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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Aug 15. 2023

불행한 대한민국 삶에 대하여

경쟁에서 이기는 자와 도태되는 자에 대한 소고

대한민국의 국민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경쟁에서 이긴 자와 도태된 자. 그들이 모여 지금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전쟁을 겪고 폐허가 된 나라를 살리고자 우리는 1960년대부터 몸을 갈아 국가를 일으켜 세웠다. 내 자식은 굶지 않게 하기 위해 밤낮이고 일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근면성실한 국민성에 나라는 거듭 발전했고 어느덧 선진국 반열에 당당히 올랐다.

  삶이 획일화되고 답이 정해진 삶이 시작된 순간은 그때부터였다. 한 건장한 가장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 가족을 남부럽지 않게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사회가 정한 의무를 다해야만 했다. 10대에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누구보다 공부를 열심히 아니, 잘해야 하고 20대에는 좋은 대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sky가 아닐지라도 인서울은 해야 어디서 욕먹지 않는다. 남자는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야 하고 부모님은 모아둔 돈을 털어 6개월~1년 어학연수를 보내고(선택사항, 가정형편에 따라 다름), 갔다 와서는 좋은 학점으로 졸업을 하고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 1년 동안 또 취업준비만을 위한 공부를 시작해 남부럽지 않은 대기업, 공기업 혹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준비기간이 2년, 3년이 넘어가면 주변에서 아니꼬운 소리를 들어야 하며 스스로 자신감을 잃어간다.


 자, 취업을 다행히 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결혼을 해야 한다. 남자는 늦어도 35세, 여자는 33세 안에는 결혼을 해야 주변에서 싫은 소리를 듣지 않는다. 결혼하면 출산을 해야 하고, 그 이후는 자녀교육, 노후대비 무한반복이다. 나이에 맞게 해야 하는 것을 단 하나라도 못하는 순간이 오면 그 사람은 도태된 사람이라고 사회는 낙인찍는다. 다행히 이 힘든 퀘스트를 정상적으로 밟아온 이는 경쟁에서 이긴 자다. 앞서 말한 은둔형 외톨이나, 사이코패스 등 정신적인 결핍이 있는 사람들은 주로 이런 경쟁에서 도태되어 자멸감이나 상실감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이 타인들보다 약한 것이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으로 이런 사람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불만족은 앞으로 더 늘어나 결핍으로 이어지고, 사회에서 점점 도태될 것이다. 머지않아 이는 중대한 사회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대개 우리의 삶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염세적인 시각이라 치부하기엔 실제로 현실이 그렇다.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경쟁의 개체수는 끝없이 늘어나고, 그 경쟁에서 이기는 자는 극소수다. 좋은 일은 어쩌다 한번 일어나고 목표했던 삶은 미치도록 열정을 퍼부어야 하는 노력+ 운이 뒷받침될 때에만 가능할까 말까다.

 인생의 불만족은 개개인을 자극시켜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순기능조차 부정적인 결과가 지속될 때는 끝내 지쳐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력해도 이룰 수가 없으니.


 현실에 안주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는 부정적인 게 아니다. 지금 내 삶에 만족하며 그 이상을 하지 않고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지방출신인데 서울에서만 살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오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물론 내 고향이라는 심적인 안정도 있겠지만 서울에 비해 지인들 대체로 자기 삶에 만족하며 안분지족의 삶을 살아가는 비중이 높다. 어느 나라 수도가 그렇듯, 대한민국 서울은 유독 우리에게 늘 끝없는 갈망을 요구한다.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고, 뒤쳐지고 실패한 인생처럼 느끼게 한다. 늘 무언가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압박을 준다. 퇴근 후에도 자기계발, 투잡, 더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 모두가 발버둥 친다. 더 높은 연봉, 대학원, 유학, 내 집마련••• 정해져 있는 사회적 위치와 더 나은 대우를 향해 끝없이 나아가야 하는 삶에 어떻게 내 삶의 행복이 충만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를 얻기엔 또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현실에서 불가피하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이 와중에 SNS에는 경쟁에서 이긴 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 정신질환자들이 많아지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현실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란 앱에도 최근 크리에이터 배지와 관련하여 그걸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들이 나뉘었다. 물론 글쓰기 플랫폼의 발전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이나, 이번 일로 어떤 이는 글쓰기의 의욕을 잃고 도태되는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한낱 브런치뿐만 아니라 우리가 현실에 마주한 거의 모든 일이 요즘 이렇다. 흑백논리적이고 양면적이며 서로 경쟁하고 싸우고 거기서 이겨야 한다. 이기는 자에게만 달콤한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자체가 어쩌면 어불성설이다.


 자본주의가 낳은 불공정함은 유독 우리나라에서 더 크게 와닿는다. 사회적 성공, 업에 대한 성취, 더 많은 부, 명예보다 진짜 중요한 것에 고심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가 정한 기준에 부합한 인생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그 자체로 소중하며 지금을 살아내는 것 자체에 만족감을 느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맛있는 식사,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차 한잔,  웃음기 넘치는 친구와의 농담처럼 일상 속에서 나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것에 대해 초집중해보자. 오히려 극단적으로 사회가 정해놓은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것으로 여겨보자.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내가 어떤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를 알게 되고 내 삶의 방향성이 어느 정도 나올 것이다. 한숨 돌리고, 그 방향성에 대해 나와 맞다고 생각하면 도전하면 된다. 사회가 정한 길을 가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는 도태된 사람이 아니다. 이제 인생의 전반전을 시작한 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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