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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May 13. 2024

주말에 N잡하는 대기업 동생

돈 앞에서 삶의 방향성에 대하여

오랜만에 대학교 동창 모임이 있었다. 그중 한 동생이 내 친구보고,

"누나는 주말에 보통 뭐해요?"

라고 묻는다. 그 동생은 대기업을 다니면서 최근 배달 삼겹집을 차렸다. 오픈 기념 축하를 위해 모인 자리였다.

"책도 읽고, 친구랑 클럽도 가고, 카페도 가고 하지? 약속이 없을 때는 보통 집정리?"

내 친구는 답한다. 이 동생은 내 친구의 삶을 온전히 존중하면서도 본인은 퇴근하고 쉬는 게 생산성이 없다고 느낀다고 한다. 그냥 무료하게 토, 일 쉬고 다음 날 또 출근하고, 이 삶의 패턴의 반복이 의미 없게 느낀단다. 그래서 배달삼겹집을 차렸고, 돈이나 더 벌겠다는 주의다. 타코도 해보고 싶고, 배달 집도 해보고 싶고, 늘 회사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도전해보고 싶어 하던 친구였다. 그와 같이 동업하는 파트너도 물어보니 나랑 동갑인데 할 수 있는 만큼 벌어보고 싶어 결혼자금을 위해 이 길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무언가를 실행에 옮긴 이 친구가 대단하다고 느낀 동시에, 돈이라는 게 우리 삶 속에서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늪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대기업에 다녀도 근로소득이 자산가격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금, 무언가를 더 하지 않으면 집이나 노후, 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자체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래서 직장을 다녀도 부업을 하는 사람비율이 치솟고 있는 이유다.

단순히 비정상적인 사회라고 현대사회에 날 선 잣대를들이대기보다, 이런 바뀌지 않을 시류에서 서민들이 한번 올라탈 수 있는 기회라도 한번 주어질 수 있는 날이 오기 바랄 뿐이다.  

누구나 인생을 대하는 개인차가 있다. 누군가는 회사가 끝나고 내 시간을 꼭 가져야만이 삶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고, 어떻게든 시간을 잘게 쪼개어 이 동생처럼 돈을 벌어야만이 마음의 안정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는 돈은 좀 덜 벌 지언정 내 시간이 있고, 후자는 내 시간은 아예 없으나 돈을 더 벌 수 있다.

실제로 동생은 데이트를 할 시간도 없어 여자친구와 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정답은 없다.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삶을 만들어갈 뿐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 사회는 퇴보하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내가 말하는 퇴보는 근로소득으로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과거엔 그랬으니 미래에 다시 그렇게 된다고 가정하면 퇴보다. 이제는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니 눈 밝은 사람은 먼저 무언가에 뛰어드는 것이다. 슬프고, 현실적이고, 우리 모두에게 무언가 다짐하게 만든다.

근데 우리가 여기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아, 나도 뭘 하나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다.

옛 속담에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라는 속담이 있다. 뱁새는 발 길이가 13cm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황새는 몸집이 100cm 이상이고, 다리도 뱁새보다 훨씬 길다. 그러니, 스펙이 딸리는 뱁새가 황새를 억지로 따라가면 당연히 가랑이가 찢어질 수밖에. 근데 이 비교가 현실상에서 다른 점은 우리는 각자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 높낮이가 아니라, 각자의 경험치가 달라 타고난 능력과 취향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남들 한다고 나도 억지로 조급해져서 똑같이 시도해 보고, 온전히 '경험의 양'을 맹목적으로 갈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험의 양도 나한테 맞는 경험의 양을 늘려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인생에 득이 된다. 가령, 미래에 회계사를 하고 싶은 한 청년이 해외로 나가 경험을 쌓겠다고 외국어를 배우는 데에만 집중한다면 그게 목표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나한테 조금 더 맞는 방법이 뭔지 알기 위해서 우리는 책을 읽는 거고, 교육을 듣고, 어릴 적부터 매일 학교에가는 거다. 우리가 유튜버 크리에이터, 베스트셀러 작가, 영화감독, 래퍼, 아티스트, 예술가들을 왜 동경하고멋있어하는가. 세상에 없는 걸 나만의 방법을 찾아 만들어가서 그렇다.


