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퇴근 후 방 안에만 틀여 박혀 있을까?
집중의 밀도에 대한 소고
퇴근 후 회식을 가거나 약속을 잡아 술만 마시던 날들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또 후회하고, 또 후회하면서 일주일 일 년을 보내고 나니 남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나눴던 대화들은 술에 취해 나뿐 아니라 상대방도 기억 속에 담배연기와 함께 다 사라졌고 인맥, 관계라는 허물 속에 스스로 곪고 망가지는 거울 속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끝내 지키려고 했던 그 관계마저 지금은 어디서 뭘 하는지 연락이 안 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사회에서 만난 그저 얄팔한 관계들.
회사를 가는 날이나 안 가는 날이나 최대한 많은 시간을 방 안에서 보내고 있다. 잠자리가 분리된 철저히 책상과 의자 책만 있는 내 공간에서 말이다. 잠자리와 분리되지 않은 곳이면 퇴근 후 자연스럽게 '아, 10분만 누워있어야지' 와 같은 안일한 생각에 휩싸이므로 사전에 그런 환경 자체를 배제해야 한다. 나는 거기서 공부를 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겐 인생 공부다. 진리를 알아가고 조금 더 삶을 효율적으로, 더 나아가는 삶을 살기 위한 세상에 유일한 2가지 방법이라고 믿는다. 못했던 과제나, 주변에 신경 써야 할 것들도 방 안에서 하나 둘 해결해 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어쩌면 남의 일을 해주고 급여를 받는 하루 중 하루 중 유일하게 남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한때 빠져있었던 래퍼 중 영비가 있다. 영비는 래퍼 사이에서도 연락이 잘 안 되기로 유명한데 공연을 하는 날을 제외하고 집에서 폰도 보지 않고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한다.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만들고 오직 방 안에서 모든 시간을 보낸다. 24시간을. 밥 먹는 시간도 아깝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알아보니 배달만 시킨다. 잠도 이틀에 한번 잔다. 이처럼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오로지 내가 하고자 하는 것만 몰두하는 삶이 진짜 남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현타가 올 때가 있다. 정말 재밌게 웃고 떠들고 놀다가도 집에 돌아가면 모든 게 다 똑같이 원상 복귀되고 내 삶은 단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이다. 사실상 친구도, 가족도, 주변 사람들 모두 내가 잘돼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인생을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산다던가, 정형적인 일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내 일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는 삶이고 존중받기에 마땅하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정신이 조금이라도 젊을 때, 체력이 따라줄 때 내 일을 하나라도 더 만들고 집중하지 않으면 나이가 50, 60이 넘어서도 일을 해야 한다. 요즘 2030들에게는 정년보장이라는 회사는 크게 인기가 없다. 고용안정의 달콤함은 모두 옛말이다. 누가 60살이 넘어서까지 일을 하고 싶어 하는가? 30, 40에 내 분야에서 괄목한 성과를 얻으려고 하는 이유는 그 이후의 시간을 사기 위함이다.
군대에서 병장 때 일이다. 전역까지 딱 2개월 남은 시점이었다. 많은 생각이 들고 잡념도 지워야 했고 부대 내에서 해야 할 일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나는 책만 하루종일 읽었다. 종류에 관계없이 그냥 보이는 것부터 싹 다 읽었다. 그 시절만이 온전히 나에게 군생활에서 남는 장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가 없었더라면 인생의 무수한 선택 앞에 멕시코를 갈 생각도 못했을 것이고, 미국을 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맨 처음에 읽었던 책이 한창 신드롬이던 김난도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다. 그 책을 읽었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저 단어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바뀌어야 하는지를 안다. 사고가 확장되고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첫 시작도 책이고, 두 번째도 책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더 이상 이런 맹목적 위로는 2030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김제동 식 위로보다, 본인이 정신을 차리고 뼈 때리는 직설적 발언 서장훈식 위로가 인기가 있다. 전자는 사회 탓으로 '나는 온전히 괜찮다'라는 인식을 주는 반면, 서장훈은 말 그대로 날 것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청자의 기분이나 상황은 고려하지 않는다. 김제동이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라면 서장훈은 '우리가 들어야 하는 말'이다. 그래야 인생이 바뀐다.
군대 병장 시절처럼 다시 혼자 나만의 것을 만드려고 한다. 방 안에서 처절하게 외롭게 나만의 시간의 인내를 행하는 일은 끝내 언제가 됐든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체력이 없어 무언가 하나에 미쳐보고 싶어도 미치지 못할 때가 온다. 지금이 아니고 나중에도 기회가 있으니 나중에 하지 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자 라는 사고는 다소 위험하다고 여긴다. 가야 할 때 가지 않으면 나중에는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지금 방안에만 틀여 박혀 있는 이 삶은 내가 새로운 길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기에 역량이 부족한지, 가능한지 스스로를 시험하는 일이기도 하여 더더욱 오늘 밤도 값질 것이다.
지금 내 위에 놓인 1,500원짜리 펜은 백배 아니 천배 이상의 가치를 내게 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