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일으키는 긍정의 힘
한국사람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이 없다. 학생들은 죽어라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인들은 죽어라 일하고,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요즘은 스타트업도 체계적인 제도아래 도전하는 청년들이 매우 많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본인의 과업을 하며 이토록 성실히 하루를 보내는 근본적인 목적은 다 '잘 살기 위함'이다. 잘 살아보겠다는 아버지세대, 윗세대가 가져온 굳건하고 존경받아야 하는 희생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든 것이다. 자연스럽게 우리도 그걸 배우면서 자랐고 본인에게 좀 더 가혹한 목표를 세워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그 성취감으로 다시 다른 도전을 해서 경쟁에서 이기고를 반복한다.
지금 내 앞에 나오는 TV프로그램에도 메가스터디나 유명 일타강사들이 나와 고3 사연자의 공부방법을 코치해주고 있다. 그렇게 해서 좋은 학교에 간들, 아니면 아쉽게도 원하지 않는 학교에 간들, 설령 학교를 가지 못했다 해도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은 그 인생 자체로 우리는 가치 있고 멀리 바라보면 지금의 좌절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굳이 힘쓰지 않아도, 죽어라 하지 않아도 장기적인 내 목표와 취향이 있고 그걸 꾸준히 행한다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닿는다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를 더 가혹하게 시험대에 올려두지 않고, 조금 늦을지라도 매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거다. 장기적인 목표 앞에서 남 눈치 보지 않고 경쟁에 뒤처진다 해도 꾸준히 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그 목표 앞에 다가서있는 본인을 보게 될 것이다.
쇼츠나, 유튜브, 자기 계발서, 등 온갖 도파민에 파묻혀 월에 천만 원을 번다느니, 20대인데 포르쉐를 탄다느니, 무슨 사업으로 월 얼마를 내면 노하우를 알려준다느니 무수히 많은 인터넷 부자(?)들이 들끓는 세상이다. 뭐 설령 진짜로 저렇게 돈이 많다 한들, 사실이 아닌 사람을 실제로 내 눈으로 봤기에 현실 사회와는 다소 괴리감이 있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누가 월 얼마를 벌든, 누가 1등급을 받아 SKY대학교에 가든, 누구 집은 애 유모차가 몇백만 원이든, 몇백짜리 고액과외를 하든, 부모나 학생, 직장인 우리 모두 단기적인 결과에만 목매지 않고 나만의 침범받지 않을 취향을 가슴속에 가지고 나만의 페이스대로 간다면 무조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주변을 보면 그렇다. 진짜 뭐라도 한다. 반에서 꼴등을 하든, 전교꼴찌를 하든 일진이든 지금 다 뭐라도 해서 각자의 취향대로 잘 먹고 잘 산다. 나도 어릴 때 그냥 단지, 무역이라는 걸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안고 관련된 경험이나 공부를 조금씩 하며 달려왔는데 지금 결국 내가 원하는 분야를 하며 잘 살고 있지 않나. 물론 사업이 아닌 회사는 또 다른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당장 정해진 기준과 잣대안에서 타인 대비 좋은 성과를 내려고 하는 것보다 우리는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게 정답이다.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돈을 벌고 나를 성공으로 만들어가는 시대다. 사실 이 진리는 아주 옛날부터 이루어져 왔던 논리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 세대는 당장 이것을 실천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당장 먹고살기 바빠 정해진 틀 안에서 본인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쿠바의 혁명가 체게바라는 이런 말을 했다.
"Seamos realistas y hagamos lo imposible"
스페인어를 직역하면 “현실주의자가 되어라, 그리고 불가능한 꿈을 꾸어라”이다. 세상을 보다 현실적으로 직시하고, 남보다 나는 어떤 걸 다르게 할 수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개인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더 달라지는 지름길이라 여긴다.
