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그리 Mar 05. 2024

내가 다큐멘터리를 보는 이유

우리 곁의 진짜 삶에 대하여

오랜만에 가족끼리 밥을 먹으며 엄마가 말한다. 인생을 살아보니 풀릴 일은 어떻게든 풀리고, 안 되는 일은 때려 죽어도 안된다고. 열심히 살지 말고 흐르듯이 살아라고. 건강만 생각 하며 그냥 되는대로 살아라는 거다.

맞는 말이다. 삼십몇년 고작 살았지만 죽도록 하고 싶었던 건 끝에서 늘 무너졌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좋은 결과가 났다. 지금의 내가 하는 일, 사는 곳, 같이 있는 사람 모두 그랬다. 악착같이 ‘이거 아니면 안돼, 난 끝났어’라고 발버둥 치며 붙잡았던 것들은 지금 끝내 내 옆에 없지만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너무 잘 살고 있다. 최근에 눈수술을 하며 더 느꼈다. 심각한 게 아닌 작은 레이저 수술이라 할지라도 아프지도 않고 당연히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삐걱대니 삶이 다부질없게 느껴졌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게 끝인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무엇을 위해 나는 이렇게 달려가고 있는 걸까?

정답은 그냥 흐르는 대로 살면 된다.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벌고자, 유명해지고자 안달 날 필요도 없다. 그럴수록 내 돈과 주위사람만 떠나가는 법이다. 기회는 어떻게든 온다. 대기업 사장도,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그 영예로운 자리까지 끝내 올라가 후광이 비치고 멋진 모습만 우리에게 보여주지만 뒤편 그림자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혐오하고, 싫어했겠는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부와 명예를 가진 이들이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 중, 자산을 물려받은 이들을 제외하고 주변인들에게 모두 사랑받으며 그 자리까지 간 사람은 단언컨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는  어제 아침 엄마가 해준 이 조언의 정답을 알고 있다. 무엇인가 하되 너무 죽어라 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 꾸준히 하는 거다. 단, 내가 좋아하는 것만. 그 좋아하는 것에서 돈이 안 나온다면 싫어하는 일을 하루 중 일부는 하면서 생계는 유지해야 한다. 어느 정도 자기 객관화는 필요하다는 거다. 본인이 능력이 안되는데 돈은 안 벌고 집에서 놀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삶에서 가장 파렴치한 사람이 남에게 피해 주는 사람이다. 자립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삶은 존재 자체가 고통이다. 어찌 됐든 마음의 여유를 갖고 무언가 도전해 보는 건 삶을 바꾸는 1% 일말의 가능성을 안고 사는 것이기에 큰 의미가 있다. 마치 지갑 속에 로또처럼.

최근에 영화 <파묘>를 봤다. 김고은의 연기가 참 인상 깊었는데 영화계에서 사실 김고은은 국밥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하는 것마다 말아먹는다고. 근데 본인만의 스타일로 꾸준히 해 나가 지금 빛을 보듯, 무언가 짜내서 성공신화를 이루는 것보다 평범한 삶에서 조금씩 결실은 맺는 삶이 요즘 나는 더 끌린다.


그래서 나는 다큐멘터리를 본다. 택배 상하차 72시간의 삶, 험난한 취업분투기, 새내기 대학생활, 고시원의 3일, 자식 먹여 살리느라 새벽부터 나가시는 대한민국가장의 하루•••. 이런 소시민의 삶이 극적인 성공신화보다 더 큰 감동과 공감을 준다. 그 삶 안에서도 분명 행복이 상존하듯, 힘든 하루 속에서 그들만의 값진 세계를 만들어가는 데 나는 더 큰 위로를 받고 있다.

모든 건 다 마음가짐이다. 어떤 삶을 살든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삶을 대하고 만들어가냐가 진짜 삶의 행복을 결정한다.



작가의 이전글 KTX 특실은 누가 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