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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Nov 22. 2023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싶은가

새로운 시야를 대하는 방법에 관하여

세계최고의 동기부여가이자, 심리학자 웨인다이어의 책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 <행복한 이기주의자>의 깊은 울림이 이 책까지 집게 만든다. 각 챕터별로 저자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나누어 설명해 가독성이 좋다. 많은 구절 속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오래된 방식을 떠나라. 누군가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본인의 방식에서 벗어나세요”

간단하면서도 심오한 답변이다. 날 포함한 사람들은 글 특히, 에세이를 쓸 때 본인의 생각과 경험 및 지식을토대로 쓴다. 이때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공유함으로써 그것이 현실적이라 다수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아니면 잊히는 식이다.

 저자는 오히려 반대로 얘기한다. 사람들은 내 경험과 생각을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지금껏 나 자신이 살지 않은 방식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내 경험보다 앞으로 더 보여줄 수 있는 것에 기대한다. 마치 긁지 않은 보석처럼. 나 스스로를 아주 낯선 방식으로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곧 새로운 시각으로 매사를 바라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매일 걷던 길에서 매일 보이는 가게나 풍경 사이에서는 매일 같은 생각만 한다. 길거리의 나무도 계절이 지나면 잎이 떨어지고 꽃이 피는데 나만 늘 제자리다. 오늘은 다른 길로 가보자. 다른 노래를 들어보자. 혼자가 아니라 한 번은 다른 사람과 동행하자. 계속 무언가 새로운 게 떠오를 것이다. 이때 메모장을 켜서 적는다. 그리고 그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각색해 세상에 알려라.

 원곡보다 좋은 리메이크 앨범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지금 ‘짙은-잘 지내자 우리’라는 노래가 가게에 흐르고 있다. 이 노래는 처음 나왔을 때 마니아층 사이에서만 유명했다. 애초에 짙은이라는 언더그라운드 인디가수를 아는 사람은 팬 말고는 많이 없었다. 짙은이 대중적으로 올라오기 전까지 이 노래는 유명세를 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로이킴이나, 최유리가 부르면서 히트를 쳤다. 모방을 한다고 해서 질 낮고, 안 좋은 것이 아니다. 새로운 방식과 시각으로 그것을 각색하고 만들어가면 오리지널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주변인들에게 자기소개서 첨삭을 종종 해주고 있다. 직장이 끝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도, 늘 마감기한을 지키려 애쓴다.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까지 그들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해 주는 이유는 뭘까? 내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돈, 시간, 심지어 가끔은 저녁 먹을 시간도 없다.

성취감? 도덕성? 선한 영향력? 물론 모두 맞지만, 자기소개서 첨삭은 다른 단순노동과 달리 그 사람의 인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차원적이라 내 눈에 보이는 걸 믿고, 앞에 있는 것만 늘 생각한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혹은 3인칭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이 공들여 쓴 자기소개서를 보면서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너무 참신하다’ 라던지, ‘인생을 열심히 밀도 있게 살았네. 나는 어떤 부분이 부족했지’ 되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큰 배움이있다. 타산지석이라고 했던가. 그 사람의 인생을 A4 한 장으로 엿봄으로써 내 방식에서 벗어나 시야와 생각하는 사고가 넓어진다. 봉사를 넘어선 내 자신의 성장이다.

 우리가 여행을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것을 보며 기쁨과 설렘을 느끼기 위함이다. 본래의 나 1인칭에서 색다른 시야, 새로운 경험은 우리에게 소비나 담배, 술과 같은 중독성 도파민이 아닌 질 높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전 세계를 다니며 소설을 쓰는가? 본래의 나와 다른 새로운 영감을 얻고자 함이다. 기안 84가 왜 마감기한을 앞두고 운동장을 뛰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걸까? 마찬가지다. 본래의 나와 다른 무언가 얻고자 함이다.

 경험만 많은 사람들은 편협한 사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게 세상의 다인 줄 알고 본인을 낯설게 정의하지 못한다. 그게 답인 줄 안다. 심지어 그걸로 작은 성과라도 이뤘다면 더 그럴 확률이 높다.

 낯선 방식으로 정의하는 것이 곧 세상에 없는 무를 유로 바꾸는 창조의 시작이라 믿는다. 어쩌면 회사의 원격시스템처럼 타인의 스크린에서 매사를 바라보자.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얻는다. 마음이 충만해진다.

 

 그렇다면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떨까? 어떻게 판단되고 평가받고 기억될까? 저자는 그냥 그대로 두라고 한다.

 걸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저자가 책을 냈을 때 누군가는 환불을 해달라 하고, 누군가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 그러고는 답했다.

“당신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어차피 사람의 평가는 평생 객관적일 수 없다. 자신이 살아온 지식과 경험대로 한 사람을 평가하고 단정 짓기에, 타인의 평가에 매몰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모두 각자의 견해와 사고로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걸작도 찬사와 혹평을 동시에 받는다. 우리는 타인의 눈을 의식하며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고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대한민국처럼 남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 하루를 보내며 하는 모든 행위가 나의 진정한 행복인지, 그들에게 행복하게 보이기 위한 것인지를 살펴야 한다.

 누굴 평가하고 판단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먼저 정의한다. 상대에 비친 나를 비교하기 때문이다. 그가 당신 판단하게 만들어라. 그리고 그냥 두자. 온전히 내 시간과 에너지를 지킨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안 일어날 일은 어차피 알 일어난다. 그냥 가만히 두어라. 길거리에 있는 꽃을 보아라.알아서 지고 다시 새싹이 난다.


 그들의 눈을 빌려 새로운 시각으로 매사를 바라보되, 그 눈이 나를 향할 때에는 집착과 매몰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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