 사십 대는 ‘중세 암흑기’라는 말을 달고 살 정도로 이미 자갈길, 가시밭길이 깔린 터널을 기어가는 중이다.
그래도 작년 초까지는 이런저런 계획을 빼곡하게 적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평범하게 살 수 있는 럭키한 인생은 이미 내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 덕에 숙고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더 나락으로 가지 않을까. 고심 끝에 찾아낸 결론이 ‘끊어냄’이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인생의 묘미랄까, 사주의 묘미랄까. 희한한 건 천천히 체념을 배워가던 그 시기에 내게 닥친 운이, 쉽게 말해 나의 밥그릇을 확 엎어버리는 운이라는 점이다.
공부는 했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믿음이 원체 생기지 않는 의심형 인간이라 사주를 다 믿는 건 아니다. 다만 흥미로운 건 쓰나미가 밀려오기 전에 의지를 발휘하면 또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점이다.
물의 흐름을 거스르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해보려고 한다. 속풀이를 위해 뭐라도 꾸준히 쓰며, 이 나이 먹어서도 잘 못하는 거절을 배우는 것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