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어야 살아남는다
글을 읽거나 노래를 듣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나는 이 생각이 들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그게 책이든 노래든 몇 번을 반복한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창작물을 만든 사람이 진짜 아티스트가 아닐까. 대중의 사랑이든 돈이든 따라올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책에서나 노래에서나 미술에서나 이 생각 자체를 만드는 로직은 동일하다. 바로 ‘기발함’이다. 노래에서는 대표적으로 빈지노가 내게 그렇다.
빈지노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빈지노는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원탑 래퍼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과거 재지팩트나 핫클립에서부터 노력 하나로 모든 걸 증명해 냈다. 그의 가사는 마치 천부적 재능과 노력이 합쳐지면 어떻게 되는지 증명을 하는 듯하다.
많은 래퍼들은 언어유희를 통해 라임을 만들고 16마디를 짜는데 이 언어유희, 펀치라인이 곧 기발함이다.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본인만의 색깔이 드러난 언어유희는 수많은 리스너들이 가사를 듣고, 다시 이 가사를 상기시키도록 만든다.
펀치라인의 사전적 정의는 농담 혹은 진지한 내용을 전달하고자 할 때 마지막 순간에 특정 단어나 문장, 또는 문장의 순서를 바꿈으로써 듣는 사람이 웃거나 깊은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래퍼들은 순간순간 떠오른 이 펀치라인, 기발함들을 이어 붙여 한 곡의 노래를 만든다. 라임이나 마디를 맞춰야 한다는 강박에 이 기발함들을 그냥 끼워넣기만 해 다소 억지스러운 면도 보인다.
근데 빈지노는 언어유희 속에서도 전혀 억지스러움이 없고, 한 줄의 가사도 듣자마자 그때의 상황이 그림으로 그려진다. 그렇게 될 수 있는 이유는 각 곡에 어울리는 본인만의 이야기와 내용을 담고 있으니 그렇다. 리스너들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편안하게 본인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원래 어려운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대단한 재능이다. 그걸 가지고자 우리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다.
빈지노의 <Smoking dreams>라는 노래의 가사다. 이 가사와 펀치라인이 리스너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것은 빈지노가 삶이 힘들 때의 본인만의 진솔한 경험과 생각을 풀어냄으로써 리스너들의 공감을 샀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던 무명 빈지노가 꿈하나로 버티는 과정들을 새벽 담배연기에 그려낸 이 스토리텔링에 우리는 우리만의 각자 그림을 만들게 되고 노래에서 위로를 받는다. 아직도 유튜브 이 노래의 댓글에는 10년이 지나도록 꿈을 이뤄가는 리스너들의 몇천 개의 사연이 달린다.
기발한 가사> 대중의 공감> 응원>또 다른 기발한 창작 이런 선순환이 이뤄지는 원동력은 뭘까.
바로 아티스트의 ‘진실된 감정과 지독하게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진짜 리릭시스트고, 이렇게 탄생한 스토리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결국은 내 스토리가 답이다. 내 스토리를 가지기 위해서는 경험과 생각이 많아야 한다. 경험과 양질의 생각을 만들기 위해 부모들은 어릴 적부터 자녀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시켜주려 하는 것이고 독서를 하라고 하는 거다.
외국인들이 BTS를 그냥 춤 잘 추고 노래 잘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다. 오징어게임도 마찬가지다. 모두 각자의 역사와 스토리가 있기에 열광하는 것이다. 기업도 돈을 벌기 위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사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단순해 보이는 제품 하나에도 캐릭터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한다. 역사와 스토리를 불어넣기 위함이다. 그리고는 고객경험을 분석한다. 언제 어디서 이 제품을 주로 사는지, 어떤 경험이 연관되는지. 결국은 스토리가 모든 걸 결정함을 느낀다.
어제 친한 형과 차 안에서 Chat GPT와 대화를 해봤다. ”운전 중 핸드폰 하는 걸 어떻게 생각해?“
라고 질문하니,
“운전 중 핸드폰을 만지는 것은 굉장히 위험해요”
라며, 그 이유에 대해 5가지를 막힘없이 설명했다. 또 이 형은 특히 농작물에 최근 관심이 많은데,
“농작물 관련 보고서를 쓰게 주제 몇 가지만 던져줘”
라고 하니, 잠시 생각하더니 피피티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몇 가지 주제를 정해 아주 상세하게 알려줬다.
근데 이 모든 건 객관적 정보성 글에 지나지 않는다. 본인만의 색깔이나 영혼이 없다. 10초만 읽어 내려가도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는 게 보인다. 이걸로 피피티를 몇 장을 만들든, 보고서를 쓰든 평생 인간을 대체할 수 없고,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이다. 사람들은 이 정보를 받아들일 때 유용하게 이용만 할 뿐, 열광하지 않는다.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게 글이든, 그림이든, 랩이든, 복제와 꾸며낸 것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반짝할 수 있으나 지속가능성이 없다. 이제는 정보의 홍수 속, 가짜들 사이에서 진짜를 분별하고, 본인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이에게 사람이 몰릴 것이다.
유무형의 어떤 것이라도 세상에 만들고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