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적당한 무심함에 대하여
흙과 흑 맞춤법을 틀리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 혹은 집단이 강한 신념을 갖고 덤벼들면 당황함을 넘어 머리가 어지럽다. 글의 논지를 흐려 타인으로 하여금 의구심을 선동하고 객관화된 사실을 철저히 왜곡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본인만 안다는 듯 자의식과잉에 빠져 의견이 다른 상대편에 날을 세운다.
본인은 합리적이고 우월하며 타인의 경험과 지식은 일천하다. 좀 더 나은 삶을 추동하려는 마음은 한 집단의 이기심으로 낙망 속에 무력해진다.
다음 글의 댓글을 보면 딱 하나의 주제로 인간이 느끼는 원초적인 감정 분노, 화해, 열등감, 이기심, 용서 모든 복합적인 감정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왜 답글을 안 다냐고 의아할 수 있다. 나는 말한다. 이런 전쟁터에 들어가 봤자 남는 건 깊은 침잠과 부정적 감정의 파고뿐이라고. 한 사람씩 정성스럽게 반박해서 상대를 설득한들, 바뀌지 않음을 이미 안다. 과거의 모든 글이 그랬다. 침묵만이 곧 내 에너지를 지키는 일이다. 그 시간에 책 한 권 더 읽는 게 현명하다. 딱 하나 말해주고 싶은 건, 인생의 나이테가 많다해서 지식과 인성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존중의 정도는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견이 다를 순 있다. 근데 적어도 익명에 기대어 존중 자체가 없는 댓글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본인이 믿는 절대적 신념은 더 굳어지고, 타인을 관철시키기 바쁘다. 글 본문에도 있지 않나.
인간은 편협해서 마치 어디에 홀린 듯 본인이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본다.
침묵과 적당한 무심함이 주는 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MBTI는 현재 대중적으로 자리 잡아 모르는 사람이없을 것이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거나 소개팅을 할 때에도 가장 먼저 묻는 것이 MBTI이니. 현대사회에서는 대개 외향적인 사람이 내향적인 사람보다 더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는다. 더 매력 있어 보이고, 개성 넘쳐 보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도 많다. 근데 그 와중에서도 성격과 별개로 침묵해야 할 때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얼마 전, 커피챗을 하면서 여러 얘기를 나누는 중 경제에 관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말이 없었다. 이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무심코 넘겨짚었는데, 커피챗이 끝날 때쯤 둘이 대화하는 시간을 갖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 순간엔 침묵했으나 실제론 경제학 석사였던 분이신 거다. 그분은 이미 훨씬 수준 높은 전문지식을 겸비하셨는데도 그냥 듣고만 계셨던 것이다.
말은 쉽다. 그냥 내뱉으면 된다. 말 한마디 던지는 게 이렇게나 쉬운 세상인데, 말을 하고 싶은데 안 하고 참는 것은 참 희소성 가득한 영역이다. 요즘같이 모두가 자기 PR에, 출간, 유튜브 등 어떻게든 본인을 알려 유명세와 경제력을 갖고 싶어 하는 세상 속에서 특히 더 그렇다. 아는데도 침묵하는 능력. 즉, 자기 에너지를 지킬 줄 알면서 건강한 사람과의 대화 그리고 매사에 사리분별이 뛰어난 사람이 앞으로 현대사회에서 더 큰 대우를 받을 것이다. 침묵은 겸손을 동반한다. 더 숙이면서 내면은 깊어진다. 누군가가 의견에 반박하면 그냥 ‘님 말이 다 맞음’과 같은 논리다. 인정해 줘라. 그들은 그렇게 평생 생각하며 살면 된다. 생각이 애초에 다른걸 내가 왜 굳이 바꾸려 하나. 옳고 그름도 없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하나의 현안에 관해 논쟁함에 있어서는 화내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아무리 성내 봤자 상대편은 바뀌지 않거든.
레이스에 참가하지 않으면 나만의 페이스가 소중해진다. 1등은 못할지언정 자기 과시가 줄고, 경쟁에서 자유롭다. 나만의 독창성이 생긴다. 그게 곧 경쟁력이다.
침묵은 그럼 어디서 올까. 침묵은 보통 거리를 두는 적당한 무심함에서 온다. 친구나 가족 등 서로가 막역한 관계에서는 사실 침묵을 지키기가 마냥 쉽지 않다. 내가 편한 관계에서는 굳이 애써 침묵할 필요는 없다.
보통 거리를 둔다는 게 냉정하거나, 매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적정한 선을 지키는 이 무심함이 진짜 건강함이다. 직장이나 자영업자 예시로 들어보겠다. 한 카페사장님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했다고 해보자. 아르바이트생에게 이것저것 친구처럼 편하게 알려줘서 사적으로도 자리를 가지며 굉장히 가까운 사이가 됐다 해보자. 그 와중에 알바생이 뭔가 하나를 잘못했을 때 한번 정색하면서 혼내면 그 알바생에게 사장은 바로 XX 놈이 된다. 원래 적당한 거리를 두다 한번 잘해서 칭찬하거나 보상을 주면 그 알바생에게 사장은 마음 따뜻한 사람이 된다. 직장도 이와 동일하다. 엄격한 상사가 한번 잘해주면 천사가 되고, 한없이 착한 상사가 한번 뭐라 하면 XX 놈이 된다.
어제는 참치를 먹으러 갔다. 맛은 그 어떤 곳과 견줄 수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최고였는데 사장님께서 10분에 한 번씩 말을 거신다. 코스별로 나올 때마다 이 부위는 이렇게 먹어야 하고, 어떻게 먹어야 맛있고, 어디서 왔냐는 둥 끊임없이 말을 거신다. 참치의 맛이 반감된 기분이었다. 똑같이 옷을 사러 매장에 들어갔는데 어떤 걸 찾으시는지, 이건 어떠신지 추천하면서 옆에 따라다닌다 생각해 보자. 얼마나 부담스러운가.
거리를 두는 무심함은 상황과 맥락이 달라 객관화가 어렵다. 그래서 갈등을 오히려 줄인다.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 언제 거리를 둬야 하는지 아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