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의 획일화가 된 사회, 과연 건강할까?
좋아하는 걸 찾는 건 축복과 같은 일이다. 내가 수능을 치르지도 않았는데도 관련 유튜브나 댓글들을 보며 좌절하는 고3(예비 대학생) 들을 보면 괜히 감정이입이 된다. 점수로 평가받는 인생이 아닌 돈 벌 기회는 사방에 널려있는데 그때는 아무도 그걸 알려주지 않아 지금 와서 통탄스러울 뿐이다.
나보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은 어른들은 나를 포함한 늘 후배, 동생들에게 ‘좋아하는 걸 해라’라고 말한다. 오늘 친한 자녀가 있으신 과장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
“과연 자녀가 크면서, 정말 좋아하는 게 있다고(미술이나 음악이나, 그림이나 등등) 공부는 안 할 거고, 그것만 평생 하고 싶다”
라고 한다면 밀어줄 수 있겠는가? 성공할지 안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조건하에.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좋아하는 거, 하고 싶은 게 있는 거 자체가 대단한 거야”
라고 답하셨다. 아직 자녀는 없지만, 내 자녀가 그런 말을 한다고 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나도 당연히 'Yes'를 외쳤을 것이다. 돈이 얼마가 들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배우게 해서 잘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결혼 전까지 대치동에 살면서, 대치동 부모님들을 본의 아니게 많이 봤다. 대치동을 가 본 사람은 안다. 밤 열시만 되면 대치동은 마비가 된다. 번쩍이는 외제차들이 학원 앞에 줄을 서 있다. 모두 학부모님들이며, 학원이 끝나는 자녀를 데리러 오신 거다. 대치동 부모님들이 간과하는 것은 그렇게 일 년에 사교육비를 몇천만 원씩 들여, 대체로 부모가 바라는(자녀도 동시에 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무언가를 만약 자녀가 되지 못했을 때 시간과 돈 모든 것을 잃는다는 거다. 설령 좋은 대학교에 가 모두에게 선망받는 직업을 가졌다 해도,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퇴근길 늘 많은 생각에 잠겼던 풍경이다.
부모님들은 늘 말한다. 본인 아이들을 좋아하는 걸 찾게 해주고 싶다고. 그래서 태권도도 시켜보고, 미술학원도 보내보고, 발레도 시켜보고, 여러 예체능 학원을 뺑뺑이 돌린다. 조금이라도 아이가 관심 있어하는 걸 찾아주기 위해서다. 또 학원을 보내지 않으면 불안해하신다. 남들은 하교 후 학원에 가 친구들을 사귀는데 우리 애는 학원도 안보내면 친구 사귈 기회도 없어진다고 한다. 어릴 때 친구가 평생 간다며•••합리화할 무언가 자꾸 찾는다.
이 방법으로 진짜 좋아하는 걸 찾아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물론 많을 것이다.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해서 사회의 높은 위치에서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도 물론 많을 거다. 근데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반에 40명이 있다고 하자. 1등을 놔두고 그럼 나머지 39명은? 전교생이 500명이라치면 전교 50등까지를 제외한 나머지 450명은?
또 다른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공부로는 위 49명을 (노력이 됐든, 선천적 지능이 됐든) 지금 와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이 험한 세상 속 자기 살 길을 새로 찾아야 한다.
주변에 30대 나이에 꿈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 적지 않게 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겠지만 이들은 대체로 모두 20대 때 획일화된 정규교육 내 부모님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공부한다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했을 확률이 크다. 즉, 20대 때 본인을 탐구할 시간 자체가 없었던 거다.
미국에는 갭이어 라는 제도가 있다. 갭이어란,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1년 정도 자기 탐색시간을 가지는 거다. 취업 전 여행, 봉사, 교육, 창업 등을 통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뭐고, 어떤 방향으로 삶을 나아갈지 깊이 있게 생각하는 시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암묵적으로) 가는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좀 변질된 것이 이 교환학생과 어학연수 마저 남들 따라간다는 거다. 본인목표와 색깔이 없다. 영어를 더 쉽게 배울 수 있는 곳, 더 저렴하고 가성비가 좋은 곳, 아니면 여행하기 좋은 곳 등 각자 더 중요시 여기는 가치관에 이끌려 먼저 갔던 사람들 따라 그냥 간다. 목표의식 없이 ‘나도 이때쯤이면 어학연수를 가야지, 남들 해보니까 해봐야지’ 식이다.
