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친구 가려내는 법
우리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친구와 어울린다. 그 친구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공통분모를 잃어가 사라지기도 하고 같은 경험, 공간에서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친구에게 환희를 얻고, 때로는 슬픔을 느끼며 그렇게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친구란 인생에서꽤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영원할 것 같던 친구는 한번 크게 정리가 되는 순간이 오는데 계기는 각자 다르다. 보통은 30대를 넘어가거나 결혼 및 출산을 하거나 인생에 특정 이벤트가 있을 때다. 특히 이성 간 친구는 동성보다 더 쉽게 사라지는데 서로 남자친구나 여자친구가 있거나 결혼을 하면 선뜻 연락하기가 조심스러워지니 어쩔 수 없다.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친구가 사라진다보다는 잃는다는표현이 맞겠다.
나도 결혼을 하며 그간 많았던 친구를 잃고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 남은 친구들은 그럼 어떻게 내 곁에 남을 수 있었던 거냐고. 진짜 친구의 정의는 무엇이냐고. 친구에 관한 통상적인 오해를 좀 풀어보겠다.
먼저, 진정한 친구란 내가 좋은 일이 있을 때 진정으로 내 일처럼 축하해 주고, 나 또한 그들의 삶에 기쁨을 주고 싶은 상호작용 가능한 관계라 생각한다. 내 주변 인생선배나 어른들은 늘,
“결혼식보단 장례식은 꼭 가라. 기쁜 일은 나 말고도 축하해 줄 사람이 많지만, 장례식에서는 함께 하면서 슬픔을 나누는 것이 좋다” 고 말한다. 그러고는 기쁠 때보다 힘들 때 곁에 있어주는 게 최고라고 덧붙인다.
근데 난 완전 반대다. 내 기쁜 일에 진심 어린 축하를 해주는 사람이 진짜 친구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남들 안 되는 이야기는 그토록 관심을 가지며 본인을 위로삼고, 잘 된 이야기는 배경 탓, 운탓을 하며 어떻게든 이유를 갖다 붙여 사실을 부정하고 깎아내린다. 이는 인간의 본능이다. 어쩔 수 없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아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처럼 친구의 기쁜 일이 진짜 내 일처럼 기뻐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건 정말 힘들고 값진 일이다. 슬픈 일은 영혼 없이 사실 ‘걱정 마’, ‘잘 될 거야’, ‘힘내, 괜찮아’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힘이 안 나는 애를 앞에 두고 힘을 내라고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 그게 우리는 타인을 위로하는 법이라 배웠기 때문이다. 근데 터놓고 말해보자. 내가 실제로 경험한 거다. 진짜 죽을 만큼 힘들 때 날 위로해 준 타인을 바라볼 때면 고난의 구경꾼으로 비치거나, 이제 나한테 더 이상 얻어먹을 게 없다고 떠날 것처럼 비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은 지금 다 나를 떠났다.
단지 그 위로 속에서 티를 안 낼 뿐 눈에 다 보였다. 상황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다. 내가 잘되면 알아서 사람이 모이고, 안 좋은 상황일 때에는 콩고물도 안 떨어질 테니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떠난다. 떠나는 상황은 논외로 하고 내가 잘 됐을 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중 거기서 우리는 진짜 친구를 가려내야 한다.
다음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친구는 필요할 때 찾는 것이다.
“너는 어떻게 필요할 때만 연락하냐? 네가 친구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응, 필요할 때 찾는 게 친구야”
내가 도움 주고, 도움받는 관계가 친구 아닌가? 요즘같이 다들 바쁜 현대사회에 맨날 안부를 물으며 뭐하는지 살필 필요가 없다. 애초에 목적을 가지고 상호간 바라는 건 없어야 하나, 내가 필요할 때 생각나 도움을 청하고 반대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 서로 어떻게든 도와주고 내편이라는 생각이 곧 믿음이고 우정이고 친구 아닐까.
진짜 친구를 구분할 때 나의 기쁨을 함께 해주는 사람, 내가 이 사람을 진정으로 기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지, 그리고 필요할 때 생각나는지를 살펴야 한다. 나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생각나는 친구가 한두 명 있다면 그 사람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내가 타인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는 건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기에 관계의 폭을 대폭 줄여야 한다. 굳이 내가 기쁨을 전달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까지 굳이 호의적으로 대할 필요 없다. 그것이 결국 진짜 남는 것이다. 친구는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