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덥다. 나가기도 싫지만, 집 안에 있으니 자꾸 게을러진다. 생존에 필요한 청소나 빨래, 요리 외엔 손이 가지 않는다. 시간만 되면 눕고 싶다. 그래서 오늘 아침엔 간단히 가방을 싸 밖으로 나갔다. 집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가볍게 책을 보며 오가는 사람을 지켜볼 수 있는 널따란 카페가 있다. 덥긴 하지만 고작 30분 정도야 걸을 수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양산을 썼음에도 겨우 10분 남짓 걷고 발길을 돌렸다. 땡볕에서 이대로 걷다간 더위 먹고 쓰러질 것 같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근처의 다른 카페로 바삐 피신했다. 공간이 협소해 음악 소리와 사람들 대화 소리가 귀를 울리는 곳이라 가까이 있어도 가기 꺼려지던 곳이다. 통유리 앞 2인석이 그나마 사람들과 떨어져 있어, 거기에 가방을 올려놓고 키오스크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커피가 준비됐으니 가져가라는 남자 직원의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단조롭고 딱딱했지만 일단 더위를 피해 들어온 카페는 천국 같았다.
“저게 뭐여?”
“......”
“저거 있잖여. 빨간 빨대 꼽고 마시는 거.”
“......”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지.”
“응 그거. 그려 아이스 아메리카노 블랙으로.”
“따뜻한 거 마실겨?”
“아니 아이스.”
“그럼 아이스 아메리카노 블랙으로 두 잔 주셔.”
“적립하시겠습니까?”
“아녀.”
새 손님이 들어왔나 보다. 아저씨 두 명.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대화를 들어보니 나처럼 더위를 피해 급히 들어온 사람들 같다. 평소 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아닌지 키오스크를 이용하지 못했고, 아메리카노에 블랙이라는 말을 붙여 주문하는 것으로 보아 카페 메뉴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들면 없는 오지랖도 생기는지, 그들에게 맞춤한 음료를 다시 찾아주고 싶은 욕구가 불쑥 솟았다. 내내 두 손님의 대화를 그저 지켜보다 예의 그 기계음으로 ‘적립하시겠습니까?’라는 말을 내뱉은 직원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날이 더워 그런지 금세 손님이 늘며 볼륨을 높인 팝송과 사람들의 소리가 웅웅 울려댔다.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가 느려지고 붐비기 시작하는 카페에 혼자 앉아 멍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싫어 짐을 챙겨 나오는데 보니 아까 그 아저씨들이 편히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블랙’을 즐기고 있었다. 가볍게 카페 문을 밀치고 나와 집에 가는 길에 잠깐 편의점에 들러 레토르트 스파게티를 하나 집어 매대에 올려놓았다. 계산을 마치고 물건을 가져가려는데, 편의점 직원분이 ‘잠깐만요’라며 스파게티를 집어 들고 유심히 살핀다. 의아해 쳐다보니 웃으며 ‘유통기한이 아직 많이 남았네요’ 한다. 같이 웃어주고 편의점을 나서는데 문득 얼마 전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지금 내가 가르치는 아이 중에 고등학교 1학년 입학식부터 선생님들과 주변 학생들을 힘들게 했던 녀석이 있다. 무려 고1인데 착석이 어려워 수업 시간에 수시로 돌아다니고 불쾌하다 싶으면 손이 먼저 올라가는 아이였다. 특수교육 대상자였지만 자신은 ‘저런 장애아들’과는 다르다며 특수학급에 내려오는 것을 거부했고, 교실에서는 늘 ‘사고’를 쳤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대화가 안 통하고 늘 시비를 걸고 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당시 내가 담임은 아니었지만 그 아이를 맡았던 특수교사가 병가에 들어가는 바람에, 그 아이가 내 손에 고스란히 맡겨졌다. 매일 세심하게 지도하고 아이 자체도 어느 정도 성장해서인지 고3이 된 지금, 그 학생은 차분해진 상태다. 그런데 얼마 전에 또다시 시비가 붙었다.
그 아이가 다른 남학생 두 명과 몸싸움을 한다고 해서 급히 아이가 있는 교실로 올라갔더니 아이와 시비가 붙은 남학생 둘이 씩씩거리고 있었다. 화를 삭이지 못한 남학생 중 하나는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과 자주 시비가 붙던 S다. 교실에서 자고 있던 학생에게 내가 가르치는 K가 주먹을 쥐고 위협을 하는 것 같아, S가 팔을 잡자 K가 밀었다고 한다. 그렇게 둘이 몸싸움을 시작했고, 근처에 있던 S의 친구가 가세해 몸싸움은 1대 2. 주변을 지나고 있던 특수교육 실무사님들의 만류에도 셋은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마침, 수업 시작종이 울려 교실로 간 체육 선생님이 싸움을 제지하여 K는 내가 있는 교실로 달려간 상태였다.
K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고 있던 아이는 친구라고 했다. 그래서 서로 장난을 친 건데, S가 먼저 자기 팔을 잡아 자기도 밀쳤다고 했다. 확인을 해보니 사실이었다. 학기 초에 S에게 거듭 당부한 적이 있다. K의 일에 개인적으로 대처하지 말라고.
상황을 파악하고 K와 S, 가세한 친구 세 명을 나무랐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S는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K가 정말로 다른 애를 괴롭히면 어떻게 할 거냐고 따졌다. 그리고 K가 자기를 밀었다며 물리적인 폭력을 썼는데, 왜 자기를 나무라냐고 억울해했다. 체육 교사는 S가 평소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도 잘 줍고 선생님들이 질문하고 애들이 대답 안 하면 선생님이 민망할까 봐 대답하라며 다른 아이들을 부추기는 착한 아인데, 내가 나무라듯 말을 해 그 아이가 상처받았다고 훈계하듯 말했다.
이후 상황은 점입가경이었다. 소위 생활지도부 교사가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K를 앞세우고 교무실로 찾아와 내게 상황을 따져 물었다. S가 억울해하니 그를 어여삐 여긴 체육 교사 또한 억울했고, 그 체육 교사가 억울해하니 그의 선배 교사가 언짢아 찾아왔다. 아연한 가운데 나름 객관적으로 상황을 설명하니 생활지도부 교사는 별말 없이 돌아갔다. 다음 날 3학년 부장 교사가 찾아왔다. S가 억울함을 호소한다고 했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여기저기 하소연해도 억울한 게 해소가 안 됐던지, 결국 S가 나를 다시 찾아왔다.
한참 이야기를 하던 중 S는 속내를 말하며 울었다. 본인은 S를 돕고 싶었고 S를 잘 ‘지도’하고 싶었는데, 내가 그 마음도 모르고 나무라서 너무도 속이 상한다는 거다. 학생을 잘 달래서 돌려보냈지만 내심 찜찜했다. 1학년 때와 180도 달라졌어도, S에 대한 학생과 교사들의 편견은 여전한 점. 아무리 장애이해 교육을 해도 장애가 있는 학생은 인간으로서 존중되기보다 그저 도움의 대상 혹은 동정의 대상으로 타자화된다는 점이 상고돼서다. 사람들은 대개 동정의 대상을 존중하지 않으며, 필요치 않은 호의는 상대방을 언짢게 할 수 있음을 간과한다.
폭염 덕에 필요한 자리에 부재한 호의, 경시로 변질된 호의, 적절한 호의, 달갑지 않은 호의를 일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으니, 세상에 나쁘기만 한 건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