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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Dec 27. 2023

형은 왜 산업은행을 퇴사했나

다원화된 사회 속 용기있는 선택들

이 전 의대증원 관련 토론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반에서 1등 하던 학생만 의대를 갔는데 이제 5등 하는 사람도 의대에 간다. 의료서비스 질 저하는 어떻게 하나?

또 다른 문제인 지방소멸. 의사는 지방에 가라고 하면 연봉 2억에서 4억 더블로 준다고 해도 아무도 가는 사람이 없다. 환자에 빗대어봐도 똑같다. “지방에서 알아주는 유명 병원 갈래, 서울 갈래?”라고 했을 때 지방으로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0은 계속 0이다. 그 자체로도 0이고 뭘 곱해도 0.


지방소멸의 대표적인 예는 내 고향 울산이다. 평생을 울산광역시에서 살았다. 공업도시인 울산인 만큼, 그래서 울산 사람들이 얼마나 타 지역사람들보다 연봉 수준이 높은지 잘 알고 있다. 중화학 붐이 일던 2000년도 초반에는 울산에는 지나가던 개도 5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였다. 이는 내가 고3입시를 치르던 2011년도까지 계속됐다. 울산대학교 조선해양공학부는 지방대임에도 불구하고 인서울대학교와 비슷한 입결을 자랑했다. 현재 고대, 연대 계약학과처럼(ex. 시스템반도체공학부) 들어가기만 하면 고연봉의 현대중공업 입사가 보장됐기 때문이다.

 

 의대얘기와 울산얘기를 하는 이유는 이제 시대가 완전히 변했다는 걸 드러내고자 함이다. 울산 현대자동차 1차 벤더 생산직은 고연봉을 준다고 하는데도 인력난이다. 지인이 다니고 있기 때문에 어떤 근로환경을 제공하는지 상세히 알고 있다. 급여나 복지 모든 게 나무랄 데가 없다. 실제로 좋은 회사이지만 지원자가 없다. 지방이기 때문이다. 의사나 근로자나 모두가 꺼리는 지방근무에 그 어떤 정책으로도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

우리 세대는 아쉬울 게 없다. 아쉬울 게 없는 이들이 늘어나면 사회는 정상적 구조를 갖추기 어려워진다.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날이 치솟는 부동산 가격은 떨어질지 모르고, 치솟는 물가에 점심 사 먹는 것도 부담스럽다. 커피는 사내 커피를 마신 지 오래됐다. 어차피 월급모아 서울에 집하나 못 사는데, 굳이 몇 푼 더 준다고 내 생활의 급작스러운 변화와 서울 인프라를 포기하면서까지 지방으로 왜 가겠나?

우리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 경기침체와 물가가 동시에 오르는 스테그플레이션 속에 사람들은 절약과 재테크 등 욕망을 줄이는 쪽으로 조금씩 적응해 간다. 일 년 전에 그렇게 유행 타던 YOLO족들은 자취를 감췄고, 허세 가득한 SNS 피드들은 조금씩 뜸해진다. 현실과 괴리감 있는 꾸며진 모습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젠 피곤해지거든. 당장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 앞에서 멋, 욕구, 꿈, 희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 주어진 삶 안에서 그저 만족하며 조금이라도 덜 아쉽고 효율적인 선택을 한다. 월급이 쭉쭉 오르면 모를까, 직장이라는 것은 더 이상 우리의 보호막, 울타리가 되어주지 않는다. 공무원, 대기업 퇴사자들의 연령대가 갈수록 어려지고 있는 것이 그 이유다. 2030은 그 누구도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응답하라 1988 성동일을 보자. 예전에는 금리도 15%씩 하고, 지금을 희생하면 이룰 수 있는 꿈과 희망이 존재했다. 지금은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다원화됐는데 희망마저 없어지니 직설적으로 딴 데서 돈 벌겠다 이거다.

 

 그래서 내 친한 형은 얼마 전 금융공기업 중 탑티어 산업은행을 과감히 퇴사했다. 부산이전이 거의 본격화된 직후였다.

형 말고도 산업은행이 부산이전을 한다 했을 때 떠난 인원만 108명이다.

이 인원들을 새로 충원하고자 산업은행은 23년, 160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했다. 역대 최대 채용숫자이며 이는 모두 퇴사자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것이다.

