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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Oct 28. 2023

여행의 궁극적 이유

가까이서 변하지 않는 것의 소중함에 대하여

주말 아침 웬일로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 햇살과 새벽에만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 경비원 아저씨의 청소하는 모습, 평소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 직장인에게는 주말은 밀린 잠을 자기 바쁘다. 최근 몸이 아파 어젯밤에도 일찍 잠들었기 때문에 우연히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나 이런 소중한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일상에서도 아주 조금의 삶의 변화만 주어도 새로운 것들이 이렇게 보인다.  


사람은 늘 새로운 것, 재밌는 순간을 느끼고자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고는 여행을 떠난다. 그럼 여행을 가면 마냥 행복할까? 운이 좋아 전 세계 약 30개국을 다녔다. 지금 냉장고에 있는 이 자석들만 봐도 얼추 많이 다녔다 실감이 난다. 20살 때 떠났던 첫 여행지 영국에서는 길거리의 풀조차도 마냥 신기했었지.

냉장고 자석들

 어떤 곳을 여행해도 변하지 않는 것 하나는 여행의 풍경이나 가서 만나는 사람보다  거기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거다. 그 생각들이 해당 여행지를 더 매력 있게 만들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한다.

 2016년 새로운 꿈을 꾸고자 떠났던 쿠바에서 작가를 만났고 실제 그 꿈을 조금씩 이루어가고 있다. 2018년 새해 가지고 있던 앙금, 분노, 후회, 미련, 모든 걸 내려놓고자 갔던 아이슬란드에 가서 난 다시 태어났다. 나에게 아이슬란드와 쿠바 이 두 여행지가 이 수많은 방문지들 중에 가장 생각나는 이유다.

 이처럼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여행지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이 여행을 가는 궁극적 목적은 단순히 쾌락을 넘어 더 나은 생각과 더 나은 발상을 하기 위해서라 생각한다. 즉, 내 일상에 더 괜찮은 무언가를 첨가하기 위해서다. 마치 완성되지 않은 요리에 더 맛있는 조미료를 넣는 것처럼.

 하지만 장기여행을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여행을 2주만 아니, 1주일만 해도 사실 지겹다. 그렇다면 왜 모든 사람들은 '여행'을 좋은 기억으로만 간직할 수 있는 걸까? 긴 여행의 일정 중 내게 정말 행복했고, 인상 깊었던 짧은 순간의 행복이 지루했던 날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뇌리에 박혔기 때문이다.  

 

 도파미네이션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몸에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나오는데 뇌에서 더 큰 자극을 얻기 위해 늘 우리에게 이 물질을 보낸다. 즉, 더 새롭고 자극적이지 않으면 사람은 금세 지겨워하고 흥미를 잃어버린다. 여행도 인생과 같아서 매일 늘 신나는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 신혼여행으로 갔던 하와이도 마찬가지였다. 첫날, 이튿날 와이키키해변에서 튜브를 불고, 해변에서 수영도 하고, 사진도 찍고, 선베드에서 휴식도 하고, 얼마나 행복한가? 하지만 아내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이 있었는데, 이게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면 정말 지루할 것 같다는 거였다. 하와이는 단지 '휴양지'로써의 매력은 충분한 곳이지만, 평생 사람이 터를 잡고 살기에는 한없이 작은 시골마을에 불과했다. 불편한 점이 참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것을 보고, 일상보다 더 나은 풍경을 본다 해서 우리 뇌에 받아들여지는 도파민은 일시적일 뿐이다. 여행이 아름다운 이유는 장소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떠난다는 행위 자체와 누군가와 함께 한 순간들에 있어 어떤 소중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근데 그걸 여행으로만 꼭 채울 수 있는 걸까? 왜 일상에서 꼭 벗어나야 할까? 일상에서도 이를 찾아보자. 딱 내게 오늘 아침이 그렇다. 여행을 가지 않아도 마침 여행한 기분이 든다. 평일에는 새벽 여섯 시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러 집을 나가니 이런 광경을 전혀 볼 수 없다. 주말에는 맨날 열시다 되어 일어나니 더더욱. 지금 딱 오전 7시의 아파트 풍경은 내게 여행을 가져다주었다.

 가까이 있음에도 내가 여태껏 보지 못했던 것,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 보인다.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준다. 아침 새가 지저귀는 이 소리,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에도 이렇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란다. 일상에 조금의 변화만 주어도 사람이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단 말인가.

 

 변하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한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늘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여행이라는 거창한 단어아래 늘 멀리서만 그걸 찾고자 노력했는지 모른다. 그동안 등한시했던 내게 가치 있었던 것을 주변에서 찾아보는 하루를 보내보면 어떨까. 기분이 사뭇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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