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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Feb 05. 2024

그냥 좋아하기만 해라

인생의 길을 찾고 있는 그대에게

친한 형이 있다. 이 형은 내년에 나이가 40인데 인도네시아 주재원을 다녀왔다. 2년 만에 한국 온 김에 커피 한잔을 하며 그의 30대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었다.

형은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돈도 많이 벌고 워낙 똑똑해서 커리어는 커리어대로 다 이룬 형이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보였다. 근데 내게 갑자기 이런 말을 하더라.

“내가 만약 너 나이 32살~33살로 돌아간다면 당장 퇴사하고 호주에서 일했을 것 같아”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본인 인생을 돌아볼 때 가장  좋은 경험이었다고 돈보다 내 인생에 집중하며 살아갈 것이라 했다. 맨 처음에 이 말을 듣고,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에이, 지금 이룰 거 다 이뤘으니 지금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거겠지’

맞다. 모든 걸 가질 수 없다.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시간은 유한하고 선택과 집중을 안 하면 인생사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 일이 숱하다. 형도 하나를 이뤘으니 못 이뤘던 것에 대한 미련이 보이는 것이다. 둘 다 이루지 못했다면 그럴 여유도 없이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허덕였을 것이다.  

생각해 보자. 내가 장사를 하고 싶은데 대기업도 들어가고 싶고, 이러면 둘 중 다 이룬다 하더라도 시간 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내 주변에 대기업을 주중에 다니며 주말에 사업준비를 하는 동생도 있지만 이조차도 엄청난 시간투자와 고민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일이다. 조력자도 물론 필요할 거고.

저 형도 결혼과 호주살이 대신 한국에서의 커리어를 선택했고, 지금 최상의 커리어와 보상을 얻었지만 이루지 못한 것의 아쉬움이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난 그 이루지 못한 아쉬움에 대한 조언을 들은 거고.


20대~30대는 잃을 게 없으니 수많은 경험을 하고 실패해 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실패해서 배울 건 물론 있을지언정, 실패를 애초에 안 하게 만들 수도 있다. 바로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정하는 것이다. 무작정 지금 가진 것을 내려놓고 무언가를 돌연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리스크와 기회비용을 철저히 따져서 움직여야 한다. 늘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내 채널의 모토를 이루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선택보다는 가진 것에서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윤곽이 보일 때 차선책을 고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즉, 사람들의 조언은 조언일 뿐 참고만 하고 모든 결정은 나로서 주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 형처럼 내가 39살이 되었을 때 지금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깊이 생각해 본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행복한 인생은 내가 마음속 깊이 끌어올라 미치도록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당장 돈을 못 벌더라도 진짜 내가 이걸 너무 좋아해 만나는 사람 족족 모두에게 이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면 꼭 그 일을 해야 한다. 그 일을 하면 그 사람은 기필코 행복할것이다. 그래서 부모들이 자녀를 기르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루빨리 찾게 해 주기 위해 여러 학원도 보내보고, 다양한 활동도 함께 해 보는 것이다.

어른이라는 궤적을 삶에 두고, 이젠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주말 동안 산책하며 시간을 가져본다. 폰도 집에 둔다. 돈과 상관없이 큰 보상이 없어도 그냥 그 자체로 행복했던 것이 내겐 과연 무엇이었나. 어디에 조금이라도 이끌리며 살았나. 그것조차 없다면 나는 시장바닥에 놓인 굴비나, 백화점에 디스플레이된 상품보다도 못한 것이다. 그것도 다 동선이나 고민 끝에 자리에 놓인 건데, 나 또한 어딘가 분명 한쪽으로 이끌리며 지금까지 달려왔을 것이다.


바로 책과 글쓰기였다. 내가 했던 모든 행동들은 늘 글과 결부되어 있었다. 논문공모전, 백일장, 미국 정부인턴 교육부장관상, 입사지원서 등 모두 글로 써서 제출해 낸 것들에서 좋은 성과가 났다.

영화나 책을 봤으면 늘 소감을 기록했다. 단 한 줄이라도 어딘가에 남겼다. sns나 인스타그램도 남들은 그냥업로드를 할 때 늘 더 좋은 문장, 더 나은 글을 고민했다. 물론 그것이 설령  타인에게 허세를 부리는 sns의 역기능이었을지라도, 치열하게 글을 고민한 것은 맞으니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이 사소한 습관에서도 내가 글을 좋아하는 것이 드러난다.

가장 확실한 것은 우리 집이 어릴 적 이사를 하면서 잠깐 내가 안방을 쓴 적이 있다. 책꽂이가 워낙 커서 둘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책을 많이 읽진 않았으면서도 내 방에 책이 가득 있다는 자체에 충만함과 풍족함을 느꼈다. 책과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 자체가 좋았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당시 읽지도 않은 책을 모으기만 해서 뭐 하냐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동 아니냐고. 맞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있었기 때문에,책을 자연스레 더 가까이할 수 있었고 지금 이렇게 다독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과정이 밑거름이 되어주었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 하나라도 찾은 것이 큰 축복이고,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좋아하는 것 하나만 있으면 길을 뻗어나가는 데에는 많은 가지를 칠 수 있다. 가령 글 하나로 예를 들어보자. 글 쓰는 것을 진짜 미치도록 좋아한다면 잠시 했던 자기소개서 첨삭처럼 에디터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마음의 울림을 주는 문장을 만드는 카피라이터를 할 수도 있고, 영화와 글이 합쳐져 영화평론을 할 수도 있고, 여행을 좋아하면 여행작가를 할 수도 있다. 좋아하는 것 하나를 찾으면 인생의 길은 무한대로 뻗어간다.

단, 전제가 있다. 내가 그 일을 정말 미치도록 좋아하는지 스스로에게 냉정하게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색깔이 분명 어디서나 존재하고, 이 색깔은 남들은 가지지 않은 것이다. 나만의 색깔은 또 다른  도전과 경험 속에서 언젠가는 칠해진다.

내 색깔이 무언가를 쓰고 기록하는 것이라면, 이것을 진짜 좋아해서 미쳐있다면 이걸 해야 한다. 내가 생각했을 때 여기에 미쳐있는 것이 아니라면, 삶에서 진짜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것(직장, 돈벌이)을 정년퇴직까지 해야겠지.


그래서 조금이라도 해야 하는 것을 줄여가기 위해서라도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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