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도 재미없을 때가 있다
회사에서 보고서를 쓴다고 하자. 행간과 자간을 맞추고, 보기 좋은 양식을 가져와 프린트를 했다. 누가 봐도완벽에 가까운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가정한다. 그럼 그 작성한 본인은 팀장한테 검토를 부탁하러 가지러 갈 것이다. 그렇다면 100이면 100 모든 팀장이 그걸 읽으시고는 가장 먼저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니?"
회사의 문서나, 책이나, 문자로 쓰인 모든 것은 저자 및담당자의 명확한 의도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뭔지, 말하고 싶은 게 뭔지 두괄식으로 명확하게 드러나는 글이 가장 잘 쓴 글이다. 글만 이럴까? 일상 속에서는 더하다. 이번 주말에는 여자친구와 바닷가에놀러 가야지, 친구랑 맛있는 걸 먹으러 가야지, 혼자 만화방에 가야지, 영화를 봐야지, 페스티벌에 가야지, 하루를 채우는 모든 것들은 모두 각자만의 의도와 계획이 숨어 있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기생충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내용이다. 이처럼 회사원은 회사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데에 그 의도와 계획이 있을 것이고, 지친 일상에서 놀러 간 누군가에겐 재미있게, 말 그대로 인생의 유희를 찾기 위한 게 그의 의도일 것이다. 회사는 매출극대화처럼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일이 그 어떤 재미도 가져다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 대가로 우리에게 돈을 주는 것이다.
근데 이 재미라는 게 신기하게도 경험의 정도, 세월의 흐름, 나이에 따라 편차가 극명하게 갈린다. 10대에는 모든 게 신기하기만 하다. 나와 다른 옆 짝꿍을 만나도 신기하고, 친구 집에 초대받아 게임 한판을 해도 재밌다. 안타까운 것은 10대는 대한민국 교육시스템 상 공부를 하는 데 거의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그 재미를 마음껏 즐기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만 19세 미만은 담배도 못 피고, 술도 못 마시고, 음란물이나, 잔인한 영화 등 인생의 단편적인 쾌락을 주는 거의 모든 것이 금지되기에 단순비교가 거의 불가능하다.
20대로 넘어가 보자. 대부분은 대학에 가 인생의 첫 자유를 만끽하면서 여행도 가고, 연애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더없이 큰 해방감을 느낀다. 한 번도 안 해본 것들을 하니 이렇게 인생이 재미있을 수가 없다. 처음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갔던 베트남은 30대가 넘은 지금도 술자리에서 회자될 정도다. 연애를 할 때도 좋을 때는 서로가 불타오르고, 이별은 또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미국에 있을 때 당시 여자친구와의 이별로 여러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고, 밤새 울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렇다. 심장을 칼로 누가 후벼 파는 고통이다. 돌이켜보면 딱 20대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다.존경하는 어른들이 20대를 도전, 성취, 사랑, 경험, 상상, 패기, 용기, 실패, 여행 등의 단어를 주로 사용하는 걸 보면 다시 오지 않을 20대는 한없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유시민 작가는 20대에게 이런 말을 했다.내가 하고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라고. 20대의 취업, 연애 등 중요한 선택들로 앞으로의 모든 인생이 결정되기도 하니, 그 선택에 스스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근데 30대는 다르다. 그렇게 매일 술 마시면서 봤던 친구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춘다. 관계가 틀어진 것도 아니다. 다 자기 살길 찾아가는 거다. 각자 본인만의 정해진 '일상'이 있으니 일주일에 몇 번 정기적으로 연락하기도 힘들다. 평생 내 옆에 있어줄 것만 같았던 친구는 핑계와 변명으로 내 곁을 떠난다. 떠나는 이유는 가지가지다. 나만 좋게 생각한다 해서 절대 그 관계가 평생 가는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가끔씩 친구를 만나 술을 한잔 한다고 해도 서로 공감대가 형성 안 돼서 과거 얘기밖에 안 한다. 술잔을 기울이는데 할 얘기가 5년 전, 10년 전 얘기뿐이다. 어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진취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데 늘 그 술자리는 과거에 머물러있다. 우리는 앞으로 경제적 문제의 벽에도 부딪힌다.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데 있어 돈이 필요하다. 30살이나 되어 더 이상 부모에게 손 벌릴 수 없다. 그렇다고 20대처럼 알바를 할 수도 없다. 내 인생 내가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야 한다. 말 그대로 발등에 불 떨어진 것이다.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간 결론은 파멸뿐이다. 돈으로 친구 여럿 잃었다. 단지 그냥 먹고살려고 발버둥 치느라 바쁘다. 쉬는 날 뭘 해도 재미가 없다. 쉬는 게 더 좋다.
인생 노잼시기가 찾아온 거다. 왜냐면 이미 다 해본 것들이고, 모든 것이 예측가능한 재미라서 그렇다.
개인적 관점으로는 동기부여나 목표가 사라졌을 때, 자유를 억압당할 때, 경제적 어려움이나, 관계에서의 상처 등 여러 가지가 있겠다. 하지만 모든 게 갖추어져 있다고 가정할 때,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이때 자연스럽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된다고 본다. 바로 결혼이다. 진짜 뭘 해도 재미없을 때. 사람마다 이 시기가 올 때는 조금씩 다른데 대개 30대 초중반쯤 갑작스럽게 문득 온다. 본인이 그걸 안다. 아침에 눈을 딱떴는데 '아, 지금 내 인생 너무 재미없구나'
이때 대다수가 삶을 변화시키는 결혼이라는 선택을 한다. 이 결혼할 상대를 현명하게 선택하기 위해 그래서 모두가 20대에 연애를 많이 해보라고 권유하는 거다. 그때 나만의 기준에 힘을 싣고, 나만의 기준으로 이성을 분별하고, 가려낼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것이다. 요즘같이 이혼율이 높고, 출산율이 바닥을 기는 시점에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신중해야 하고 중요한 선택임은 확실하다. 인생에 정답은 없으나, 감히 개인적인 판단으로 인생의 순위를 매겨보자면,
배우자를 잘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 >>>>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 >>>>>>>>>>>>>>
(넘을 수 없는 벽)>>>>>>>>>>> 배우자를 잘 못 만나 이혼하는 것
이 맞다. 이 선택은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뭘 해도 재미가 없는 이때를 위해 우리는 20대에 많은 경험으로 스스로만의 내공을 쌓아가는 것이 아닐까.
출산도 똑같다. 결혼을 하고 신혼생활을 즐기며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닌다. 집에서 각자 혼자만의 시간도 갖고,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은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낸다. 이럴 때 언젠가는 이 똑같은 걸 우리 둘이 하는데에도 지루하고 부족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 온다. 이때 자녀를 갖고 싶다는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또 다른 의미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삶의 거대한 행복이 찾아오겠지. 이때까지 평생 동안 느껴보지 못한 행복말이다.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갖는 것은 어쩌면 겪지 못한 행복의 파이를 늘려가는 데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