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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Jan 24. 2024

오늘 하루 잘 살았다! 의 기준

남아있는 것들에 대하여

바람이 매섭다. 퇴근 길 영하 11도를 웃도는 날씨는 저절로 패딩에 달린 모자를 쓰고, 몸을 더 움츠리게 만든다. 두꺼운 옷은 이렇게 매서운 날씨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가 되는 것처럼, 요즘 종종 생각하는 것이 결국에 나는 무엇을 지켜내고 싶은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결국 나만의 믿는 구석하나는 있어야 오늘 하루 잘 살았고, 앞으로의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럼 나는 무엇을 세상으로부터 지키고 싶은가. 이 원초적인 질문에서 내가 곧장 꺼낼 수 있는 답변은 바로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다. ‘결국 내게 남는 것’.


와이프가 퇴근 후 밥을 먹으며 내게 이런 말을 한다.

“아, 쓸데없이 회사에서 너무 열심히 일 해버렸어”

이 자조 섞인 농담에 우리 둘 모두는 웃었지만, 사실 맞는 말이다. 9-6시 정해진 근무시간에 아무리 열심히 회사에서 일해봤자 결국 월급은 똑같고, 내게 남는 건 없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퇴근 후 공허하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여럿 있다. 이래서 사람들이 내 사업, 내 비즈니스를 하려고 하는 걸지도. 결국 하루 중 남는 시간은 자기 전 단 30분이라도 읽은 책이다. 바로 이런 것이 오로지 내게 남는 것이다.

내 자산, 내 지식, 내 경험, 내 사람••• 이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고 결국 남는 나만의 것에 대해 우리는 깊게 지금부터 생각해보아야 한다. 간혹 여행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은데, 이건 경험으로 남는 행위다. 남는다는 것은 물질적인 것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향유, 추억도 모두 포함한다. 어릴 적 친구들과의 수많은 술자리는 기억 안 날지라도, 친구들과의 했던 여행은 기억나는 것처럼 여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

월급쟁이들이 재테크에 목매는 이유는 결국 퇴직하고 남는 건 돈밖에 없기 때문이다. 퇴직하고 명예를 가지고 갈 건가, 회사 복지를 가지고 갈건가. 결국 우리는 돈만 들고 떠난다. 제일 친한 친구며, 친척이며, 가족이며 세상 모든 게 떠날지라도 돈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물론 각자가 생각하는 남는 것의 기준은 제각각이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 사라지지 않고 남는 것으로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내 존재를 입증하고 더 큰 기회를 얻을 준비를 해야 한다.

맨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일기를 쓰는 것이었는데, 그게 몇 날 며칠지속되다 보니 어느덧 퇴고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일기는 혼자 쓰니까 일기다. 그게 직장상사를 위한 것이었다면 보고서가 됐을 것이고, 신문에 나왔다면 기사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일기는 나 혼자 쓴 글인데도 불구하고 남이 읽을 수도 있다고 염두하며 양식을 고치고 기교를 섞어 쓰고 있다. 왜? 결국 내게 남는 것으로부터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새로운 기회를얻고자 함이다.

글은 종이에 쓰면 종이에 남고, 컴퓨터에 쓰면 폴더에 고스란히 남는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 욕구이기에 단 하루도 빼먹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생각은 휘발성이 강하다. 조금만 변형되거나 중간에 무슨 일이 있으면 복구하지도 못하고 금세 사라져 버린다. 이 말은 즉슨, 나만의 방식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 떠오르면 길거리에서 아무리 추워도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메모장에 칼같이 적는 이유가 그것이다. 술래잡기처럼 내가 생각이라는 술래의 옷깃 끄트머리라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지금이 난 너무 재밌다.


나이가 들면서 유독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본질적인것들에 큰 관심이 간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가장 편리한 것이 사진인데, 그래서 네이버클라우드 용량을 최근에 80gb로 늘렸고 노트북에 모든 사진을 백업해 두었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이 겉만 번지르르한 것들은 삶에 사실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턴증명서, 상장, 자격증과 같은 것은 지나온 삶에 대한 노력의결과일 뿐 그저 그 지식 그대로만 가져가면 그뿐이다.

“10년 전에 이 자격증을 땄는데, 이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다 생각해 보자. 아무런 의미 없다.


영하 11도 퇴근길 앙상한 나무들을 본다. 모두가 떠나간 이 공간에서 시간의 흐름 속 결국 남겨진 것들.

이 작은 존재가 홀로 남음으로써 공간에 더 큰 힘을 싣는다. 내 옆에 동료가 여자친구와 이별했다고 슬퍼하는데 위로를 해주면서도 생각하는 것은 이처럼 이별은늘 우리 곁에 있다는 것.

내 인생에서 남아있는 단 하나의 것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시 힘을 내야 한다. 떠나간 모든 존재에 대해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지금 내게 적어도 남겨진 단 하나의 것을 악착같이 지켜내며 힘내야 한다.

내 곁에 아무것도 없다? 결국 본인이 다 잃었다 생각해도 상관없다. 나 스스로가 남아있지 않나. 영어에서도 혼자라는 뜻의 alone은  aall+one이 합쳐진 단어다. 완전한 하나. 진짜 결국은 다 떠나고 나 혼자 남을지언정, 앞으로 내게 남아있을 것들을 또 만들어가면 된다. 남은 것들을 이용해 또 남을 것들을 만들어내고, 선순환의 고리를 이어가는 것이 어쩌면 진짜 내가 존재하는 이유다.

이게 매일 새벽을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여러분들에겐 어떤 것이 남아있나요.

뉴욕에서 찍은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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