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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Jan 22. 2024

올해 처음 사람을 만났다

결국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올해 처음 사람을 만났다. 1월도 벌써 22일째를 맞이하고 있으니, 가족제외 22일 만에 사람을 만난 거다.

오랜만에 함께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하이볼도 한잔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결혼식에 왔던 내 오랜 친군데, 우리 둘 다 취업을 못하고 함께 방황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었고 서로 힘이 된 친구이기에 문득 보고 싶어 먼저 연락했다.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우리가 어느덧 이렇게 나이를 먹고, 사회에서 1인분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서로 신기해한다. 당시 자존감이 낮아자조적으로 삶을 한탄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만 같은 우리였는데 아무것도 없이 서울 상경해서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게 한편으로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서 서로 달라진건 없다. 항상 예전에 봤던 모습 그대로다. 서로 근황을나누며 내가 미처 몰랐던 부분들에 보이지 않는 자극과 동기부여가 생긴다. 친구는 최근 유행하는 SNS의 노래나 춤이라던가, 어플이라던가, 그것도 모르냐며 놀린다. 한편으로는 거의 집에만 있으니 시대에 좀 뒤떨어졌다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를 직접 만나 얘기를 한다는 게 오랜만이라 그런지 조금 어색했다. 결혼을 하면 보통 가정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솔로일 때보다 친구 만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게 사실이다. 이런 아주 그럴싸한 핑계로 자주 못 봐서 미안하다며 얘기하다 주제가 자연스럽게 결혼이야기로 흘러갔다.

결혼을 하면 좋냐, 결혼 전보다 어떤 점이 다르냐, 삶이어떻게 바뀌었냐 등 본인도 얼른 누군가를 만나서 결혼하고 싶다며 한숨을 퍽퍽 쉰다.

친구의 고민은 딱 하나였다. 연애와 결혼.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고 싶은데 최근에 소개팅으로 만난 3명 모두가 너무 잰다는 것이었다. 대화할 때 상대방이 자산이 얼만지, 월급이 얼만지, 집은 어디 사는지 알고 싶어 하는 질문들을 은연중에 한다는 거다. 그걸 모르고 그냥 대답을 했었다면 본인도 상관은 없을 텐데 그걸 눈치를 채고 대답을 하려니, 현타가 온다는 거였다.

물론 소개팅으로 만난 자리는 조건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질문 자체가 문제 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점이 마음에 든다고 했을 때 그 주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어도 되고, 당당하게 본인의 처지에 대해 말하면 되는데 논점을 흐려 주제에 있어 빙빙 둘러 말하는 것이 친구는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본인한테 솔직하지 못한 거다.

근데 사실 대한민국에서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 때 이런 생각이 안 든 사람은 단언컨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조건을 보지 말고 진짜 사랑을 하라”, “가슴이 뛰는 누군가를 만나라”는 이제 우리에겐 현실성이 결여된 조언이다. 요즘은 갓 스무 살도 조건을 보고 연애를 한다고 한다. 대학교는 어디 다니고, 돈은 얼마나 있고, 외모는 어떤지•••

직업도 없는 백수에다가 일할 의지도 없는데 외모와 성격이 잘 맞다 해서 평생을 약속할 수는 없는 세상이다. 당장 친구와 저녁 먹는 이 파스타와 하이볼도 6-7만 원 하는데, 어디서 어떻게 돈을 벌어 올건지를 생각 안 한다는 건 오히려 더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친구한테 대답했다.

