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직업은 직장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당연 작가도 아니다. 작가는 내 생각을 표출하기 위한 작은 수단일 뿐이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책 한권냈다고 작가라 하기에도 부끄럽다. 근데도 꾸준히 글을 쓰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싶다. '어, 나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서로 공감하고 나만 경험한 것을 세상에 공유하며 지혜를 나누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진짜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은 과연 뭘까? 바로 동기부여가다. 동기부여만이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이끌고 더 나은 개인, 조직, 그리고 국가를 만든다. 동기부여는 삶에서 가장 빠르게 적용해야 할 원초적인 활동이다. 지금 청소년을 상대로 글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동기부여는 무언가 이루기 위해 나를 자극하는 것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도 상쾌한 아침을 맞을 수 있는 원동력이다. 아직 가지지 못한 것, 지금과 다른 내가 바라는 삶을 그리면 오늘 하루를 더 기분 좋게, 힘차게 보낼 수 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는지를 생각해 보자.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을 기대하고 투자하는 국가는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바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지금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든 내 자식 밥 안 굶기며 잘 살아보려는 희망아래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2030들은 어른들을 보며 틀딱, 꼰대라고 단정 지으며 본인의 삶이 가장 트렌디하다고 믿는다. 어른들의 생각은 낡아빠진 관념들이라 단정 짓지만 지금 우리의 색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 환경을 그들이 만든 것이다.
남들과 다른, 조금 더 깨어있는 2030들도 있다.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라클모닝 등 본인을 개발하는 갓생을 산다. 그들은 안다. 지금 노가다를 하든 편의점 알바를 하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게 우리는 '젊음'이라는 것이 있어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우리의 처지를 힐난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더 안타까워한다.
이처럼 나를 좀 더 자극하는 것, 동기부여가 2030 갓생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근간이 되는 마음이다. 동기부여를 가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독서와 글쓰기다. 단, 독서는 읽는 동안에는 동기부여가 생길 수 있지만 실제로 책을 읽고 나서 행동에 옮기지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많은 이들이 자기 개발서를 읽고도 삶이 바뀌지 않는 이유다. 자기 계발서는 정말 어떻게 내가 자기 계발을 해야 할지 모르거나,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게 맞는 건지 타인의 삶과 비교해 볼 때 정도만 가치가 있겠다.
하지만 글은 다르다. 글을 쓰면 더 강한 나만의 동기부여가 생긴다. 글을 쓰면서 '나는 이렇게 되어야 한다'라고 다시 한번 되새기고 자기 암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나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쓰는 대로 생각하게 되니 스스로의 긍정적인 암시효과가 있다.
동기부여가 얼마나 무섭냐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릴 적 어려운 수학문제를 하나 푸는데 부모님이 이 문제를 풀면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사주시겠다고 한다. 다른 아이는 보상 없이 그냥 언제까지 수학문제를 풀어오라고 한다. 어떤 아이가 문제를 더 빨리 풀어낼 수 있을까? 단연 전자다. 이는 유명한 마시멜로우 이야기와 흡사하다. 대한민국 아기들은 마시멜로우를 크게 좋아하진 않지만, 지금 이 마시멜로우를 참으면 하나 더 준다고 했을 때 참는 아이는 내적동기를 가지고 있는 아이다. 장난감을 위해, 하나 더 추가의 마시멜로우를 위해 현재를 희생함으로써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것이다.
이는 살아가며 엄청난 힘이 된다. 과거에 내가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볼 때가 있다. 쿠바의 체게바라가 그려진 작은 수첩인데 거기에는 내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있는 생각들이 정말 세세하게 빽빽이 기록되어 있다. 계획도 굉장히 구체적이다. '어딜 가고, 무엇을 통해 나는 이룰 것이고 어떤 길을 갈 것이다'가 명확히 표시되어 있다. 나는 그 길을 100% 이루어냈고 이 모든 힘은 글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설령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나와 맞지 않고 다른 길을 도전할 것이다라고 했을 때도 상관없다. 또 글을 쓰면서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또 다른 내적동기를 심어주고 다른 길을 찾아가면 그뿐이다. 또 분명 해낼 것이다. 나는 사전에 글을 썼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TV러셀이나 인생스토리 등 성공한 사람들의 영상을 볼 때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꿈을 생각하고 글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늘 눈에 보이는 곳에 둔다. 내 생각을 까먹지 않기 위해 스스로 내 꿈을 되뇌는 것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다준다.
단순히 처음에는 동기부여를 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잊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글을 쓰면 모든 것이 달라짐을 느꼈다. 늘 위기 속에, 급박한 환경 속에서 나는 글을 써 내려갔고 성과를 보였고 그것이 끝날 때는 모든 힘과 긴장이 빠졌다.
글을 쓴다고 뭐가 달라지나?돈도 못 버는데?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나 글을 쓰는 저자가 어떤 걸 이뤄냈는지를 사람들은 가장 많이 본다. 열에 아홉은 '그래서 우리한테 이래라절해라 위로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너는 정작 무엇을 이루었나?'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인지 증명의 도구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걸 성취하였는지는 지극히 상대적이다. 언어영역 5등급이 꿈이었다면 그 5등급을 받았으면 꿈을 이루고 성취한 것이며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내 평생 꿈이었다면 대기업에 들어가기만 하면 꿈을 이룬 것이다. 하찮은 단 하나 무엇이라도 이루어 본 사람들은 그 성취감이 얼마나 짜릿한 감동인지 안다.
동기부여를 할 수 없으면 버틸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멕시코와 미국에 있을 때. 그리고 취업준비를 할 때의 1년 이 세 가지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주하고 도태됨을 절실히 느낀 나날들이었다. 외국에서의 삶은 이방인으로써 열심히 살지 않으면 도태되거나 돈이 없으면 그대로 의식주에 악영향을 미친다. 동기부여만이 나를 붙들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덕분에 이 세번의 시기들은 나를 가장 많이 성장시켜 준 날들이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글쓰기가 있었다. 저술을 함으로써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그래서 아직도 새벽이지만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이유다.
나보다 힘든 환경에 놓인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그것이 말이 됐든 글이 됐든 더 삶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더 잘 되어야 한다. 나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내 말에 힘이 생기고 그들이 내 말을 믿을 것이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가기 편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6시에 일어난다. 될 때까지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