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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Feb 14. 2024

MBTI와 글쓰기의 상관성

외향인과 내향인의 글쓰기에 대하여

MBTI가 그야말로 대세다. 소개팅이나 처음 누군가를 만날 때 늘 MBTI를 물었던 것 같다. 단순히 침묵을 깨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어떤 성향인지 대략 알아야 그에 맞는 질문과 리액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소심하고 내향적인 성격인데 과한 리액션을 한다면 부담스러워할 것이고, 외향적이고 활발한 이에게과묵한 태도는 무관심으로 오해를 살 수 있는 격이니 더 그렇다. MZ세대에게 MBTI는 새로운 누군가를 알아갈 때 필수요소로 자리 잡았다.

내 MBTI가 바뀌었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다른 건 다 같은데 E에서 I로 바뀌었다. 정확히는 I가 60% 정도, E가 40%이다. 삼십몇년을 E가 90%에 가깝게 외향적으로 살아왔는데 놀라운 변화다. 그 누구도, 어떤 환경도 내 성격을 바꾸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바뀔 수 있었던 계기가 뭘까. 바로 결혼과 글쓰기였다.

먼저 결혼을 하기 전 청첩장모임을 하면서 공허함이 많이 들었다. 그 어떤 관계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이 공허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결혼식을 끝마치고는 이는 절정에 다달았다. 특히 친구들이 많았던 만큼 그만큼 많이 잃었다. 친하다고 생각한 관계는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고 그만큼 상처도 심했다. 그때부터 예전만큼 관계에서의 행복을 느끼지 못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MBTI는 우열이 없다. 좋고 나쁨 없이, 각자의 개성과 취향일 뿐이다. 외향인으로서의 장점도 있고, 내향인으로서의 장점도 있다. 그것은 글쓰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글쓰기도 내향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글쓰기에도 외향인과 내향인이 나뉜다. 외향인의 글쓰기란 어떤 걸까. 단어만 들어도 매력적이다. 외향적인데 글로도 자기를 표현할 수 있다니.

보통 외향인은 주체가 ‘세상’이다. 세상에 관한 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이 세상은 문화, 경제, 정치, 평론, 사회문제 등 모든 걸 포함한다. 불특정 다수의 많은 사람이 그 이야기를 볼 수 있도록 여러 플랫폼을 이용하고, 누군가 본인의 글을 읽고 반응을 남기는 것에 대해 쾌락을 느낀다. 가령, 내가 ‘명절’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하자. 그들은 명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명절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명절은 앞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한다. 제사는 앞으로 없어져야 한다거나, 반대로 세상이 바뀌어도 제사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자기주장을 펼친다. 철저히 세상이 주체가 되어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외향적인 이들이 쓰는 글은 삶을 바라보는 본인만의 혜안을 기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나로 비롯된 것이 아닌 게 대다수다. 환율이나, 주식이나, 정치, 경제 모든 게 그렇다. 따라서 이들은 어떻게 보면 바라보는 시각 자체는 거시적이나, 알맹이가 없을 수 있다. 나와 세상을 연결시키지 않고, 자아성찰이 철저히 결여된 상태에서 세상에 대한 관점만 드러 내기 때문이다. 간혹 앞뒤가 안 맞는 말이 있을 수도 있고, 겉도는 느낌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반대로 내향인들의 글쓰기는 '본인'에 집중되어 있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에 집중한다. 숲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니라 보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겠다. 이들은 철저히 ‘본인’ 위주로 세상이 돌아간다. 전형적인 미시적인 관점이다. 깊은 사색과 사유, 자아성찰로 본인만의 개성 있는 에세이와 같은 글을 만들어낸다. 나만이 가진 독창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교훈을 얻고  삶을 대하는 본인만의 태도를 기른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표현을 창조하고, 같은 주제라도 본인만의 울림을 주어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는 나만의 세계에 고립됨으로써 다소 맹목적이고 편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자기 위로, 자기 연민이 강해지면 이는 자의식과잉으로 글에 투영된다. 쉽게 말하면 나를 너무 생각한 나머지, 타인과 세상을 보지 못하는 거다. 가령,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었다 치자. 본인이 영어를 너무 잘한다고 자의식 과잉이 생겨 외국인과의 대화에서도, 영어시간에서도 절대 영어를 쓰지 않는 것과 같다. 내 완벽한 영어가 완벽해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 그걸 지키려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자기 검열이다. 자아성찰에 너무 심취된 나머지 스스로를 검열하며 본인만의 무기를 잃어가는 경우가 생긴다. 자기 검열 없이 권력과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점점 부족해진다.


결국 이 둘은 같이 가야 한다.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좋은 글이 나오기 힘들다. 각자가 가진 직업이나 성향에 맞는 글도 분명 있다. 예를 들어 명백한 사실을 대중에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가 자아성찰과 자기 검열에 빠져 사실을 왜곡한다면 어떻게 될까? 반대로, 글쓴이의 주장과 비판이 들어가야 하는 영화평론이나, 신문 논평에서 세상에 대한 사실만 전달하면 어떻게 될까? 그야말로 글의 논지를 흐리고 매력 없는 글이 된다. 결국은 외향적, 내향적 글쓰기가 함께 가야 나만의 시각으로 세상과 연결된 글을 쓸 수 있다.

근데 이 둘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능에 나와 웃고 떠들다가도 정치, 경제, 영화를 평론하며, 언론, 정치사회를 분석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미래를 앞서가는 언어술사라고 생각한다. 이런 언어술사의 모습 저편에는 본인의 노력도 물론 있었겠지만 대개 이 사람들은 애초에 타고난 말재간이 있다. 이들은 말이나 글에 있어  앞뒤 안 맞는 말 했을 때라던가 실수를 범할 때에도 비난전 빠른 사과를 하며 네티즌들에 맞서는 임기응변도 있다. 거대담론을 펼치며 100분 토론에 나가 정치와 경제를 비판하면서 내 성찰도 하고. 말만 들어도 어렵다. 이들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종류의 글은 조금씩 연습하면 그뿐이다.

우리는 먼저 이 둘을 한 글에 드러나도록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받아들이고, 자기감정에 솔직해야 한다. 저 사람들이 실수를 했을 때 사과를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자기감정에 솔직하기 때문에 그렇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나 또한 MBTI가 달라진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게 더 큰 장점이 생겼다고 여긴다. 각자의 성격이 가진 장점을 활용해 나만의 방식대로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더 큰 용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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