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그리 Jul 04. 2024

점점 친구와 멀어지는 이유

그 많던 친구는 다 어디 갔을까

인사이드아웃2 영화가 흥행중이다. 이 영화에 나오듯 10대, 20대까지는 친구, 교우관계는 인생에 큰 부분을차지한다. 친구 무리 속에서 감정이 동요되고 소외당하면 세상이 무너진 것 같고, 내 안에서 온갖 파고가 몰아친다. 기쁨이, 슬픔이, 불안이가 하루가 다르게 자리를 바꿔가며 본인을 괴롭힌다. 어쩔 때 친구랑 싸우기라도 한다면 스스로 자책하고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만 같다. 어떻게든 관계회복을 위해 힘쓴다.

친구 사이에서 유행은 본인에게 민감한 부분이다. 친구가 아이패드를 사면 나도 따라 사야 할 것 같고,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를 사지 않으면 무시를 당할 것만 같다. 교복만 입고 학교에 가는 게 당연히 정상이지만 한없이 뒤처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그랬다. 친구가 노래방에서 노래를 잘 불러 나도 노래 연습을 한다. 피시방에서 롤을 하니까 나도 같이 어울리기 위해 따라 한다.

우리의 일상은 모든게 같다. 학교수업, 다니는 학원, 잠자는 시간, 사는 곳 등등. 다른 건 중간고사, 기말고사 점수뿐이다. 서로의 일상에 100%공감하고 서로에 대해 모든 걸 알아 얘기거리도 많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고, 집에 도착해 보면 정작 시간은 8시~9시. 지친다. 잠에 들 시간이다. 저녁도 물론 밖에서 먹었기 때문에 집에서 할 일은 그냥 샤워하고 자는거다. 당연히 부모님과는 잘 들어왔다는 인사가 전부다. 그렇게 굳게 방문을 닫는다. 하루에 잠자는 시간 빼고 15시간을 친구들과 있는데 당연 친구가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시간이 흘러 20대가 된다. 친구 무리가 한번 크게 바뀐다. 특히 남자는 군대를 가기 전과 후로 관계의 대역변 시대가 온다. 그렇게 친했던 친구는 각자 다른 대학에 가고 지역별로 흩어진다. 같았던 일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공부를 잘해 서울로 갔을 것이고, 누군가는 지방에 남을 것이며 기술을 배우러 전문대에 가는 친구도 보인다. 조금 더 물리적으로 가깝고, 같은 수업이나 취미,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로 내 관계는 정립된다. 그렇게 10대에는 또 없던, 내게는 전혀 없던 세상의 다른 조각들이 내 삶에 조금씩 스며든다. 이때 나와 내 친구가 다르다고 하는 것은 달라졌다 해봤자 크게 대졸/고졸 차이.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자면 학과, 학점, 사는 곳, 따져봤자 그 정도다. 부모님께 용돈 받으며 비슷한 재정적 상황에 비슷한 일상 스케줄에, 누군가는 부모님과 같이 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취를 한다. 어떤 이는 연인이 있을 것이고, 다른 이는 모태솔로라 연애에 대한 압박을 느낄 수도 있다. 본인이 겪고 있는 상황의 깊이만 다를 뿐이다. 모태솔로라 해서 누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고 누군가에겐 하나의 큰 콤플렉스로 다가와 심각한 방식으로 당사자를 위협할 수도 있다. 또 지난 연애에 힘들어하는 이도 있다.  

20대는 시간이 많다. 군대를 갔다 왔든 안 갔다 왔든, 대학생활에 있어서는 10대보다 더 자유로운 환경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 술자리도 많다. 술에 취해 지금 내 옆에 있는 친구와 서로 평생 우정을 약속하며 또 각자의 획일화된 일상에 그렇게 젖어든다.


근데 30대가 되면 180도 바뀐다. 20대 때 평생 우정을 약속했던 친구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다. 각자 자기 살 길 찾기 바쁘다. 평생우정은 개뿔. 먼저 연락이나 하면 다행이다. 그들은 하나 둘직업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대기업일 수 있고, 중소기업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취업준비가 오래 걸려서 혹은 공무원, 전문직 시험준비를 오래 해서 고시낭인이 됐을 수 있다. 이들은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에 모든 연락을 끊고 합격하면 연락해야지라며 공부에 매진한다. 그리고 합격 못한 사람은 당당하지 못해 연락을 못하고, 합격한 사람은 그들에게 이태껏 오랜 기간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음에 스스로 면목이 없어 안 하게 된다.

