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에 대한 소고
과거에 맞춤법도 틀리는 사람이 마음먹고 하나의 논리를 가지고 덤벼들면 머리가 어지럽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런 생각자체도 사실 내 주관적인 의사가 개입된 것이기에 모든 사람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유식한 것과 무식한 것의 기준도 모호해 객관화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는 것이 많지 않을수록 한정된 지식과 좁은 사고에 매몰되어 그것이 전부고 맞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용감해진다.
그 좁은 영역 속에서 타인이 틀렸다고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상황은 더 심각해지는데, 그전에 우리는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결국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걸 내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의 요점을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상한 논리가 애초에 생긴 것이다.
이 능력은 다름 아닌 문해력이다. 어른들이 어릴 적부터 책을 가까이하라고 하는 것이 단순하게 지식을 쌓기 위함도 있겠지만 결국은 그 지식을 우리 뇌에 습득하고 나만의 방식대로 해석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함이다. 나중에 어떤 지식이 오더라도 잘 흡수할 수 있는 뇌를 만들기 위해서. 요즘 영어유치원, 어학연수 등 외국어도 일찍부터 배우는 걸 보면 어리면 어릴수록 이 흡수는 빠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가장 핫한 이슈가 있다. 바로 학부모 문해력 논란이다.
한 어린이집 교사의 글로 이 논란은 도마 위에 올랐다.
'00을 금합니다'를 두고 금이 좋은거니 가장 좋다고 알아듣는다고 한다. 이 외에 '우천 시 장소변경'이라면 우천시가 어디냐고 묻고 중식제공이라고 써져 있으면 왜 한식이 아닌 중식을 제공하냐고 되묻는다고 한다.
이걸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애초에 왜 이런 일이 발생하냐에 대한 의문이었다. 단순히 한국교육과정 개편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정시로 공평하게 언어영역을 심사해서 대학을 보내지 않고수시를 해서 보냈다고 부모가 문해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사실 이유가 되지 않는다. 부모 돈으로 이름만 번지르르한 실질적으로 영양가 없는 스펙을 쌓아서 지금 사람들이 이 정도 글도 해석 못하는 걸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정시로 명문대 간 사람도 당연 모를 수 있다.
그럼 그렇다고 이게 사람들의 인식문제인가? 문과를 멸시하고 이과를 더 선호해 학부모들이 한국말을 이해를 못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 말이 맞기 위해서는 이과 졸업한 사람들은 책도 잘 읽을 수 없어야 한다.
그럼 정답은 뭐지? 아, 한국말이 세종대왕이 지은 거긴하지만, 결론적으로 한자 기반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한자를 등한시한 죄다? 한국어 대부분이 한자로부터 파생된 것이기에 완전히 없애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알아듣고 배워야 하는 건 맞다. 근데 그게 한자 때문은 또 아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중2 때 학원을 다니면서 빡세게 외워 한자 2급을 땄다. 지금 그때 기억나는 한자를 말해보라고 하면 나는 10%도 제대로 못 쓸 것이다. 근데 글 쓰고 책 읽는 데 전혀 상관없다.
답은 결국 그 사람 혼자의 문제다. 앞에 예시를 든 글쓴이는 아주 당연하게 100%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쓴 글이다. 당연히 이걸 모른다면 교육과정, 한자,사람들의 인식을 볼게 아니라 그냥 그 사람한테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걸 알아듣지 못한 사람. 아주 불편한얘기지만 그게 사실이다.
그럼 이제 해결책이 중요한데 그 사람 찾아가서
"너 왜 그것밖에 못 배웠어? 왜 몰라? 당연히 알아야지 이런 건"
라고 질타해야 할까? 모르는 당사자는 타인에게 피해를 안 끼치는 선에서 모르면 알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수치심의 부재와 자격지심이 아니라, 스스로를 안타깝게 여기고 배우려 해야 한다. 결국 그 사람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나처럼 누군가는 태도 전에 모르는 것 자체를 문제삼기도 하지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모르면 그냥 알면 된다. 배우면 된다. 근데 모르는데 왜 사람들은 당당한가? 그 좁디좁은 세상에 사시는 건 둘째치고 왜 그게 당연하고 당당한가?
상식을 모르는 사람은 열등감을 표출할 자격이 안 된다.
누군가 중식제공을 한식 아니고 중식주는 줄 알고 헷갈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몰랐네요. 하면 되는 걸
"왜 애초에 사람 헷갈리게 이상한 말을 적어놔?" 하지 말라는 거다. 딱 그거다. 그렇다고 또 극단적으로 “난 흙수저에 못 배운 놈이야”며 자조적으로 행동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사회가 할 일. 이 사회는 그걸 받아들이고 '불편해하지 않을' 문화를 선도해야 한다. 그게 첫 번째다.
"무식한 놈이 어디서 성질이야" 하기 전에 공손히 가르쳐주고 괜찮다고 알려주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한국인의 종족특성, 냄비근성이 여기서 발동된다. 한 명을 죽이기 전에는 절대 그만두지 않는다. 조져놓고 일주일만 지나면 다시 깔끔히 잊어버린다. 냄비근성이란 라면을 끓이는 양은냄비 같은 인간의 의식적 행동이라고 보면 된다. 정말 쉽게 달아오르고 금방 식어버린다.
대개 이러한 일들은 작은 일도 더 큰 일로 만든다. 커피가 인기 있으면 50m로 카페를 연달아 창업한다. 10중에 9는 망한다. 심지어 본인이 왜 망했는지도 모른다. ‘네가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이걸 하면 큰돈을 번다’라는 맹목적 믿음일까.
결국은 뭐든 예민한 사람이 먼저 문제를 일으키고 논란거리를 만들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법이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된다. 온갖 불행은 이런 불편함에서 온다. 사회의 역할은 개개인의 불편함을 줄이고 한명을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게 아니라 포용하는 문화를만드는 것이다.