달리기를 할 때 앞을 보고 가야 하는데 옆에 누가 나보다 앞서가고 있나, 뒤쳐지고 있나, 지금 몇 등 하고 있나 곁눈질하는 것. 이것만 안 하면 된다. 물론 그 달리기를 할 때 옆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지만 그 유혹에서 이겨내야 한다. 심지어 전혀 그럴 이유마저 없다. 사회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답을 정해준다면 그것만 보고 계속 달려가면 되지만 각자의 골인지점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옆을 볼 이유가 없다.

그럼 나만의 달리기에만 집중한다고 내가 바라는 인생을 온전히 살 수 있나? 그것도 아니다. 나만의 긴 달리기에서도 달리면서 생긴 힘듦을 물 한 모금의 달콤함으로 대신할 만족감도 가끔씩 존재해야 하는데 물 한 모금 없이 목에서 피맛이 날 정도로 더 깊은 갈증만 존재하는 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그렇다고 또 달리기를 멈출 순 없다. 적어도 내가 내 돈 벌어 남에게 피해를 안 끼치고, 죽기 전 사회에 일말의 가치를 남기고 가야 하니까.

이 끝나지 않는 달리기는 죽기 직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저 동생이 대기업 다니면서 배달삼겹을 해서 그것도 대박이 나서 극단적으로 예를 들어 1년에 1억을 벌었다 치자.

3년이면 3억이다. 이 현금 3억을 가진 애가 5억의 집을 대출받아 살까? 과연 성에 찰까? 당연히 6억, 7억이 보이겠지. 돈을 더 벌면 6억이 아니라 10억이 보일 거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본인이 살고자 하는 집은 대출을 풀로 당겨서 더 높은 데 가 있다. 그렇게 잘 벌어도 5년, 10년 더 그 괴로운 달리기를 하면서 또 벌어야 한다. 벌어도 벌어도 지금 당장 들어갈 수도 없는 집. 항상 그림의 떡이다. 콘크리트에 미친 나라다. 어차피 부동산가격을 못 따라간다.

나는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인생이란,  ‘50살 전에 대출 없는 내 집 한 채, 월 300만 원 이상이 들어오는 플로우를 만드는 게임’이라고. 근데 이 말에도 모순이 있는 게 굳이 내 집마련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나, 월 300이 아닌 150에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사람이라면?

저 정답은 저 글을 쓴 저분의 달리기일 뿐이다.


아무리 처절히 고민해 보고,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치열하게 살아도 보고, 해봤자 결국은 정답은 하나뿐이다. 줏대 있게 차근차근 늘리고 지켜가는 방법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상이 굴러가는 플로우를 보면 그렇다. 그것이 내 경험이든, 내 자산이든, 내 지식이든, 내 주변 가치 있는 모든 것들.

특히 앞서 언급한 경험과 자산, 지식은 시간이 가면서 복리로 누적된다. 자산은 당연하고, 지식과 경험은 내가 얻은 직접경험(지식)과 간접경험(지식)이 쌓여 우리 뇌에 새로운 신경 연결이 이루어져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이 형상을 계속 키우고 발전시킬 수 있다.


집값이 곧 오르니까 사야 한다는 둥, 집값은 언젠가 내릴거라는둥, 주식을 해야 한다는 둥, 예적금이 진리라는 둥, 미래는 아무도 안 살아봐서 결국은 아무도 모른다. 머리 좋고, 조금이라도 더 배운 사람들 시장전문가들도 예측만 할 뿐이다. 흘러가는 플로우에서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고 나만의 방법을 정해 꾸준히 늘려가는 방법밖에 없다. 돈을 하루빨리 벌 수 있는 방법보다 각자만의 그 방법을 서로 공유해서 인사이트를 늘려가는 데 우리 사회는 더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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