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의 원청을 읽은 후.
위화 책을 좋아한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프고 잔인하며 때로는 허무한 소설 속 이야기가 이상하게도 내겐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어 두꺼운 분량도 전혀 부담되지 않으니 실로 대단한 작가다.
'허삼관 매혈기'를 처음 읽었을 땐 생경한 중국문화에 호기심이 일었고 '인생'을 읽었을 땐 작가가 묘사한 인생 이야기에 무릎을 쳤다. '제7일'과 '형제' 속 인물은 나를 엉엉 울게 했고 ‘원청’의 책장에선 스산한 가을바람이 일었다. 책장을 빨리 넘기고 싶으면서도 넘기기 싫게 만드는 허전한 가을 느낌. 이십 대의 어느 날 마주한 것과 같은 느낌이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뭔가 말을 하고 싶어 찾아간 동아리 방이 텅 비어 있을 때 들던 느낌.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고 스산한 바람이 몸을 통과하는 듯한 서늘한 감각이 여름임에도 몸속에 오래 머물던 시절이다.
원청 543쪽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래도 상처란 언젠가 아물고 슬픔도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샤오메이는 딸의 옷과 신발, 모자를 완성한 뒤 옷장 제일 밑에 깔고 그 위에 자신과 아창의 옷을 차곡차곡 올려놓아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옷장 문을 닫자 작별을 고하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를 봉인하는 것 같았다. 한때 린샹푸와 두 번의 시간을 보냈고 한때 딸이 있었지만, 그건 모두 한때의 일로 다 지나가 버렸다.’
지난 금요일, 아이들과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고 1 여학생이 자기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친구가 생겨서 좋다고 활짝 웃더니 중학교 때는 3년 내내 투명 인간 취급을 당했다며,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당시 기억이 떠오른 듯했다. 가만히 아이를 달래다 보니 다른 아이들의 표정이 자못 심각했다.
“혹시 우리 OO이가 덜 힘들게 위로해 줄 친구가 있을까?”
고 2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거기에 갇혀있지 말고 나와. 나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지금 내 옆에 있는 친구 덕분에 빠져나올 수 있었어. 안 좋았던 시간을 계속 생각하지 말고 지금 네 옆에 있는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대부분 왕따나 무시, 경멸의 대상이 되어 본 경험이 있다. 그런 경험으로 소위 자신보다 더 장애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하는 학생을 괴롭히는 아이들도 있고 또래 비장애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한 친구들도 있다. 성숙한 친구들은 나를 포함한 주변의 어른들보다 훨씬 어른스럽기도 하다.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하며 생긴 마음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아 교실에서 울던 여학생을 위로해 준 남학생이 그렇다.
상처는 물론 아프다. 사정없이 찌르면 더 아프고 계속 찔리면 상처가 깊어 아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다행인 건 상처를 주는 사람만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우는 후배를 달래준 남학생. 그 남학생을 수렁에서 건져준 또 다른 남학생. 생각해 보면 내 아픔에만 집착하느라 잘 못 봐서 그렇지 내 주변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지금 당장 떠오르는 이도 몇몇 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 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덧붙였다.
“선배가 참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 줬네. 우리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을 생각하는 데 더 많이 마음을 쓰자. 그런데 얘들아, 선생님이 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선생님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해. 특별히 나쁜 일이 특별히 나한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지더라.”
울음을 그친 여학생 눈이 반짝였다. 골똘히 생각하는 눈빛이었다. 교사로서의 내겐 그런 눈빛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너의 인생이 유난한 건 아니야. 그리고 세상에 지나가지 않는 비는 없어.’
위화의 소설을 보고 나면 시린 상처들 안고 사는 사람들의 생에 마음 한구석에 스산한 바람도 불지만, 또한 동시에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을 조망하며 삶의 '보편성'을 깨닫고 위로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