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면성에 대하여
모든 사람과 상황은 양면적이다. 현실과 상황에 불만족하면서도, 결국 그 상황은 과거의 내가 만든 것이며, 긍정 또는 불행의 결과를 함께 품는다. 사실 모두가 긍정의 결과에 집착하나, 결국 우리의 뇌를 죄지우지하는 건 내 존재의 여부다. 와닿지 않는다면 이 글을 쓰는 내 자신의 예를 직접 들겠다.
나는 22년 사내연애로 결혼했다. 27살 나이, 18년에 그 회사를 선택해서 3년간 다니며 그녀를 만났다. 우왕좌왕 대충 살았다면 그녀는 지금 내 옆에 존재했을까? 아마 다른 남자랑 결혼을 했겠지. 아니, 내 가족이 애초에 없었겠지. 자녀가 생긴다면 이 논리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진다.
예전에 회사에 친한 과장님께 과거로 돌아가고 싶냐고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는 아니라고 단번에 얘기했는데 그 이유는 지금 돈도 잘 벌고, 생활이 너무 만족스러워서가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면 지금 본인의 아들을 만나지 못했을 거라는데서 그 대답이 나온 거다.
내가 이런 경험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어제 업무상 경기대학교 경영대학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취업을 앞둔 이들이라 대학생활의 즐거움은 둘째 치더라도 지금 나의 안정적인 모습을 굉장히 부러워했다. 그들의 다른 점이 보였다. 사실 나는 고3 때 경기대학교 경영학과의 논술시험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당시 기억으로는 자신 있게 문항을 써 내려가 당연히 붙는다고만 생각했는데 낙방했다. 상실감이 너무 컸지만, 그때 떨어졌기 때문에 나는 집 앞 대학교를 가 멕시코도 갈 수 있었고, 미국도 갈 수 있었고, 지방대 가산점을 받아 취업에도 유리했으며 생각하지 않았던 만족스러운 지금의 삶을 누린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걸 이룬 아이들이 날 부러워하다니.
인생에는 운이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운은 둘째 치더라도 사실 지금 내 모든 상황은 과거로부터의 선택에서 기반된 거다. 그 선택에서 어떤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가는지는 결국 본인 몫. 어쩌면 우리가 매 순간 공부를 하고, 더 많은 정보를 찾아다니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으라고 하는 이유는 순간순간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고자 하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현재의 불만족과 불만을 늘 후회로 돌린다. 내 잘못이 아닌 다른 외적변수에 책임을 전가한다. 그리고는 다시는 이루어질 일 없으며, 실현 불가능한 만약이라는 가정을 들어 잠시 행복회로를 돌리곤 한다.
‘만약 내가 그때 이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지금쯤 내 옆에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차피 그때 그 말을 안 했어도 그녀는 당신을 떠났을 수도 있다. 다른 것 때문에 당신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오로지 그냥 본인의 착각 혹은 본인이 중심이 된 상상일 뿐이다.
주변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일제강점기가 만약 없었더라면 우리나라는 더 잘 살았을 텐데 ‘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만약 삼국통일을 했더라면 우리도 미국처럼 강대국이 됐을 텐데’
대답부터 말하자면 절대 아니다. 일제강점기가 있었기에 위인들이 있고, 위기를 딛고 우리나라가 한발 더 성장했다. 고구려가 통일했더라도 영토는 넓어졌을지 만무하나, 황무지로 쓸 땅이 없었거나 미국처럼 태평양을 건너야 했던 게 아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침략당해 대한민국은 역사 속에 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럼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겠지.
중요한 것은 어차피 오늘 2024년 5월 14일 나의 지금 모습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내게 주어진 과거의 상황에서의 최선이라는 것이다.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생기더라도 이를 어떻게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 생각하는지, 전화위복의 자세를 가지는지가 심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거로 돌아간다해봤자 잘될 리 없는 걸 대책 없이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격이다.
주변에 특히 어른들 중에 과거의 잘 나가던 시절을 안주삼아 반복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가 아닌 과거에 젖어 사는 사람들. 속수무책으로 그때가 아련한 사람들. 그럼 나는 항상 이렇게 얘기한다.
“아니, 과거에 안 잘 나가던 사람이 어딨어?"
최소한으로 10년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그 10년 동안 그래프가 일직선인 사람은 없다.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파고가 있기 마련이다. 잠깐 높았던 파고에 아련함을 느끼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어느 순간 한없이 낮아졌던 파고는 그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본인 탓이 절대 아니다. 높았던 낮았던 그건 전체 주기에서 볼 때 '그냥' 벌어진 것이며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 또한 그저 머릿속에 희미하게 아득한 형상으로만 간직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글로 기록된 30대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