직장에 다니는 누군가는 연봉이 6천만 원이고, 누군가는 그것의 절반인 3천만 원일 수 있다. 서로의 벽이 조금씩 생긴다. 앞으로 다가올 이 사회가 정해놓은 취업, 연애, 결혼, 출산과 같은 정형화된 관문에 부딪히기 시작하는 시발점이다. 이 관문 속에 파생되는 개인의 가치관은 서로를 이해시키기 어려워 관성처럼 조금씩 굳어진다. 아무리 술을 같이 먹어도 20대는 재미있었다면 지금은 각자의 고집만 더 짙어질 뿐이다. 재밌는 자리라도 불편한 자리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각자의 고민과 취향을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만 간다.

20대 때 내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그 친구는 그때의 친구가 아니다. 너와 나의 상황이 너무 다르거든.

제일 중요한 것이 남았다. 바로 경제적 격차. 친구는 고시준비를 하고 본인이 돈을 버는 직장인이라 하자.  

아니, 상식적으로 어떻게 약속을 잡아 커피한잔 할 수있겠나. 만나서 할 얘기가 뭐가 있을까.

“아유, 힘들겠다. 조금만 더 힘내. 좋은 날 올 거야”

이런 어쭙잖은 위로? 동정? 개소리다. 돌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다. 집 가는 길 그 준비생은 온갖 자격지심에 좌절감에 내 번호를 차단할 수도 있다. 이처럼 각자가 처한 상황이 확연히 달라 서로의 상황을 경청할 여유가 없다.

직장인도 똑같다. 나보다 연봉이 낮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친구에게 이번에 승진했다고 자랑을 할 수도 없고 경제적인 얘기를 털어놓을 수도 없다. 다 각자만의 우주가 있고 고민이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돈을 번다고 연봉이 낮은 친구, 취업을 못한 친구 약속에 비용을 전부 부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 한두 번 취업턱은 낼 수 있겠지만. 내가 좋은 일이 있을 때 진짜나를 진심 어린 마음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은 찾기 힘들어진다. 인간이 원래 그렇다. 받은 건 생각 안 하고 해 준 것만 생각하고, 득 보단 실에 더 민감해진다.

남이 잘됐을 때 뒤돌아선 본인을 돌아본다. 어쨌거나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하다. 각자의 우주에 갇혀 서서히 그렇게 관계는 멀어져 간다.


결혼을 하면 또 같은 공감대를 가진 결혼을 한 사람들, 자녀를 가지면 또 자녀를 가지고 있는 같은 상황인 사람들끼리 어울린다. 혹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만남이 형성된다. 그것도 시간이 날 때 한정이다. 사실 내 가족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기존에 있던 친구는 내 기억 속에서 잊혀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뒤를 돌아봤을 땐 진짜 내 친구를 손가락으로 세어보면 몇 개 접히지 않는다. 이럴 때 우리는 아쉽고 불안하고 허망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아, 힘들 때 연락할 친구 하나 없다는 것에 스스로 좌절한다. 내 잘못인가? 그들 잘못인가? 뭐가 문젠지 탄식하면서 본인의 지난 인생을 곱씹어본다. 즉, 안 좋은 일을 겪거나, 아쉬운 일, 손해를 겪었다 싶을 땐 늘 사람은 인과관계를 찾아 그 대상에게 책임을 돌린다. 그래야 자기합리화하기 편하거든. 근데 내가 잘못한 게 아니고 상대가 잘못한 게 아니고 사회가 잘못한 것도 없다. 내가 그때 만약 10대 때, 혹은 20대 때 특정 어떤 행동을 했다 해서 이 일을 막을 수 있었을까? 절대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뿐이다.


30대인 지금 나는 약속이 없는 주말, 억지로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를 찾지 않는다. 굳이 약속을 만들지 않는다.

이대로, 지금 이대로 나만의 세계를 더 진하게 만들어 살아가는 게 X나 멋있는 삶이라는 걸 이젠 안다.




이전 16화 아, 오늘도 잘 참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