"결혼은 너무 다양한 케이스가 있고 상대적이라 정답은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결혼은 한쪽이 큰 이득을 보는 결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러자 친구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을 직역하면 그냥 끼리끼리 결혼한다는 거다. 주변에 이와 관련된 많은 사례를 직접 접했다. 극단적인 예시로, 내 친구는 의산데 약사를 만나다, 부모님의 반대로 다시 새로운 여자와 선을 봐서 결혼을 했다. 그 여자는 물론 약사가 아닌 의사다. 약사는 누가 봐도 선망받고 좋은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의사라는 이유로 그쪽 부모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 뜻은 뭐냐. 내가 더 나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집에 물려받을 자산이 있지 않은 이상,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출생, 신분, 성별, 집안환경 이런 외적변수가 아니라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사람과의 소개팅에서 내가 잴 수 있는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직업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인품이나 성격으로 보나 더 나은 사람이 되면 그에 맞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이 친구와 나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둘 다 취업을 못해 돈이 없어 1,200원짜리 빵 하나씩 사서 서울숲 벤치에서 나눠먹던 그때와 비교하면 훨씬 나은 우리다. 6만 8천 원짜리 파스타와 하이볼을 먹고 있다. 그때 벤치 건너편 보이는 50억짜리 서울 아크로포레스트를 바라보며 열등감,선망 복합적인 감정의 파고에 흔들렸었지. 그때 빵이 어떻게 입에 들어갔는지도 기억 안 난다며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지금 우리는 과거에 꿈꿨던 최선을 살고 있다. 그때의 점들이 모여 지금 이 선이 만들어졌고, 이 선은 과거에 내가 선택한 순간들이 모인 결과다.

스티브잡스도 “connecting the dots”라고 말했다. 더 정확히는,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점들을 이을 줄은 압니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며 점들을 이을 능력은 없습니다.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점들이 이어질 거라는 걸 믿으세요”


자, 실행이 곧 점들의 연결이다. 그럼 이제 우리는 다시꿈을 꿔야 한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무언가 새로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을 하면 미래에 더 멋진 선이 그려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결국 친구에게 말했던 것은 방에 있는 시간을 늘리라는 것이다.

친구는 요가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방에서 요가를 하고, 책도 읽고, 다이어리도 쓰고, 집에서 요리를 해 먹으며 절제된 삶을 사는 것이 결국 본인에게 성과 있는 결과물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결국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거나, 하물며 자격증을 따거나, 무언가의 결과물을 내야 하는데 나는 그것이 내 방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예를 들어, 방 안에서 책만 읽는다고 삶이 급격히 변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지식의 범주가 넓어지고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겨 결국 하다못해 일기라도 쓸 수 있다.

이 모든 건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얻는 것이 아니라 혼자만의 공간에서 직접 행할 때만이 이루어진다.


사람을 만나 얻는 이 행복과 동기부여, 공감도 결국은 오랜만이기에 이토록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맨날 친구들과 술 마시고, 알맹이가 없는 얘기들만 늘어놓다 집에 와서 자고 다음날 출근하는 삶을 반복하다 보면 정작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설령 그때 친구와 의미 있는 얘기를 했을지라도 만취해서 다 날아가고 곁에 없을 것이고, 술값으로 돈도 전부 탕진할 것이고, 나만의 무언가를 할 시간도 다 뺏긴다.


어제 플레이스테이션 시디를 당근마켓으로 하나 더 주문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는 집에서 이렇게 게임도 하고, 웬만하면 집에서 대부분 해결하려 한다. 오늘 22일 만에 첫 친구를 만난 것처럼, 챙기고 싶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되어있다. 더 좁고 깊게 세상과 관계를 분별하고, 나에게 투자하는 시간과 돈을 늘리는 것이 새해를 더 값지게 시작할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

누군가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현타가 올 때가 있다. 재밌게 웃고 떠들다가도 집에 돌아가면 모든 게 원상 복귀되고 내 삶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이다. 또다시 지독한 외로움이 찾아온다. 사실상 친구도, 가족도, 주변 사람들 모두 내가 잘돼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친구도 그게 정답이라며 본인을 재는 소개팅 상대방을 미워하기 전에, 본인만의 삶에 더 집중해본다고 한다.

이렇게 생산적인 얘기를 나누다 집에 돌아가는 길, 차가운 칼바람을 맞서며 혼자 덤덤히 생각을 한다. 올해는 그 친구가 좋은 짝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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