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도전하며 살게 된 이유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
“굳이 그걸 왜 해? 돈도 안 되는 걸”
올해를 되돌아보며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꼬박 들은 것 같다. 안정적으로 월급도 나오겠다, 결혼도 했겠다 그냥 퇴근하면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와이프랑 푹 쉬라고. 맞다. 그만한 행복한 삶이 어딨을까. 스스로오늘도 고생했다며 위로하고,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소주, 맥주, 맛있는 음식에 합리화하고 행복하다고 스스로 믿으며 잠들고.
무엇이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삶을 살게 된 계기는 멕시코에서 시작된다.
오늘 하루도 나는 이 경험에서 나오는 감정적 파고 속에 스스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추동한다.
26살, 멕시코 푸에블라.
멕시코에서 한국 귀국 7일 전이었다.
친구들과 클럽에서 술을 마신다. 귀국이 얼마 남지 않아 송별회가 한창이다. 1시간가량 지났을까?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4명의 친구와 같이 차를 타고 왔는데 날 제외하고 4명이 전부 보이지 않았다. 하필 그날은 내가 핸드폰을 들고 오지도 않았던 날이었다. 술도 거하게 마셨겠다, 친구들이 내가 벌써 집에 간 줄 착각하고 먼저 집에 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도 혼자서 더 놀다가 택시를 타려고 서성였다. 그러자 클럽 앞 택시기사가 갑자기 나를 멈춰 세우더니 50페소(4,000원)에 나를 집까지 데려다준다는 것이다. 클럽에서 우리 집까지 그 당시 시간과 거리로 계산해 보았을 때 최소 150페소(12,000원) 정도의 비용이 나온다. 그때 당연히 의심하고, 다른 택시를 불러 타야 했다. 그 당시는 멕시코에 우버가 상용화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콜택시라도 불러 안전하게 집으로 가야 했지만 술을 마셔 판단능력이 흐려지면서 새벽 2시에 혼자 택시를 탔다.
원래 멕시코에서는 밤 7시가 넘으면 혼자 택시를 타면 안 된다. 그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항상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믿었던 택시기사는 내가 말했던 목적지 방향으로 잘 달리고 있었다. 신호가 멈췄을 때 자꾸 누군가와 메신저를 주고받는 것이 다소 의심스러웠지만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잠깐 잠이 들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불길한 예감이 들어 잠에서 깼다. 내가 처음 보는 곳으로 택시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나는 택시기사한테 물었다.
“왜 이쪽으로 가? 우리 집은 저쪽이야, 저쪽으로 차 돌려줘”
“지금 저쪽으로 가면 차가 너무 막혀서 이쪽으로 가는 거야”
라고 대답한다. 그때는 새벽 2시가 지난 시점이었고, 차가 막힐 수가 없다. 그때부터 뭔가 수상했다. 차는 점점 어두운 곳으로 가더니 갑자기 택시기사가 차를 세우는 것이 아닌가. 뭔가 잘못됐다고 그때 느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았는데 뒤에서 갑자기 세 명이 탄다. 뒤에 탄 사람 중 한 명이 식칼을 내 목에 들고 조용히 내 귓가에 스페인어로 말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살려주겠다”
목에 칼의 뾰족한 감촉이 들어온 적이 있는가? 취기가 갑자기 사라지고 오줌을 쌀 것만 같은 공포가 한순간에 나를 덮쳤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꺼내”
나는 너무 무서웠고 긴장했으나, 최대한 차분해지려고 노력했다.
“움직이지 말라면서 어떻게 꺼내냐”
라고 하니 택시강도들이 나를 때리며 억지로 주머니를 뒤졌다.
“핸드폰 없어?”
“응 없어, 오늘 깜빡하고 안 들고 왔어”
라고 답하니 거짓말하지 말라며 또 맞았다. 볼이 얼얼했다. 다행히 칼로 찌르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시계, 반지, 안경, 지갑, 구두까지 내 모든 것을 가져갔다. 담배 2개비밖에 남지 않은 담뱃갑마저 가져갔으니 짐작이 갈 것이다. 물건을 다 챙기고 택시기사를 포함한 네 명은 나를 트렁크에 태우려 했다. 아무래도 납치를 해서 나에게 거금을 뜯어낼 수작이었다.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트렁크로 가려면 일단 차에서 내려야 했다. 그 짧은 순간에 침착하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나에겐 한 5초 정도의 시간이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차에서 만약 내려서 트렁크로 갈 때가 내가 생각했을 때 도망칠 수 있는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여기는 한국도 아닌 멕시코다. 세계뉴스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목을 잘라 신호등에 걸어두는 카르텔이 있는 국가다. 얘네들이 못 할 짓은 없다. 이 사람들이 외국인 한 명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트렁크로 가면 난 죽는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강도들의 팔을 뿌리치고 무작정 빛을 향해 반대쪽으로 달렸다. 이미 구두도 뺏긴 판국에 맨발로 뛰는 것이 오히려 더 빨랐다. 15초 정도 전력 질주를 했다. 처음 한 5초는 뒤에서 나를 따라오는가 싶더니, 이내 강도들은 포기하고 차를 타고 도주했다.
