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남편이 싱크대에 남겨둔 빈 그릇을 설거지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건조대에 걸어놓은 마른 수건도 정리해 화장실 수납함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이십여 페이지 남겨둔 상태다. 학살에 대한 묘사를 이어 보기가 어려웠다. 아이 때문에 서너 시간 밖에, 아니 어쩌면 더 조금 잤을 거다. 머리가 무겁고 몸이 쑤신 날엔 으레 감각이 더 예민해진다.
편의점에서 네 캔에 만 원 주고 산 칸타타 블랙을 텀블러에 콸콸 따르고 얼음을 여섯 알 넣었다. 오밤중에 돌아와 저녁을 먹는 남편 앞에서 내일은 간장에 삶은 달걀을 조리고 오이무침을 해야지 생각했다. 작은 냄비에 달걀 여덟 알을 옮겨 담고 가스레인지를 점화했다. 다시 자리에 앉아 소설의 나머지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릴 즈음 소설을 덮었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잠시 거실을 서성였다. 가슴속 미세한 진동과 함께 눈물이 흘렀다. 비극, 참사, 고통, 아픔, 슬픔...... 을 썼다 지운다. 한강의 소설을, 제주 4.3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언젠지부터 정확히는 모르겠다. ‘죽음’이라는 낱말이 머릿속에 붙박여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이루고 늘 허방을 짚은 듯 불안감이 떠나지 않은 것이.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언제든 소멸한다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소멸, 그러니까 ‘불행’한 어떤 사건에 휘말린 죽음이 혹시나 내 피붙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닥치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늘 마음 한구석 어딘가 똬리를 틀고 나를 옥죄기 시작한 것이. 어렴풋하게나마 병증이라 여기니 병증이 아닌 걸까.
아마도 딸아이가 손목을 긋고 죽고 싶다는 말을 내뱉기 시작하면서 불안감이 병증처럼 자리 잡기 시작했을 거다. 연락이 되지 않는 딸을 밤새 기다리며 행여나 그 아이에게 닥칠지 모를 온갖 사고들을 떠올리며 거실이며 길거리를 서성인 시간이 쌓여 두려움과 불안이 깊어졌을 거다. 화불단행이라고 했던가. 때마침 남편의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 남편과 나와 딸은 각자에게 주어진 가시밭길을 통과하며 각자의 삶을 소진할 뿐, 서로에게 닿지 못했다.
같이 죽자. 아니 아빠가 먼저 죽을게.
소처럼 묵묵한 남편 입에서 ‘죽음’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고가 늘 죽음으로 향하는 게 습관이 된 딸의 말과 남편의 말은 무게가 달랐다. 자존심이 강했던 사람이 몇 년 새 알코올에 의존하고 거짓말을 했다. 부채가 부채를 낳고, 그 중심에 남편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관계는 하찮고 가벼워졌다고 느꼈다. 서로가 느슨하게 잡은 줄을 놓아버릴 날이 머지않았다 직감했다. 그만 놓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 입에서 불쑥 나온 ‘죽음’이라는 말은 둔기가 되어 내 머리를 후려쳤다. 그즈음 분에 넘치게 며느리를 아끼시던 시아버님이 고인이 되었다. 의식이 흐려지는 아버님을 뵈러 가는 길. 너덧 시간 묵묵히 운전하는 남편이 새삼 낯설고 안쓰러웠다. 인간의 삶이란 게 덧없고 불쌍했다.
언니 시아버님이 형부랑 언니 다시 이어주고 가셨네.
동생의 말이다. 아버님의 작고 후, 우리 가족의 삶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다만, 남편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취업했고 오밤중에 들어와 늦은 저녁을 먹는다. 밥 먹는 남편 앞에 앉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끔 아버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성실한 노동과 강인한 삶의 의지로 평생을 일구신 가족을 자애롭게 바라보던 아버님의 눈빛이. 그 눈빛과 닮은 남편의 눈을 보지 못하면, 나는 살 수 있을까.
며칠 전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을 읽었다. 남편의 자살을 소재로 했다기에 마주칠 내용이 내심 겁났지만, 책에 대한 찬사에 힘을 입어 글자들을 따라갔다. 남편을 잃은 유미코의 독백은 미려했지만 아리고 쓸쓸했다. 사람이 살고 싶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죽고 싶어서 자살할 수도 있다는 것을, ‘혼이 빼앗기는 병’에 걸리면 흔들흔들 죽음에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유미코의 이야기는 한강의 소설 ‘작별’에서 눈사람으로 변한 여자의 말과 겹쳤다. ‘이대로 사라지면 어떡하지?, 이대로 사라지면 안 되나?’
불현듯 닥친 불행 속에서 혹은 불가해하게 혼을 빼앗겨 넋이 나간 중에서,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뭐가 유용하고 뭐가 무용한 것일까. 이 삶에서는.
세탁이 종료되었다는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달걀을 간장에 조리고 오이무침을 만드는 것. 빨래를 꺼내 널고 어질러진 집을 청소하는 것. 참사와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무엇이든 지금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 또 뭐가 있을까. 내게 지금 의미가 있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