그럼 지금 내 안을 바꾸고 새로운 생각을 일으켜 불가능한 꿈을 꾸는 방법은 무엇일까. 스스로의 환경을 달리 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주어진 것, 원하는 것, 나의 장기적인 목표에 조금이라도 연관되어 있는 지금 내 주변의 것을 모두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긍정적으로 마음먹으면 나만의 우주가 달라 보이고, 긍정적인 미래를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그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어제 일 년 만에 친한 멕시코 친구와 영상통화를 했다. 이 친구는 95년생인데 벌써 애가 둘이다. 10년 전 23살 때 처음 만났는데 우리가 지금 함께 사업얘기를 하고, 와이프 얘기를 하고, 애기 얘기를 하는 걸 보며 시간이 이렇게 빠름을 서로 실감하며 감탄했다. 한 시간가량 통화를 하는데, 그때 그 시절 멕시코에서 배워왔던 가장 큰 자산을 다시 한번 상기시킬 수 있었다.
바로 긍정의 힘. 이 친구는 사업을 하다 최근 망하고 다시 준비를 하고 있다. 보통 우리나라 같았으면 절망을 하거나, 재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친구는 애가 둘인데도 그냥 허허 웃으며 돈이랑 바꿀 수 없는 경험을 얻었다며 신에게 감사해한다. 멕시칸들이 실제로 이렇다.
이 친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죽은 자의 날에는 돌아가신 부모, 조모 무덤이나 사진을 앞에 두고 웃으며 춤추는 행사를 한다. 슬픔을 승화시켜 웃으며 보내주자는 의미다. 그러면 더 본인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어느 날 멕시코 내 룸메이트는 새벽에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걸어가다 강도를 만나 핸드폰을 뺏기고 입술이 찢어질 정도로 맞고 왔다. 그러고는 내게 말한다.
"괜찮아, 어차피 폰 바꾸려고 했어"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친구는 내가 미국 인턴에서 잘렸을 때,
“괜찮아, 너 팔다리가 잘린 게 아니잖아”
라고 한 친구다. 8년 전 얘기다. 이 친구는 지금 연봉이 3억이 넘는 멕시코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엔지니어다. 다 긍정의 힘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매사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멕시칸들의 힘은 다시 새로운 걸 덤덤하게 도전하게 만들고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무엇보다 그들 본인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어제 통화한 친구도 30살인데 애가 둘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매사에 실행에 옮기니 남들보다 더 앞서가는 거다.
지금 직장인들은 승진대상 인사 발표를 앞두고 있을 것이고, 중고등학생들은 새로운 학기를 준비할 거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올해 새로운 매출목표를 세워 갈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들 마인드를 배워야 한다.
우리가 지금 하려는 일, 하려는 목표 앞에서 오늘 하루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더 나아지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페이스대로만 가면 된다. 단순히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원론적인 얘기가 아니고 매 순간 오늘 하나하나의 일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면 실제로 그렇게 좋은 일이 생긴다. 억지로 죽자 살자 아등바등 처절하게 본인을 학대하면서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당장 학사경고 맞은 대학생이 아, 이번 학기는 올 A+받아야지라거나, 승진에 몇 번 누락한 과장이 이번에는 꼭 승진을 해야지라거나, 무엇을 꼭 해야만 하는 이뤄야만 하는 압박과 도파민에 대한민국 사람들은 혈안이 되어있다. 어차피 내 옆에 애가 먼저 승진을 하든 내가 먼저 하든 10년 뒤는 또 모른다. 학사경고를 받은 대학생이 지금 A+를 받든, 학사경고를 한번 더 받든 5년 뒤 어디 취업할지 아무도 모른다.
오늘 하루 그저 잘 살아냈고, 내가 바라는 지점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인생은 어떻게 풀릴지 모르는 것이기에 우리는 다가올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강한 나만의 취향과 방향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단, 이 모든 신념은 긍정적인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우리 각자는 지금 있는 그대로 완전하며 그 외의 모든 것들은 그저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줄 수단일 뿐이다.
원래 나의 길은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글을 쓰지 않으면 나중에 읽는 이가 있다 해도 글을 쓸 수 없게 된다. 아무도 먹지 않을 거라는 이유로 요리하지 않으면 혼밥에도 식사가 거칠어진다. 애초부터 늘 누군가 읽어줄 거고, 누군가 먹어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시작부터 우리 내면 각자의 우주는 이렇게 비좁아져 간다.
긍정의 힘은 이렇게 위대하다. 오늘도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