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그리 Jan 09. 2024

바쁜 현대인이 잊고 있는 한 가지

위로가 주는 힘

KTX나 지하철을 타면 종종 색다른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어제 아침이 딱 그랬다. 새벽 여섯 시 어김없이 지하철을 탔는데 적막한 공기 속 지하철에서 방송이 나온다. 2호선에서는 이런 방송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는데 벅찬 감동과 함께 새벽부터 감정의 파고가 휘몰아친다.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역은 현재 서초역을 지나고 있습니다. 벌써 새해의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여러분들의 새해다짐은 잘 실천하고 계신가요? 만약 아직 못 이루셨다 해도 괜찮습니다. 지금부터 하면 됩니다. 이 꾸준함이 조금씩 계속된다면 원하는 목표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것입니다. 날씨가 많이 추운데 따뜻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새벽부터 잠이 다 깨면서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 한마디는 내게 새해목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동질감과 동시에 따뜻한 지하철 좌석처럼 편안한안식처로 다가왔다. 나 포함 다른 승객들도 그렇게 느꼈을지 모른다. 그 말 한마디 덕에 어제 하루는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마음만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을 깎아내리는 사람이 있다. 좋은 일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늘 불평만을 앞세우면서 최소한의 본인을 방어할 안전장치를 지키고자 남을 깎아내리는 방법을 택한다.

"네가 무슨 공부야. 그냥 이거나 해"

"너 기존에 하던 거나 잘해"

이 말은 그 말을 듣는 청자로 하여금 기존의 하던 일도 제대로 못하게 만든다.

이렇게 말하는 걸 주변에서 많이 보며 나는 특히나 이들을 멀리했는데 그 이유는 나도 그런 생각이 전념되기 때문이다. 그들과 같은 조직에 있거나, 같은 공간에 있거나, 공통분모가 있다면 나 또한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으로 비쳐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생긴다. 이 상황을 하루빨리 벗어나 해결해야만 할 것 같다.


한 분야에 탁월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축구선수 손흥민이든, 피겨여왕 김연아든, 노벨과학자든. 그들의 하나같은 공통점이 있는데 타인이 무언가를 잘하는 걸 보았을 때 아낌없이 칭찬하고,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거다.

'왜?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본인들이 더 대단하면서?'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안다. 그게 그냥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이처럼 누가 봐도 안 좋은 일인데 희망을 주는 이가 있다. 그게 인터넷 댓글이든, 내 옆에 있는 사람이든 그 말 한마디 자체로 큰 위로가 된다.

내 지인 중에 자산만 50억이 넘는 형이 있다. 이 형은 대기업을 다니는데 진짜로 그냥 취미로 다닌다. 최근 유행하는 월 천만원벌기 컨설팅처럼 본인의 자산으로 다른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돈이 많은 거다. 상사가 뭐라 하든, 일에 치이든, 그냥 늘 즐겁게 회사를 다닌다. 왜냐하면 그 정도 자산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시련도 본인은 편안한 거다. 언제든지 잘려도 먹고 살 구석이 있으니까.

나는 이런 형의 편안한 삶의 모습을 높게 사는 것이 아니다. 이 형을 좋아하는 이유는 형이 사람들을 대할 때의 태도 때문이다.

가령, 내가 천만 원 적금을 들었다, 오 천만 원을 모았다, 신입사원 때부터 이런 말들을 하면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를 칭찬하고, 격려해 주며, 멋있어한다.

사실 이 형한테 천만 원이 돈일까? 오 천만 원이 나중에 기억이나 날까? 본인에게 세발의 피와 같은 돈인데 나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형의 태도는 내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이 형은 내 돈이 아니라 내 노력과 태도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게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다.


 요즘 신기한 것을 발견했는데, 정말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어쩌면 늘 상투적이고 원론적인 '아냐, 잘할 수 있어, 잘 될 거야. 길은 다 있어, 이게 다 과정이야, 걱정 마. 다 잘 풀릴 거야'라고 말하는 이가 있으면 실제 그 문제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0% 불가능해 보였던 일도 50% 정도는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생각이 든다는 거다.


어차피 우리가 하루를 살면서 겪는 모든 것들은 사람이 만든 것을 사람들끼리 해나가는 거다. 각자의 삶과 생각들은 가지각색이겠지만 대체로 사람이 생각하는 건 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맛있는 거 먹으면 기분 좋고, 여행 가면 행복하고. 반면에 일하면 지치고 지루하고, 피곤하고. 다 똑같다.

단, 그 속에서 나만의 세상, 나만의 우주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나만의 우주는 주변사람들의 따뜻한 위로와 긍정적인 마인드가 바꿔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 모든 말 중에 '괜찮아'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실수한다. 배우지 못해 잘못된 생각을 할 수가 있고, 욕심을 부려서 화를 부르는 경우도 있고, 내 노력과 의지와 상관없이 예상치 못한 일로 안 좋은 일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와 관련해 무수한 일들을 겪을 것이다.

이때 나 스스로 '괜찮다' 혹은 타인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해보자. 당장은 죽을 만큼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진짜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진 본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나고 보면 그 과정에서 오히려 ‘그냥 다 괜찮았다'라는 확신을 하나 더 배운다.

물론, 누군가는 책임 없는 말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가며 '이래도 괜찮냐, 저래도 괜찮냐'라며 반론한다.

근데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그 당시 괜찮다는 마음을 안 가지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나나 내 주변 모든 상황이 눈 깜짝할 사이에 더 안 좋아진다. 괜찮지 않은 상황을 유지하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주변인들만 더 힘들게 할 뿐이다. 내 마음의 화를 추스르지 못하면 내 주변환경도 추스를 수 없다. 모두 다 내가 만드는 거다.드라마나, TV프로그램을 보면 화나서 주변의 물건을 집어던진다거나, 주먹을 벽으로 쳐 주먹이 아작 나는 장면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 더 심하면 자해를 하거나.


 매사에 초연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괜찮다는 마음으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

정말 죽을 만큼 힘들고 아팠던 날들도, 극심한 스트레스도, 세상에 나 혼자 버려진 느낌이 들 때에도, 결국은다 지나갔다. 그리고 난 여기 아직 잘 살아있다. 어제 내가 무슨 일이 있었든 나는 오늘 이 새벽 지하철을 잘만 타고 있다. 다 지나간다. 다 괜찮다.

시간이 약이다. 혹시 시간이 지나도 괜찮아지지 않는다면 내가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나를 생각해라. 그냥 시간이라는 약을 더 먹으면 된다. 그럼 괜찮아진다.

돈도 사실 똑같은 논리다. 어떤 이는 돈이 있어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럼 그 돈이 부족하지 않았나를 돌아보라. 돈이 더 많으면 행복해질 것이다.


지하철 방송 말 한마디에 많은 생각이 든다.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삶의 큰 축복이다.


근데 그게 나 자신일 때는 가장 힘이 세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도 돈 쓰는 사람이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