산업은행 채용 인원

산업은행은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자금을 공급하며 국가위기를 방어한 국책은행으로써, 엘리트들만 들어가는 최고의 금융공기업이다.

흔히 일컫는 공기업 티어

흔히 입사난이도를 기반으로 공기업준비생들이 만든 대한민국 공기업 티어 자료다. 산은은 S급으로, 입사시험, 몇 번에 걸친 면접 등 그만큼 엄격한 검증이 들어간다. 최고난도의 엘리트집단이라는 반증이다.

22년 윤석열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지방균형발전을 목적으로 산업은행의 부산이전을 추진했고, 대부분 무산됐으나 현재 산업은행은 정상적인 이전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이 좋은 직장을 부산이전한다는 이유로 퇴사했다고? 처음에는 전혀 이해 못 했으나 조금은 짐작이 간다. 우린 이제 아쉬울 게 없는 거다.

 

 산업은행의 부산이전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다소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먼저 가장 우려되는 것이 친한 형 사례처럼 인재유출이다. 지방인재 가산점을 주고, 지방에 훌륭한 인재를 데려온다 할지라도 인원이 이미 다 떠나버린 상황에서 인수인계, 적정 인원배치에 시간이 소요될 거고, 간부급 이하 인원 부족으로 숙련된 실무자가 없어 일의 진행속도가 더딜 것이다.

그만큼 한 사람이 해야 할 일처리 양이 많아져 과부하가 온다. 핵심인력 유출로 국책은행으로써 금융경쟁력을 지속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다음은 금융 시스템에 따른 업무효율성, 법적효력부재문제다. 앞서 의대 서비스 질 우려와 비슷한 논리다.

뉴욕의 Wall street를 보자. 금융산업은 타 산업과 달리 한 곳에 산업클러스터를 형성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산업이다. 뉴욕이나 여의도나 홍콩을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국가 주요 산업의 자금지원을 하며 산업을 키워야 하는 업종이기에 해외 주요 금융기관과 글로벌 은행이 각국 수도 또는 경제금융 중심지에 위치한 것이다.  특히 산업은행은 정책자금운영에 있어 자금수요처나 채권기관, 금융위원회와 지속적인 협업이 필수적이다. 다 서울에 위치해 있는데 부산으로의 지방이전은 잦은 지방출장, 단순히 물리적 거리를 넘어 전체적인 업무효율성 저하를 야기한다.

법적효력관련해서는 현재 국회 동의 및 법 개정 절차를 밟고 있으나, 원래 산업은행은 서울에 본점을 둔다고 법에 명시가 되어 있다. 부산으로의 이전은 법 개정 및 절차상의 많은 행정적 절차도 필요하다.

또 다른 문제는 이미 과거 실패사례가 많다는 거다. 전주로 옮긴 연기금을 보자. 지금 어떻게 됐나?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와 거래소의 부산이전이 부산의 실질적인 금융경쟁력을 가져왔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재 산업은행 이전을 유치하고 있는 부산의 국제금융센터지수는 30위 수준으로 서울 (12위)는 물론 주변 주요 도시 홍콩(3위), 상하이 (4위), 도쿄(9위)에 훨씬 못 미친다. 진짜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부산이 아닌 타 지역에서 제3의 도시를 키워야 한다. 수도권과 핵심 도시의 발전을 위해 희생했던 소도시가 수혜를 받아야 한다.


 가치관이 뚜렷하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우리 세대에게 직업이 더 이상 가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독립적인 삶을 살기 위해 직업은 경제적인 자립을 도와줄 필수재다. 직장에 목매달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근로자에게도 쌍방향적으로 노동시장의 유연함이 자리 잡아 본인의 가치에 맞는 돈 벌 수단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근로자든 고용주든 늘 아쉬운 쪽이 손을 내밀게 되어있다. 근로자가 핵심인재라면 돈을 얼마를 줘서라도 데려오려고 할 것이고, 반대로 근로환경이 우수한 직장이라면 지원자가 몰릴 것이다.

2030의 퇴사문제는 누구 하나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만의 취향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더 나은 결과물과 다원화된 사회가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지나 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친한 형의 과감한 결정처럼 한 가지에만 매달려 생계를 이어가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거다. 고용주와 근로자는 더 이상 갑을관계가 아니다.

산업은행의 갑작스러운 부산이전 결정을 바라보며 고용주나 근로자나 이 뉴노멀 앞에 준비가 되어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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