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넘기며

by 지희

네이버 검색창에서 삼육서울병원 장례식장 위치를 검색했다. 저녁에 남편과 조문을 갈 예정이다. 어젯밤, 남편 누나의 남편. 그러니까 우리 아이의 고모부 부친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모부를 안 지 20년쯤 된 듯하다. 짧지 않은 시간이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건장한 체구를 한 그는 첫인상부터 별로였다. 사람을 이리저리 재는 눈.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거침없는 입담. 조폭 영화의 중간 보스는 되고도 남을 아우라. 친인척 관계가 아니었다면 나와 관계를 맺을 어떤 접점도 없는 사람. 시댁에서 고모부의 위세는 대단했다. 점잖은 시부모님과 남편의 형제들은 고모부의 성격을 아는지라 대부분 고모부의 말을 그저 듣고 있었고, 때론 술김에 나온 육두문자로 집안 분위기가 썰렁하고 착잡했다. 가끔 남편에게 말했다. 고모부도 오는 자리면 난 그 어디든 빠진다고. 생각해 보면 웃긴 말이다. 시댁에서 나의 위상이나 그의 위상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그 드세던 사람이 다 큰 딸들을 위해 아메리카노와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사다 날랐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사는 일의 고단함을 가끔 토로했다. 온갖 곳을 휘젓고 다니며 진두지휘하던 위풍당당함이 사그라지고 슬금슬금 자식들 눈치를 살폈다. 목소리는 여전히 컸지만 그도 나처럼 늙어가고 있었다.

작년 여름 시아버님 생신 때 본 고모부는 눈에 띄게 야위어있었다. 혈압도 조절하고 다이어트도 할 겸 걷기 운동을 한다고 했다. 호리호리해진 모습을 보며 걷기가 다이어트에 정말 좋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그해 가을. 고모부가 위암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4기라고 했다. 복막에 퍼져 수술은 불가능했고 끝을 기약할 수 없는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올 2월 세상을 떠난 시아버님 장례식장에서 본 그는 고통스러운 항암 부작용에 더 수척해 있었고, 시간을 견디는 게 힘들어 보였다.

워낙 강한 사람이라 암이 두 번 와도 물리쳐낼 사람이라 생각했고, 정말 잘 이겨내기를 지금도 바란다. 아직 넘지 못한 감정의 거리낌으로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가 서먹한 사이지만 이따금 소식을 물으며 제발 잘 치료되길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어제 퇴근 후 몸살 난 몸뚱이를 겨우 추스르며 청소를 하고 국을 끓이는데.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다. 고모부의 부친께서 돌아가셨다고. 조문 관련 이야기가 오가는 중, 고모부의 구토증세가 심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부모님과의 사이가 원만치 않아 처가에서 명절을 쇠던 사람이었지만 그 몸을 하고도 상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고모부의 모습이 떠올라 내가 다 조바심이 났다.

사는 일이 녹록지 않다. 그리고 참 외롭다. 만나길 꺼리고 거리를 두었던 사람이라 해도 개인이 오롯이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가 남다를까.

하루가 더 지나면 해가 바뀐다. 이어지는 해엔 모두 덜 고독하길, 덜 쓸쓸하길. 나의 부족함이 누군가에게 누가 되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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