빛을 향해 뛰다 보니 한 편의점이 보였다. 멕시코에서는 편의점 앞에 야간 시간이 되면 Guardia라고 하여, 경찰관(우리나라로 치면 경비관 정도 되겠다)이 항상 서 있다. 혹시 모를 도난사건을 대비한 것이다. 나는 그 경비관에게 도움을 청해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일을 겪고 난 뒤로 내 삶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다.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오히려 죽을 뻔한 이 일을 겪은 것이 다행이라고 여긴다.
사람들이 흔히 칭하는 성공한 사람을 보면 순탄한 인생을 살며 그 자리까지 간 사람은 단언컨대 5%도 안 될 것이다.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정말 운이 좋거나 둘 중 하나다. 대부분이 수도 없이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고 나서야 그 경험치가 쌓여 그 자리까지 본인만의 노하우를 취득해 올라간다.
주말이 되면 광화문-시청까지 수많은 인파가 모여 시위를 하며 사람들로 북적인다. 본인의 소중한 시간을 쓰면서까지 시위에 열정적인 이유는 시위함으로써 대한민국 혹은, 지금 사는 세상을 나의 의지대로 바꿔보려는 능동적인 행위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정작 정치와 종교에는 진심인 우리는 왜 나 자신에게는 그토록 관대한 걸까? 진짜 죽을 만큼 각오로 내 일에 도전해 보았냐는 것이다. 나는 내 일에 100% 모든 열정을 다해 시도했는가? 절대 아니다.
나는 멕시코에서 목에 칼이 들어올 정도의 섬뜩한 순간을 겪고 나서 당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잘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때 이후로 나는 다시 태어났다. 아니, 이미 죽었는데 새로운 생명을 얻은 느낌이었다. 매 순간순간을 내가 지금 하는 업에 있어 순간을 도전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잠들기 전 낭떠러지 앞의 절박함을 상상한다. 지금 몸은 편해도, 이 마음만은 가슴속에 새기면 우리가 못할 건 아무것도 없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는 과정보다 결과가 훨씬 중요하다. 대체로 사람은 기대하고 바랬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결과에 수긍하면서도 노력했던 과정을 어필한다. 그 과정 자체도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고 생각하며 자기 위로를 한다. 과정도 물론 중요하다. 목표를 이뤄가는 그 순간순간의 실패에 따른 시행착오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과정에는 사람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받을 수 있을지언정 정작 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터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왜 가는가? 내가 맡은 업무의 과정 순간순간의 커리어패스를 쌓고 배우기 위해 매일 험난한 출근길을 견디는 걸까? 아니다. 일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돈을 벌기 위해,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일터에 가는 것이다. 남들이 쉬쉬하지만 명백한 우리 모두의 목적은 돈 즉, 보상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빌딩을 올린 건물주가 그 자산을 일구지 않았다면, 지금은 매우 가난한 처지에 놓여있다면 죽을 고비를 몇 번을 넘겼든 말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우리는 과정을 얘기하기 전에 항상 결과를 당당하게 얘기를 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본인의 얘기를 할 때 그것이 돈이나 실질적인 내 이익을 취하는 목표라는 것이 상대방이 아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해 말을 빙빙 돌린다. 이로써 과정으로 이야기의 초점이 맞추어지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결과가 있어야 보상이 있다.
신발에 돌멩이 작은 것 하나만 있어도 걷는 데 발이 아프다. 결국은 결론이고 결과다. 돌멩이가 결국은 하나도 빠짐없이 제거되어야 우리가 걷는 데 아프지 않다. 최종적으로 더 나은 결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과정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꿈꾸는 결과, 그 목표를 위해 나는 매 순간을 도전하며 살게 되었고, 예기치 않았던 이 택시강도경험이 새로운 나를 만들었다.
우리는 꿈꿔야 한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