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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Nov 16. 2023

보험 실비청구 실패하며 든 단상

불확실성에 대하여

보험이 네 개나 있다. 하나는 아주 어릴 적 내가 모를 때 엄마가 들어준 생명보험. 종신보험과는 다른 개념으로, 70세가 되면 전액 100% 환급받을 수 있는 보험이다. 월 65,000원씩 나간다는 게 최대 단점이지만 10년을 이미 납입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들고 있다. 근데 이 보험에서 의외로 쏠쏠했던 점이 재작년 가벼운 접촉사고를 당했을 때 거액의 보험료를 받은 거다. 또, 기관지가 굉장히 약한데 늘 질병코드 J(비염)으로 병원을 갈 때마다 1만 원씩 환급을 해준다는 점이 기대이상이었다.

 종신보험은 그 무슨 일이 있어도 들지 않는다. 내가 죽고 나서 받는 돈이 사실상 부양가족이 있다한들 부질없다고 여긴다.

그땐 어렸으니 내가 몰랐고, 부모님이 당시 가장 간과했던 점을 지금 와서 돌아보면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이렇게 운 좋게 환급받은 내용을 차치하서도,  70세가 되어 그 돈을 모두 환급받는다고 했을 때 70세의 1억과 지금의 1억이 가치가 같을까? 이자도 없이 100% 원금보장되는 환급형 상품은 인플레이션을 모르는 고객을 교묘하게 이용한 보험사의 계략이다. 복리를 앞서 강조한 이유도 돈은 시간이 흐르면서 알아서 불어나야 한다. 하나 더, 70세에 1억을 받았다 가정하자. 돈을 쓰는 용도도 다를 것이다. 지금의 1억이 70세의 1억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곳에 쓰일 수 있다. 어쨌든 이미 가입해 버린 보험이니 울며 겨자 먹기로 약관을 읽고 해당되는 사항을 꼭 잊지 않고 숙지해야겠다.

다음은 운전자보험이다. 이건 만원밖에 하지 않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가입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접촉사고가 나 꽤나 쏠쏠했다. 살면서 운전할 일이 많으니 필히 가입하는 게 좋겠다.

다음은 어린이 종합보험. '어린이만 들 수 있는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보험나이로는 만 30세까지 어린이보험을 들 수 있다. 뇌, 혈관, 심장, 암 중심으로 주요 질병 72개를 다방면으로 일반보험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가입할 수 있다. 다음은 실비다. 위 세 가지 보험이 다 없다 해도 실비는 필히 드는 것을 추천한다. 실비가 없으면 가벼운 질병에도 병원 가기가 무서워진다.

아, 암보험도 있네. 이 많은 보험을 내가 가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왜 한 달에 20만 원 남짓한 돈을 내면서까지 이 계약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 보험회사는 왜 매해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배를 불리는 걸까?


바로 불확실성 때문이다. 앞서 말한 스페인어로 보험의 <Seguro>가 안전하다는 뜻도 함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누구도 예측불가능한 삶을 선호하지 않는다. 결정된 무언가, 미래에 확실한 무언가가 심신을 안정시킨다. 20대에는 젊으니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어쩌면 불같이 타올랐다가 불같이 꺼지는 다이내믹한 삶이 신선했고 인생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예측가능하며 안전한 삶에 마음이 간다. 새로운 거보다 지금 내가 가진 상황에서 더 성장하려 하고, 관계도 내가 아는 선에서만 관리한다. 새로운 이를 사귀려는 노력을 크게 하지 않는다. 연인이나 배우자도 오늘, 내일 어디서 무엇을 하고 주말엔 뭘 하는지 예측가능한 삶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20대 초 연애의 잠수이별을 생각해 보자. 얼마나 끔찍한가. 하하

보험사는 사람들의 이런 불확실성 회피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돈을 기하급수적으로 벌어들인다. 사실 앞서 말한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은 불확실성회피와 다른 개념인 '모험회피'에 가깝다. 불확실성은 말 그대로 불확실한 것에 대한 불안이다. 애매한 상황을 기피하고 본인이 속한 기관과 관계에서의 정해진 구조를 추구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사실 모든 게 불완전하고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인생은 불확실하다.

불확실성, 이것이 인생의 본질이다.

지성 있는 자는 항상 불확실성을 맞아들인다'


라는 오쇼의 명언처럼, 사람은 누구나 불확실성을 인지하고 있다. 내일은 어떤 일이 펼쳐질지 그 아무도 모르지 않나. 오늘이 수능인데 내가 수능을 잘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있는 수험생은 없다. 내가 아는 문제가 많이 나오면 잘 보는 것이고, 공부하지 못한 문제가 많으면 못 보는 것이다. 그날 컨디션이나 긴장 여부에 따라서도 수능 성적이 달라진다. 아무도 모른다.  

전 세계 재산 1위에 랭크된 적 있는 테슬라 회장 일론머스크도 항상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화성에 갈 수 있는지. 그 사람의 불확실성 또한 어떻게 하면 인간을 화성에 가도록 태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테라포밍을 할 수 있을 거다. 부와 명성의 여부를 떠나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정도의 차이일 뿐 모두가 각자의 불확실성을 모두 안고 살아간다.

 이런 불확실성의 리스크를 햇지 할 수 있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합리적인 선택이 바로 보험이다. 보험사는 이를 알고 있고, 이 구조를 철저히 이용한다.


인간관계에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가장 쉽다고 이전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돈보다 더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돈을 지불해 리스크 햇지를 위해서 보험을 드는데 약관항목에 해당하면 보험사는 다시 우리에게 거액의 돈을 준다. 암에 걸렸던 친한 형은 5천만 원을 보험금으로 지급받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진짜 행복했을까. 돈보다 진짜 중요한 가치를 우린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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