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그리 Dec 25. 2023

크리스마스가 외로운 이들에게

우리는 원래 외롭다

특별한 날은 사람을 더 외롭게 한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크리스마스 등 우리는 누군가 지어낸 숱한 기념일 속에 누군가는 외로움을 느끼고 스스로의 처지를 가엾게 여긴다. 특히 밖에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대는 연말엔 이 감정은 더 증폭된다.

20대 때 열 번의 크리스마스를 겪으며 '24일 밤에 수면제를 먹고 26일 아침에 깨어났으면 좋겠다' 라든가, '25일 하루만 나랑 연애하고 26일에 헤어질 사람' 등 농담 섞인 주변의 말을 종종 접했다.

외국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낸다. 맛있는요리를 먹거나,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야말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소소한 하루를 보낸다. 꼭 어디 특별한 곳에 놀러 가야 한다거나, 연인과 함께 근사한 레스토랑을 가야 한다거나 이런 게 없다. 사실 남들이 어떻게 보내는지 크게 신경 쓰지도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빛나는 찰나의 일상을 보며 내 외로움을 증폭시키지 말아야 한다. 외로움은 누구나 있다. 크리스마스가 아니어도 인간은 원래 외롭다. 연애를 하고 있어도, 결혼을 해도 외로운 순간이 있다. 그들도 순간의 하이라이트로 외로움을 가리고 있을 뿐.

최근 인스타그램 이용자 수가 급감했다고 한다. 이는 남들과 비교하는 데서 오는 현타, 나는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열등감, 비교, 인간관계의 가식에서 오는 피곤함 이 모든 것이 원인이 됐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나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5만 원 하던 모텔 숙박도 25만 원으로 껑충 뛴다. 그야말로 자영업자들, 호텔업계, 이벤트업계, 모든 곳이 대목이다.

왜 크리스마스에 꼭 뭘 해야 하나? 꼭 누군가와 선물을주고받고 특별한 곳에서 사진을 찍고 기념해야 하나?

남들에게 '내가 이렇게 기념일을 잘 보내고 있다'의 기준이 아니라, 온전히 내가 특별한 날을 기념해 하고 싶은 것을 꾸며가는 것. 그게 혼자든 함께든 내가 행복한 것. 그게 진정한 특별한 날이다. 연인이 없다 한들, 왜 꼭 누구랑 같이 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생각이 드는 자체가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국민성에 기인한다. 혼자 있으면 안 된다고 그 아무도 시킨 적 없다. 요즘 유행하는 '누칼협'. 누가 칼 들고 혼자 있으면 안 된다고 협박한 것도 아니지 않나. 기념일을 의미 있게 보내야 하는 정답 따위 없다. 내가 정답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외로움을 내내 느끼는 건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 크리스마스와 같은 기념일은 일시적인 외로움일 뿐이다. 그저 나만 혼자라는 사실이 자의식적으로 극대화되는 날. 하지만 이는 SNS의 흔한 밈처럼 유통기한이 매우 짧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특히 주변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크게 받는데 시간이 지나면 이는 모두 자연스레 사라진다.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아 인생을 설계하며 드는 감성적인 파고들이 어쩌면 우리를 외로움이라는 감정으로 더 추동한다. 내 인생은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건지,만약 남들이 정답이라고 정해놓은 (연애, 결혼, 관계)에 조금이라도 부족하다 느끼는 결핍들이 더 스스로를비참하게 하는 거다. 단 하나의 결핍이라도 존재한다면 그것이 끝내 외로움으로 치환된다.

친구 혹은 지인과의 약속이 끝나고 집 가는 길이 공허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타인은 절대 내 결핍을 채워줄 수 없다. 특히 사람들로부터 둘러 쌓인 외향적인 이들은 더욱 이를 하루라도 일찍 느껴야 한다.


"넌 왜 필요할 때만 찾아?"

20대 때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친구는 원래 필요할 때 찾는 거다.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친구다. 관계라는 것이 연인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일방향적인 이로움을 주는 관계는 절대 오래가지못한다. 쌍방향적으로 도움이 될 때만이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같아 만나는 것이 관계이므로, 어쩌면 크리스마스에 '25일 하루만 나랑 연애하고 26일에 헤어질 사람'라는 농담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만이 우리는 내면의 단단함을 가지고 외로움을 이겨내는 나만의 방패를 가질 수 있다. 영어의 Alone 혼자라는 의미는 All+One 이 합쳐진 단어이듯,결국 완전히 하나가 될 때는 혼자 있을 때 만이다.

이런 기념일을 혼자 보내는 누군가가 있다면, 고생한 한 해를 돌아보고 나에게 선물해 주는 것이 어떨까. 평소 좋아했던 뮤지컬을 보러 가도 좋고, 콘서트나 공연을 봐도 좋다. 옷을 사러 가도 좋다. 혼자만의 시간을 얼마나 더 가지고, 일부러라도 내 시간을 만들 때 인생의 깊이와 성숙이 도래한다. 오히려 잘 된 거다.

미국과 멕시코의 3년간의 시간들은 처절하게 외로운 나날들이었다. 사진 속 행복했던 그때의 기억들은 내 뇌가 시간이 지나며 미화시킨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

365일 중 200일은 외로움과 함께 했다.

이 기간은 수많은 생각들로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내면의 성숙을 가지게 했다. 나를 아끼고 나에게 더 집중하는 시간을 보냄으로써 인생의 성장과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배웠다.

혼자인 시간을 견디는 사람은 상대방이 나에게 호의를베풀 때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고 고마운 것인지 알기에 두배로 보답하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그 관계를더 건강하게 만든다.

혹여나 오늘 크리스마스에 처절한 외로움을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외로움은 미래에 더 큰 선물로 다가올 것이다.


 특별한 날 외로움이 가득한 이들에게, 모두 메리크리스마스.


작가의 이전글 책 읽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