탐색의 과정은 가치 있다. 한국인은 탐색을 줄이고 성과에 집착하는데, 절대 치밀한 자기 탐색 없이는 좋은 결과를 가질 수 없다.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걸, 내가 관심 있는 걸 타인이 아닌 나 스스로 주체적으로 찾을 수 있을까. 온전히 경험으로 내 해답을 공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객관적으로 자신을 한번 보자. 아무 조건 없이 오로지 나 혼자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건가? 무의식적으로 토요일 아침 주말을 맞이했을 때, 나는 무엇을 하나? 하루종일 약속도 없고, 과제도 없고 급한 일이 없다는 전제하에 무슨 생각이 드나? 그날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자. 맹목적으로 남들이 하는 주식, 돈, 연인과의 데이트, 식사, 수면 등 일상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온전히 내가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를 하루종일 봤다면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책을 읽었다면 그 사람은 책과 글쓰기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나도 모르게 이끌려 한쪽으로 쏠리는 분야가 무조건 한 개는 있다.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도 그 조그만 부분들이 모여 만든 것이다. 취미라고 단정 짓고 한계를 설정하지 말자. 그게 진짜 내가 관심 있어하던 거다.
어릴 때부터 발표시간이 좋았다.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고, 내가 만든 무언가를 보여주는 게 재밌었다. 발표가 끝나면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무언가를 창작하고 있는 것이다. 주말이 되면 나도 모르게 그냥 할 것이 없어 서점에 갔다. 서점에 가서 그냥 (안 읽을 거면서도) 책을 한 권씩 사 오곤 했다. 책 근처에 있으면 편안함을 많이 느꼈다.
각자 정해진 과업을 한다고 그 당시는 무심코 지나쳤던 것이 지금에서야 이렇게 생각이 나고, 그쪽으로 자꾸 내 시간을 쏟는 것은 그게 내 흥미고 관심분야였던 거다.
다음은 본인의 것을 버리면서까지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다. 가령 여섯 시에 마치는 일반 직장인이 있다고 하자. 12시에 잠을 잔다면 6시간이 있다.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이 소중한 시간 중 절반, 3시간을 버리면서까지 무언가 하고 싶은 욕구가 든다면? 그게 내가 좋아하는 거다. 여행 가기, 맛집 가기, 게임하기 이런 거 말고 정말 남들은 안 하는 데 내가 하고 있는 것. 여행이나 맛집은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좋아하는 거다. 누구든 여행 가고 싶지,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겠나.
주말 중에 시간을 내어 작가의 사인회도 몇 번 전국을 누비며 간 적이 있다. 그땐 진짜 몰랐다. 이게 좋아하는 거였는지. 근데 내 시간과 노력을 들어 작가의 사인회를 간다? 나는 글 쓰고 창조하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니, 나보다 더 잘하는 그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동경하고 있었던 거다.
내 친한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Mp3를 달고 살았다.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늘 최신형으로 바꿨다. 노래도 맨날 불법이 아닌 본인 용돈으로 계속 구입하며 정규 앨범을 들었다. 수업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야자시간이든 맨날 이어폰만 끼고 노래를 들었다. 심지어 군대 입대하는 곳까지 들고 가 입장 전에 부모님께 줬다고 한다. 이어폰을 안 끼고 있던 적은 영어 듣기 평가할 때 말고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 친구는 지금 음악 PD를 한다. 내 돈을 버리면서까지, 친구와의 대화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그 한 가지에만 몰입했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그거밖에 모르고 생각이 안나는 거다.
꿈은 좋아하는 걸 계속할 때에 현실이 된다. 쉬는 날 무엇이 날 움직이게 하는가? 난 어디에 기꺼이 내 걸 소비하고 잃어가는가? 그럼 붙잡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