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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Jan 30. 2024

대체 늦은 나이는 몇 살일까?

도전과 꿈 그 사이에서

미국에는 갭이어라는 제도가 있다. 취업을 하거나 진로를 설정하기 전 1년간 다양한 경험이나 활동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관심분야를 찾아 나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원칙적으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1학년 전 1년~2년 동안 가지나, 요즘 들어 시기는 크게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식적이진 않으나 암묵적인 갭이어가 있는데, 바로 대학교 1학년 전후다. 남학생들은 대학교 1학년이 끝나면 군대를 가기 때문에 1학년 동안학점관리는 거의 안 하고 대학수업을 병행하며 좋아하는것들을 하나씩 해본다. 나도 이때 스페인어를 배웠다. 군대에 가면 어차피 모든 것이 리셋되므로 여러 활동들을 미리 경험해 보는 것이다.

여학생들은 1학년이 끝날 때 1년간 휴학을 하는 친구들을 여럿 봤다. 휴학이나 교환학생을 가거나 어학연수를 가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된 듯하다. 이때가 아니고서는 영어를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는 시기가 사실 없기 도 하고, 영어는 어디든 도움 되기 때문이다. 어학연수를 갈 정도로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도 사실 요즘 워낙 교환학생이 잘 되어 있고,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제도도 많으므로 이를 찾아서 활용하면 된다.


삶을 살아오며 대체로 내가 원했던 계획이나 목표는 다 이루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딱 한 가지 내가 후회되는 게 있다. 바로 다신 오지 않을 이 나만의 갭이어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했던 것. 사회가 요구하는 주어진 틀 안에서만 생각했던 것이 가장 크게 후회되는 점이다. 남들이 말하는 정해진 길이 곧 성공이고 자아실현인 줄 착각한 거다. 그때 무역이라는 진로를 선택한 이유도 어쩌면 외국어를 쓰고 해외로 출장을 가고 꿈을 펼치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였다. 그저 있어 보이니까 선택한 것에 불과했다. 꿈을 꾸는 데에도 우열을 따져 남들 눈에 무시받지 않을 정도의 미래의 모습을 정한 나 스스로가 너무 후회된다.

이때 갭이어를 잘 활용했던 내 친구들은 33살이 되니 본인만의 확고한 길을 찾아갔다. 갭이어 때 우연히 클럽에 놀러 가 디제이를 처음 보고 흥미를 가진 내 친구는 지금 부산에 작은 디제잉라운지바를 차렸다. 디제잉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의 경우는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오로지 내가 관심 있고 좋아야지만 할 수 있는 것들.

가죽재킷과 가죽신발, 가죽지갑 가죽만 고집하는 가죽매니아 내 친구는 갭이어 때 가죽일을 배워 지금 가죽공방을 차렸다. 갭이어 때 영국으로 가 브런치와 도넛에 특별히 관심을 가진 내 또 다른 친구는 고향 창원에 도넛집을 차렸다. 성공여부를 떠나 이들은 모두 본인만의 갭이어를 잘 활용하여 본인의 꿈을 펼친 사례다. 덕업일치의 표본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직장인들은 전부 꿈이 없었나? 그런 건 아니다. 사실, 일반 직장인들도 꿈을 꿀 수가 있다. 내 친구 중에는 맥주를 너무 좋아해 아일랜드로 교환학생을 가독일, 체코 등 유럽전역에서 맥주만 먹다가 맥주회사에 취업했다.

“경영학과가 취업에 유리하대”

“요즘은 아랍어가 뜬대”

남들이 좋다고, 안정적이라고 말한 것들을 다 따라 하다 보면 나중에 본인의 색깔은 조금씩 옅어지고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된다. 내가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일이었다면 적어도 돈은 못 벌지언정, 남들처럼 떵떵거리며 인생을 살진 못할지언정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는 없다. 연봉이 어떻든 복지가 어떻든 남들이 그저 좋다고 하는 네임벨류에만 집착하면 경제적으로는 안정될 수 있으나 일말의 미련이라도 무조건 남게 된다.


원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다. 대학생 때 누군가는 내게 멕시코와 미국에서만 있다 학부를 거의 졸업하는 걸 보고 알차게 산다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분명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었고, 다양한 경험에만 매몰된 채 내 진짜 속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다.

적어도 그렇게 늦지 않은 나이에 지금 내가 관심 있어하고 좋아하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찾아 이렇게 글을쓰고 있다. 글쓰기처럼 무언가 꾸준히 하나이상 하면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앞으로 내가 현재를 후회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라 여긴다.


지금 주어진 내 상황과 역량으로 나뭇가지를 조금씩 뻗어가며 새로운 기회를 잡는 것. 이게 그때 아깝게 버렸던 갭이어를 조금이라도 보상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33살에 23살의 내가 다채로운 경험 속 아름다웠듯,

43살이 됐을 때 지금 33살이 아름답게 기억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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