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역경을 받아들이는 자세
그저께 오랜만에 헌혈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늘이 살에 찔리는 단 3초간의 고통만 참으면 나는 기부했다는 성취감도 얻고, 문화상품권도 얻고, 달콤한 이온음료도 얻는다. 단 헌혈을 아무도 하라고 강요한 적 없다. 내가 선택해서,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에 직접 헌혈의 집을 찾아간 것이다.
이처럼 살다 보니, 세상만사가 헌혈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무언가를 행함에 있어 여태껏 지나온 모든 것이 고통을 동반하고 있었다. 고통을 동반하지 않은 일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고 하지 않은 것. 내가 선택도 안 했고, 고통도 없이 조건 없이 주어진 것은 부모님의 사랑 이 하나뿐이었다.
단, 지나온 삶을 멀리서 바라볼 때 그 기억이 미화되어 좋은 감정, 좋은 사람들만 내게 남아있던 것이다.
‘아, 그래도 멕시코 그때는 참 좋았는데”
“미국에 있을 때는 진짜 여행도 많이 다녔는데”
“군대 병장 때는 아무 걱정이 없었는데"
“그때 그 여자친구, 사람은 참 좋았는데”
이런 맹목적인 후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결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안 좋은 순간도 좋은 순간에 준할 만큼 많이 있었으나 인생을 살아가며 이것이 점점 왜곡된 것이다. 멕시코가 진짜 좋았다면 나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멕시코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때 그 여자친구가 정말 좋았다면 그 여자친구와 결혼했겠지. 안 좋았던 이유가 훨씬 컸기에 나는 순간순간에 이런 선택들을 한 것이다. 당시 고통스러운 상황들이 분명 존재했고, 시간이 지나 좋은 기억만 가져가는 것이 인간의 뇌가 지닌 본능이다.
각자 저마다 느끼는 고통의 양과 정도의 차이일 뿐, 내가 했던 모든 경험에는 고통이 수반됐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같았다.
앞서 말한 ‘~했으면 좋았을 텐데’, ‘~였다면 어땠을까’라는 비생산적인 사고보다 어떻게 이를 더 긍정적인 상황으로 우리가 바꿀 수 있는지를 집중해 보면 그때가 삶을 바꾸는 가장 큰 전환점이 된다고 믿는다.
친한 형이 있다. 그 형은 회사가 참 고맙다고 했다. 일도 열심히 하고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형이었으나 동기들보다 승진이 조금 느려 거기에 큰 불만이 있었다. 직장인에게 꽃이 뭔가. 우리는 왜 직장을 다니나. 사실상,직장을 다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함이다. 직장을 다니며 돈을 더 벌기 위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승진이 안되는데 어쩌면 이는 가장 큰 문제라 볼 수 있다.
근데, 이 형이 하는 말은 오히려 회사가 고맙단다. 그 이유는 하나. 본인에게 더 큰 자극을 준다는 거다. 회사에 안주할 수도 있었는데 승진이 안됨으로써 ‘회사가 전부가 아니구나’하며 인생에서 더 큰 성장동력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이 형은 지금 본인이 원래 관심 있었던 중년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늘 연습하고, 배우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본인을 계발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녀에게 물려줄 본인사업 농작물에 대해 퇴근 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안일했던 본인에게 회사가 자극을 줌으로써 삶을 바꾸는 큰 전환점이 된 것이다.
멍하니 누가 불러도 들리지도 않고 정신이 반쯤 나간 시절이 있었다. 바로 작년이다. 관계에서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집에 오면 늘 이런 상태가 지속됐다. 이 느낌은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처음 들은 순간 이후로 두 번째 겪는 경험이었다.
근 한 달 동안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내게 스트레스를주는 그 사람을 욕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사람에겐 내가 오히려 문제가 있어 보이니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 테다. 문제의 원인을 떠나 지금 내가 안고 있는 불면증,극심한 스트레스가 정신을 나가게 만든 건 분명했다.
그때부터 삶의 탈출구를 찾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건 온전히 내가 자처해서 한 일이었고, 스트레스가 조금씩 줄어들더니 하나의 습관이 되며 삶을 송두리째바꿔놓았다.
이처럼, 우리는 고통 뒤에 늘 보상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으나 그 고통에서 무엇을 느꼈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완전히 바꾸지는 못할지언정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끎은 확실하다. 모두가 그 고통 속에서 변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행동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그 고통을 얼마나 뼈저리게 느꼈는 지다.
헌혈에 빗댄 아주 작은 아픔은 실제로 누군가에게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의 고통을 상기시킬 수 있기에 맹목적으로 이겨내라는 말은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 고통을 어떻게 삶의 동기부여로 치환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얼마나 그 늪에서 하루라도 더 일찍 빠져나올 수 있냐, 그 차이임은 확신한다. 빠져나오는 시동을 걸 때 우리에게 기회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