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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May 20. 2024

2쇄를 찍고 알게 된 것

분명한 목적을 두고 산다는 것

작년 처음 출간한 책 <간단하게 더 단순하게>가 2쇄를 찍었다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대한민국 출판계 현실은 약 90% 이상이 1쇄를 소진하지 못하고 수명을 다한다. 24년 4월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일 년에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읽은 이가 43%밖에 안 된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일 년에 단 한 권이다. 아예 책을 손에 잡지 않는 사람이 57%라는거다. 이 와중에 2쇄를 찍었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일말의 작은 동기부여가 생긴다.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보통 1천만 원이 넘는돈이 든다. 제작비, 디자인 외주, 홍보비, 저자 인세 등 자비출판이 아닌 누군가에게 1천만 원 이상의 투자를 제안받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고 성과임에는 분명하다.

대부분의 브런치 작가의 가장 큰 목표는 출간이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이 세상에 나오는 것’ 그 성취감을 위해 누군가는 몇 백만 원 자비를 내서라도 책을 출간하고 이를 스펙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일 년에 딱 한번 있는 브런치의 가장 큰 프로젝트도 목적이 출판사를 연결해 책출간을 해주는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 브런치 검색만 해도 출간이라는 단어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겐 그 꿈을 이룬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서든 책을 내겠다고 글을 써온 것이 아니기에 성취감에 파묻혀있지도 않다. 심지어 나는 출판계가 어떻게 굴러가는 시스템인지도 아직 잘 모른다. 파주 출판단지에 커피 마시러 놀러만 한두 번 가봤지 아는 인맥도 한 명 없다. 글만 쓰는 사람이다. 고작 아는 거라고는 출판업은 면세고, 사람들이 워낙 책을 안 읽어 사양산업이라는 것 그뿐이다.

제작비, 원가를 철저히 고려해 부수입으로 한 건 해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 같은 건 애초에 없었고, 내겐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목적 자체가 없었다. 내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삶을 바꿀 수 있는 일말의 작은 희망을 준다면 그거 하나로 족했다. 나도 쓰면서 스스로 동기부여도 되고. 그렇다고 3쇄를 찍고, 4쇄를 찍는다면 내 동기부여는 똑같이 3배가 되고, 4배가 돼서 글쓰기가 내 밥벌이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또 그것도 아니다. 지금에 그저 감사하고, 내 책과 글을 찾아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계속 글을 쓴다는 생각뿐이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한 달 살기 영상이 많이 눈에 띈다.제주도, 울릉도, 부산, 국내뿐 아니라 가까운 일본이나 베트남, 태국 등 이웃나라도. 이곳에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두고 가는가를 보면 그 목적은 당연  ‘쉼’에 있다. 물론 누군가는 본인만의 독보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라던가, 글감을 생각하러 간다거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위해 여행을 하는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지친 심신을 달래러 쉬러 가는 것이다. 오히려 이때 내가 여기서 무언가를 꼭 해야겠다, 이루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순간 그 한 달은 쉼이 아니라 고통이 되고, 돈과 시간만 날리는 꼴이다. 콘텐츠나 원하는 결과물도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접근할 때에 더 잘 나온다. 내 첫 책출간도 마찬가지였다.

목적 없이 산다는 건 절대 부족한 것이 아니다. 보통 인생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이런 오류를 종종 범하는데, 가장 피부에 와닿는 비교는 단연 한국인과 외국인이다. 옛 속담에서도 드러난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라는 한국속담은 어떤 목적을 의도했으면최소한의 결과물이라도 내라는 뜻을 가진다. 이게 인생을 먼저 살았던 조상들의 지혜란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해석해 보자면 내 본연의 만족이 아니라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것 밖에 안된다. 설령 무라도 베지 않으면 어떤가. 칼을 뽑은 거 자체가 대단한 거다. 내가 판단하는 요즘은 칼을 뽑지도 않은 채 무를 베겠다고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해외여행을 가 본사람은 안다. 외국사람들은 하루 24시간을 우리처럼 쫓기듯 살지 않는다. 여행하듯이 그렇게 하루를 맞이한다. 회사나 사업 등 영리 목적으로 하는 밥벌이를 제외하면 삶에 어떤 큰 목적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음식도 마찬가지. 우리처럼 살기 위해 먹는 게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마인드로 천천히 음미하고 즐긴다. 프랑스 전통 음식은 무려 한 끼 식사를 하는데 5코스로 나뉘어 있다. 와인이나 술도 우리나라처럼폭주가 아닌 즐기기 위해 먹지 않나.

고작 산책을 하러 나가는 데에도 나간 김에 올 때 무엇을 사 와야 하고,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야 하고, 계속 어떤 목적이 생기는 한국에서는 목적 없이 사는 게 오히려 정신건강에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다. 작가라도 ‘책을 내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건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글이 선한 영향력이 있다면 언젠간 책으로 만들어질 것이고 2쇄, 3쇄를 넘어 100 쇄도 가능할 것이다. 번쩍이는 욕망에서 잠시 멀어지면 삶은 더 행복해진다.


외롭다고 연애하면 그 나름대로 또 외롭다. 회사에서 승진하면 또 그때부터 시작이다. 무료한 주말, 심심하다고 친구 만나 술을 한잔한다고? 집 가는 길 또 현타 온다. 다음 날 통째로 숙취로 하루를 날린다.

매 순간 목적 앞에서 쉬지 않고 달려가 그걸 막상 이뤄도 그때 잠깐 뿐이다. 책을 내고, 2쇄를 찍고 이것도 잠깐의 쾌락일 뿐이다. 모든 성취가 이렇다. 마치 추운 겨울날 사우나 열탕에 들어간 10초 정도의 쾌락. 10초가 지나면 좋았던 그 쾌락은 서서히 반감된다. 얼른 나가고 싶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그 행위마저 하지 않는다면? 그 잠깐의 쾌락마저 즐기지 못한다면? 인생은 더 무의미해진다. 쾌락은 인생에 필수적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욕구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식욕, 수면욕, 성욕 기본 3대 욕구 말고도 아래 메슬로우 5대욕구가 이를 설명한다.

꼭 어떤 내적성취가 아니라도 건물생심처럼 하물며 사고 싶은 것도 사지 못한다면 그 잠깐의 쾌락조차 느끼지 못할 테니 이만큼 무미건조한 것도 없다.


어차피 미래는 우리가 어떤 목적을 가진다 해서 혹은 가지지 않는다 해서 결과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각 분야 전문가들도 그냥 예측만 할 뿐이다.

삶에서 대부분의 인간의 시도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고, 이는 역사가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목적 앞에 피하지 말고, 파묻히지도 말고 그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꾸준히 갈고닦아나가면 그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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