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십 년 만에 교수님을 만났다. 열심히 학점관리를 하고, 취업준비를 하던 시절 잘 챙겨주셨던 교수님이셨기에 반가웠고 한편으로는 또 죄송했다.
교수님께 오랜만에 인사를 하니, 나를 보고 가장 먼저 말씀하시던 것은 올해 몇 살 인지도, 어디 사는지도, 결혼 유무나, 외적으로 어떻게 바뀌었냐도 아니었다.
“열심히 준비하더니 지금은 좋은 데 이직도 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들었어, 너무 축하해 “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기업에 있는지가 교수님에게는 1순위로 중요했다. 학생들의 취업이 학교에게도 영향을 주고, 취업준비시절을 옆에서 보신 교수님이시기에 당연 그럴 수 있다. 내가 원했던 분야의 일을 하고있어 응원차원에서 해준 말일테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 바로 이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교수님 뿐만 아니라 주변에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나거나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 들을 때 우리는 가장 먼저 이런 말을 한다.
“너는 (걔는) 요즘 뭐 해?”
여기서 말하는 뭐 하냐는 뜻은 ‘어디서 어떤 직업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냐’를 말한다. 자영업이라면 매출, 어떤 조직에 속해있다면 그 집단이 주는 레벨이 그걸 증명한다. 사실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날 때 이 말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기도 하다.
현대사회에는 이처럼 관계에 있어 직업으로 본인을 소개하곤 하는데, 그게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지표가 된다. 그 지표대로 줄 세우기를 해 그들의 인생 전체를 한순간에 잔인하게 재단한다. 그리고 그것이 타인과 비교해서 어떤지 스스로 차별성과 우위를 찾는다. 알맹이가 설령 없을지언정 그 껍데기가 평판이나 인지도 등 상대방과 관계를 쌓는 부분에서 많은 것을 결정한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 X를 인수한 일론머스크, SNS 최다 가입자수 인스타그램 창업자 마이크 크리거는 이런 사람의 비교심리를 가장효과적으로 이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사회는 스스로 드러낼 수 있는 무언가가 없는 사람이라면 사람이 모이는 행사에 가지도 못하고 관계를 쌓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내가 교수님을 우연히 만난 것처럼 본인의 안부를 묻는 지인을 만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왜 취업준비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공부한다는 명목아래 자취를 감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내 고향인 울산은 제조업 도시다.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산업으로 산업클러스터를 형성해 발전을 거듭했다. 이처럼 대기업이 많아 밑의 표와 같이 연봉 수준이 타도시대비 월등히 높다. 그래서 출산율도 높고, 맞벌이를 하지 않는 가구 비율도 전국에서 가장 높다.
울산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내 친구는 평일 오후에는 손님이 가정주부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지역보다 일이 적어 울산 스타벅스가 인기가 많단다.
즉, 울산은 한 가정에 남자 혼자 일해도 4인가족기준 충분히 먹고살 수 있고 집값도 저렴해 살아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전부 대기업을 다니니 그렇다. 그래서 다들 안정된 복지와 생활환경이 보장되는 대기업을 선호한다.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아저씨들은 퇴근길에 술 한잔을하러 식당에 가거나, 술집을 가도 절! 대! 현대자동차 마크가 새겨진 근무복을 벗지 않는다. 그만큼 나는 ‘현대자동차 직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서다. 직원입장에서도 자랑스러워 좋고, 회사입장에서도 충성심 높은직원들이 많아 인력관리 측면에서도 매우 효율적이다.본인이 속한 집단과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전형적인 예시다. 결국 이들은 기호와 취향이 묵살된 채 경제적 안정을 택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울산시민들은 상대적박탈감에 허덕이고. 이는 고도의 산업성장을 이룬 대기업 재벌가에서 나온 기형적 산업구조가 원인이다. 대기업의 하청, 그 하청의 하청처럼 피라미드식 기형적 기업구조는 대기업 중소 간의 임금격차, 비교문화, 피해의식, 삶의 양극화라는 비극적인 모순을 낳았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 2030은 직업선택에 있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오늘 만난 교수님을 처음 뵌 지가 벌써 13년이 흘렀다. 체감상 3년 전 같다. 시간은 이렇게나 빠르고 우리는 늙어간다. 오늘이 내가 살아가는 날들 중, 가장 젊은 날이다. 이 유한한 삶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으니, 결국 내 삶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하는 건 경험이다.이 경험에 기반해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이걸 지난날을 이미 경험한 어른들은 알고 있다. 현대자동차 근무복을 벗지 않는 이 아저씨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20대 자녀분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키려고 큰돈 들여 어학연수를 보내주고, 여행을 보내고, 학원을 보내주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신다. 근데 결국 이 자녀가 취업할 때가 되어 대기업에 들어가면 당사자보다 좋아하시고,자식자랑에 정신이 없다. 과정과 결과, 이상과 현실의 미스매치.
경험은 가지처럼 뻗어 또 다른 경험을 낳는다. 그것이 작은 성취라도 성취 경험이라면 성공은 두 배, 세배가 된다. 다채롭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한 곳에서 일해서 정년퇴직하는 직장인이 아니라 계속 다양한 걸 시도해봐야 한다는 거다. 한 곳에서 일한 희생, 꾸준함, 성실한 부모의 삶은 이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런데 MBTI로도 성향이 나뉘듯, 직업을 대하는 데 있어 가치관도 다르다. 무언가를 창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일을 하는 사람은 이런 변화에 있어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정해진 일을 반복적으로 하고, 그것을 막힘이나 실수 없이 마무리하는 데 적성에 맞는 사람이 있다. 대신 이 사람들에게는 꼭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 있다. 늘 왜?라는 의심을 품어야 한다.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 일인지, 왜 내일까지 마무리를 해야 하는지, 이 일을 함으로써 어떤 누구에게 이로움을 주는지를 생각한다면 또 다른 경험과 연결고리가생길 것이다.
우리 주변의 삶은 대개 다 비슷비슷하다. 특히 직장인은 어느 정도 소득의 차이는 있겠지만 삶 전체적인 면에서 큰 차이 나지 않는다. 주말에 하는 취미, 자동차, 아파트 전반적인 생활수준 등에서 말이다.
지금이 조선시대나 원시시대도 아니고 중소기업 직장인이나, 대기업 직장인이나, 백수나, 먹고사는 문제는 누구나 다 해결된다. 연봉이 1억 인 직장인은 월 세후 650만 원 정도를 받는데, 9천만 원이나 8천만 원이나결론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타인에게 혹은 한 집단안에서 인정받는 게 아니라 나에게 나를 증명해가야 한다. 그 증명의 재료는 내가 겪은 경험에서 나온다. 경험은 곧 앎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 세상모든 부자들, 이름을 알린 스포츠선수나 연예인 유명인들은 결국 다 무언가 나만의 것을 만든 사람들이다.
이처럼 경험을 재료로 사유하면서 나만의 답을 만들어가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결국 나만의 답은 양적으로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한다.
현재의 연봉 1억을 받는 사람들은 지나온 경험이 그 1억을 만든 것이고, 더 많은 경험과 사유가 2억, 3억 자본주의에서 내 몸값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